구름과 노을의 안식처


좋은 에로게 작품이란 무엇인가. 2부 ~ 수많은 가능성을 지닌 에로게 에로게 칼럼

** 좋은 에로게 작품이란 무엇인가? 1부에 이은 2부입니다. 1부의 글과 내용이 이어지므로 바로 아랫글에서 확인 부탁드립니다. 여기서 언급되는 작품과 그와 관련된 개인적인 의견 및 해석들은 그 무엇도 공언(公言)이 아니며 많은 에로게 유저들 중 한 명의 목소리임을 밝힙니다.


 "좋은 에로게 작품이란 무엇인가"
 2부 - 수많은 가능성을 지닌 에로게


 지난 1부에서는 에로게(여기서는 일부 블랙게 작품을 제외한 일반 순애물을 대상으로 함)가 지난 20년 동안 어떤 변화의 흐름 속에 있었는지를 간단하게 살펴봤다면, 이번에는 ‘에로게’가 갖는 주된 특징들과 함께 에로게를 통해서 표현하고 배출하고자 하는 유저들의 경향성을 함께 아울러 ‘좋은 에로게’란 결국 무엇이 되는 것인지를 논해보고자 합니다.

 에로게를 플레이 하는 목적이 우선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우선적으로 에로게의 기본 정체성인 ‘에로’라는 요소가 빠질 수가 없겠으며 그것을 위해서 플레이하는 것이 매우 근본적이며 일차적인 플레이 목적이며 에로게를 통해서 표현하고자, 배출하고자 하는 욕망의 근원입니다. 때문에 오직 ‘에로’ 요소만을 주된 것으로 한 게임들도 초창기와 변치 않게 꾸준하게 생산되며 소비되는 이유이지요.

 하지만 공략의 대상이 되는 것은 시청각 요소를 모두 갖춘 매력적인 히로인입니다. 때문에 단순히 게임 내의 에로를 위한 ‘인물’에서 점차 ‘인물’을 위한 에로, 이야기, 게임 요소들이 부차화(副次化)되는 것이 최근의 에로게가 걸어가고 있는 방향입니다. 이는 곧 매력적이며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잘 만든 ‘캐릭터’ 한 명이 에로게의 판매량이나 인기도를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과거와는 다른 작품들의 양상을 가져오게 된 주된 원인이 되었습니다.


[과거 남심을 가득 흔들었던 우리의 히로인, 'D.C. 다카포'의 시라카와 코토리와 아사쿠라 네무]

 

 과거에 비해 질적으로 성장된 캐릭터들의 매력들에도 불구하고 그를 받쳐주는 스토리텔링이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아진 탓에 안정적인 판매고와 인기도의 유지를 위한 소위 무난한 이야기들이 양산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00년도 초반에 보여준 시리어스하고 실험적인 이야기 구조를 지닌 작품의 수가 한 해 나오는 작품들을 망라해도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입니다.

[minori를 들었다 놓은 대표작, ef - the fairy tale of the two. 당시 수명이 짧은 에로게를 2부작으로 내놓는다는 발상 자체가 희귀했고 일종의 큰 모험이었다]


 이와 같은 변화를 저는 에로게를 통해 표현, 표출하고자 하는 욕망의 정도와 방향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결론적으로 보면 오히려 에로게를 통해서 표현, 표출하고자 하는 욕망의 방향이 오히려 초창기의 그것으로 돌아갔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그 때와 지금의 작품들의 양상이나 중요시했던 부분은 다르지만, ‘에로’를 위한 은밀한 욕구의 해소라는 기본 목적이 지금에 와서 결국 ‘에로게’의 정체성을 다시금 결정짓고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소재와 설정을 잘 말아먹은 게임, ‘별의 소리 생츄어리’]


 애니메나 라노베 산업이 몰라볼 정도로 거대해지고 10년 전과는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거대해지며 다양한 욕망의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던 에로게의 역할이, 강한 캐릭터성과 그를 위한 이야기로 구성되는 라노벨과 그를 원작으로 하는 애니메들로 전이되었다고 봅니다. 결국 남은 은밀한 욕구의 충족이라는 역할은 에로게가 다시 한 번 확실하게 전담하게 됨으로서 라노베보다 더 개성 넘치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임에도 불구하고 좁은 스펙트럼을 지닌 이야기 구조를 기본으로 하여 히로인들과의 ‘에로’가 각 작품의 존재 의의가 된 것입니다. 에로게 원화가의 수명은 길지만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나리오 라이터의 수명이 지나치게 짧아진 것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보시면 될 것입니다.

[인간 관계에 대해서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주인공이 특징인 ‘역시 내 청춘 러브 코메디는 잘못됐다’ 라노베 인기에 힘입어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으로까지 나왔다]

 

 이와 더불어 인터넷의 발달과 급속하게 빨라진 욕망 표현, 표출의 속도, 정보의 확산 등등이 영향을 미쳐 에로게에서의 ‘문학’은 수명이 너무나도 짧은 에로게 시장에서 그 수고와 비용에 비해 얻는 이익이 작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작가를, 비싸게 스카웃하여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되었다 하더라도 에로게 시장의 특성상 체험판에서 보여주는 것, 오프라인 특전, 캐릭터들의 매력도와 같이 가시적인 것들로 판매량이 결정되며 그것도 대부분이 ‘예약 판매’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단기적인 작품의 판매량엔 해당 스태프의 ‘유명도’ 이외에는 영향을 미칠 수가 없습니다.

[4월에 발매한다는 게 어제 같았는데.. 어느 새 무기한 연기가 되어 버린 비운의 작품, 10mile의 ‘크로스 크오리아’]

 

 결국 에로게를 통해서 전달하고자, 드러내고자 하는 시나리오 라이터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더불어 이야기의 무게나 완성도의 측면에서도 부차적인 것으로 전락하게 된 최근의 경향을 저는 부정적으로만 인식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에로게 유저들의 인식과 안목의 성장과 더불어 그만큼 시나리오 요소를 제외한 다른 모든 부분은 질적, 양적으로 성장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지요. 완성도 있는, 개성 넘치는 작품은 많은 작품 양산의 홍수 속에서도 빛을 내기 시작합니다. 12년도 겟츄 게임 대상 1위를 차지한 SAGA PLANETS社의 ‘하츠유키사쿠라(はつゆきさくら)’의 경우나 13년도 3월 유저 투표 1위를 차지한 COSMIC CUTE社의 ‘LOVESICK PUPPIES' 가 거대 양산 게임들을 제친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작품의 전반적인 완성도가 결국 단기, 장기적인 판매량과 인지도에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12년도 겟츄 게임 대상 종합 1위를 차지한 ‘하츠유키사쿠라’]


 이제야 겨우 ‘좋은 에로게’는 과연 무엇인가 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겠네요. 에로게 작품을 둘러싼 통시적인 맥락을 전제로, 에로게를 ‘이야기 + 캐릭터 + 게임요소 + 에로’의 4방면으로 나눠 제가 플레이한 작품들을 예시로 들어가며 풀어나가려 합니다.
 물론 이미 해답은 나와있는 상태입니다. 간단한 얘기입니다. 에로게의 4가지 요소가 모두 적절하게 조화되어 하나가 되는 작품이 ‘좋은 에로게’라 말할 수 있겠지요. 저도 동의하는 바이고요. 하지만 그러한 작품이 과연 있을지나 궁금합니다. 지금부터는 제가 플레이 한 작품들을 예시로 들어가며 좋은 에로게 작품에 대해서 논해보려고 합니다. 저도 여건상 많은 작품들을 플레이한 것은 아니며 모든 작품들의 장단점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 취향에 따라 편중된 작품 선택 경향이 있어 다양한 측면에서는 바라볼 수 없다는 한계를 미리 알려드리는 바입니다. 부디 읽으시분 분들도 양해 부탁드리고 혹시나 전반적인 모든 면에서 우수한 퀄리티를 뽐내는 에로게가 있다면 댓글로라도 함께 공유 부탁드립니다.

 첫 번째로 소개해드릴 작품은 ‘이야기+캐릭터’ 이 두 가지 요소를 잘 살린 2013년 7월에 발매한 Navel 社‘의 '소녀 이론과 그 주변(乙女理論とその周辺)’입니다. 본래 작년도 10월에 발매한 ‘달에 다가서는 소녀의 작법(月に寄りそう乙女の作法)’의 팬디스크 성격을 지닌 작품임에도 메인 이야기의 구조가 본편을 훨씬 뛰어넘는다고 생각하여 대표작으로 골랐습니다.

[Navel社의 '소녀 이론과 그 주변'. 주인공과 리소나의 애틋한 애정과 성장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이 작품은 작년도 2012년도 겟츄 캐릭터 랭킹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사쿠라코우지 루나’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오히려 ‘서브 히로인’으로 격하시키고, 본편에서의 ‘서브 히로인’이었던 주인공의 이복동생 ‘오오쿠라 리소나’를 메인 히로인으로 격상 시키고 아예 무대를 완전히 바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면서도 ‘리소나’라는 캐릭터뿐만 아닌 다른 캐릭터들의 매력을 잘 살려내면서 (물론 주인공을 포함하여^_^) 손색없는 훌륭한 이야기를 보여줬던 것이 인상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에 비해서 너무나도 빈약한 H씬의 개수나 CG의 수준, 연기 등등 ‘에로게’임에도 불구하고 에로적인 요소를 너무 소홀히 다뤘다는 평이 지배적이고 저 개인적으로도 다른 부분들에 비해서 ‘에로’가 너무 빈약하게 다뤄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스즈히라 히로 씨나 니시마타 아오이 씨가 그리 야하게 잘 그리는 분들은 아니지만 팬디스크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본편보다 못한 모습을 보인 점은 역시 하나의 ‘작품’으로서는 괜찮았을지 몰라도 ‘에로게’ 로서는 부족한 부분이 엿보이는 점입니다. 또한 에로게의 특성상 다양한 히로인을 공략하는 요소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임에도 지나치게 ‘리소나’라는 메인 히로인에 이야기의 무게 중심이 치우쳐 소홀해진 다른 히로인들의 취급도 이 작품이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입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큰 호평과 인기를 차지한 이유는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묵직하게 완결된 하나의 ‘작품’을 선보였다는 점입니다. 특히나 캐릭터들이 이야기들을 통해 시나리오 라이터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의도가 이야기와 매우 적절하게 조화되면서 히로인들의 매력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 어려운 과제를 소화해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도 이 부분을 다른 부족한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가치 있게 여기기 때문에 ‘좋은 작품’의 반열에 그래도 들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두 번째로 소개해드릴 작품은 AUGUST 社의 013년 1월에 발매한 ‘대도서관의 양치기(大図書館の羊飼い)’입니다. 이 작품 역시 첫 번째로 소개해드린 작품과 비슷한 성격을 지닌 작품입니다. 캐릭터들의 매력을 전반에 내세우면서도 흥미로운 설정과 이야기를 통해서 시나리오 라이터가 드러내고자 하는 이야기 속 메시지를 유저들이 자연스레 얻을 수 있게끔 해놓았다는 점에서는 훌륭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유저들의 격렬한 공감대를 얻어내 인기투표에서 거의 몰표를 받아낸 초유의 히로인, ‘스즈키 카나’를 배출해낸 작품이기도 합니다. 솔직히 ‘스즈키 카나’ 한 인물만으로도 이 작품의 전반을 논할 수 있을 정도로 작품의 메시지와 의도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과 관련하여서는 본 이글루스에서 관련 포스팅으로 자세하게 다루고 있으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대도서관의 양치기. 우리는 결국 서로와 서로의 양치기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완벽한 작품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지나친 작가의 메시지 전달에 초점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에로게는 에로게로서 시청각적인 사건과 이벤트로 진행되어야 함에도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주로 ‘텍스트’로 전달해버린 한계 탓에 ‘새벽녘보다 유리색인’이나 ‘예익의 유스티아’에서 보여준 것들에 비해 이야기가 너무도 초라해 보입니다. ‘대도서관의 양치기’는 결국 ‘에로’ 요소가 가미된 하나의 ‘문학’ 작품이라는 성격이 너무 강하다는 느낌입니다.

[학교에서 흔히 만나볼 수 있는 인물의 전형, 스즈키 카나]


 하지만 그 어떤 작품들보다 리얼하게 현실을 그려내려 하였으며 제 개인적으로 그동안 플레이한 작품들 중에서도 단연코 으뜸으로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실존하는 인물마냥 합리적이면서 ‘필연적’으로 행동합니다. (여기서 필연적이란, 이야기의 완성도를 해치는 우연적인 요소의 반대 개념으로 임시로 사용합니다) 마치 주인공이 된 자신이 실제 도서부에 들어가 학교생활을 하는 것 마냥 무척이나 ‘사실적인’ 학원물을 그려냈다는 이 작품만의 큰 장점이 있기에 많은 부족한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전되고 세련된, 에로게의 선두주자라고 생각합니다.

[순애물임에도 불구하고 H씬이 40여개에 이르는 무시무시한 작품, LOVESICK PUPPIES]

 
 이 밖에도 ‘이야기와 캐릭터, 에로’의 삼박자를 골고루 갖추며 호평을 받은 COSMIC CUTE社의 ‘LOVESICK PUPPIES'도 좋은 작품의 반열에 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려 히로인당 7개의 H씬을 넣고 많은 수의 CG도 사용하여 위의 두 작품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뜨거운 ‘연애’를 잘 구현해내고 있다고 봅니다. 이 작품과 관련된 포스팅도 있으니 참조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다음으로는 ‘게임 요소와 에로’ 측면을 강조하는 에우슈리 社의 작품들을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완전하게 한 작품으로는 마도교각과 창각의 아테리얼 두 작품이라 에우슈리 社의 진면목을 아직 잘 알지 못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허나 이 두 작품만으로도 에우슈리가 추구하고 창조해내려는 작품이 어떠한 것인지를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에로게의 전반적이며 전체적인 면에서는 ‘에우슈리’의 작품들이 가장 에로게답다고 생각합니다. 매 작품 나올 때마다 참신한 게임 시스템을 들고 나오며 많은 팬층을 보유한 에우슈리는 에로게의 아이덴티티인 ‘에로’ 또한 풍성하고 다양하게 다루고 있어 게임을 즐기는 데에는 무척 적절한 작품들이 많습니다.

[정통 TCG 카드 게임과 비슷하게 제작된 ‘창각의 아테리얼’ 현질이 필요 없는 좋은 게임이다(웃음)]

 

 ‘캐릭터의 매력과 이야기’ 요소들 또한 나름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다양한 히로인과 서브 히로인, 주변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작품과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게끔 해줍니다. 하지만 ‘마도교각’, ‘창각의 아테리얼’ 두 작품만을 두고 봤을 때는 이야기는 나쁘지 않았으나 돋보이는 히로인이 없고 히로인과의 연애적인 부분을 소홀하게 다룬 면이 없지 않아 있어 다소간의 아쉬움으로 남기도 합니다.

[에우슈리가 올해 상반기에 발매한 ‘마도교각’.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요소를 도입하여 참신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개인적으로는 음악이 무척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그러나 그 밖의 전반적인 완성도에서 우수한 퀄리티를 보여주고 있는 에우슈리의 작품들은 음악적인 면에서도 다른 작품들보다 공을 들인 흔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에로게 전반적으로 게임 내 음악의 개성이 떨어지게 되었는데, 그 와중에 들은 에우슈리의 게임 내 음악들은 저 개인적으로는 무척 감동이었습니다.

[분명 이야기는 더 있는데...나오질 못하는 ‘영원신검’ 시리즈의 2부, XUSE社의 ‘세이나루카나’]


 이 밖에도 ‘게임 요소’를 강조해서 만드는 브랜드는 여럿 있으며 제가 해본 바 유명한 작품은 XUSE 社의 ‘영원의 아세리아’ 시리즈가 있습니다. ‘영원신검’ 시리즈의 2부격인 ‘세이나루카나’를 끝으로 더 이상의 시리즈를 내지 않는 XUSE는 최근 중단했던 프로젝트를 새로 리뉴얼한 ‘신세묵시록 ~ Death March'라는 작품을 준비 중에 있다고 합니다.

[좀비물? 아직까진 베일에 쌓여있는 실험적인 요소로 가득찰 작품, ‘신세묵시록’]

 

 에로게를 단순히 한 편의 비주얼 노블로서의 에로게, 혹은 에로로서의 에로게로만 보고 편협된 관점에서만 바라본다면 ‘좋은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작품들은 더 많아질 수 있다고 봅니다. 전자로 분류한다면 00년대 초의 스토리텔링이 강조되었던 많은 작품들(지금까지도 명작으로 불리는 작품들)이 해당될 수 있겠고, 에로로서의 에로게의 후자면 단연코 블랙계열들의 에로게들을 들 수 있겠지요. 하지만 스토리텔링이 강조된 작품들의 경우 대체로 ‘캐릭터의 매력’을 드러내는 데에 소극적인 것들이 많고 심지어는 이야기 속에서 배제(죽음)해버리기도 합니다. (웃음) 에로만이 강조된 에로게의 경우 단순히 은밀한 욕구의 단기적인 충족이라는 목적만을 달성하여 에로게의 진면목을 발휘하고 있지는 못하다고 봅니다.

[미스테리하고 시리어스한 이야기 전개가 돋보였던 Lass社의 '소녀신역~소녀천옥'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각인된 숙명을 이겨내지 못하고 현실에 굴복하는 이야기 구조를 지니고 있다]

 

 결국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야기, 캐릭터, 게임요소, 에로’의 4박자가 골고루 갖춰지며 조화를 이룬 상태에서 특출한 한 가지를 강하게 어필하는 작품이 궁극적으로는 ‘좋은 작품’이며 ‘완벽한 작품’이라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제가 이번 글을 통해서 언급한 ‘좋은 작품’에서 결국 에로게의 완전체를 논하는 격으로 흐름이 바뀐 느낌이 들긴 합니다만 어디까지나 중요한 것은 유저들 마음속에 있는 ‘좋은 작품’은 변하지 않는 다는 것이며 그 어떤 게임도 그 속의 매력을 발견한 유저들에겐 ‘좋은 작품’이 되며 하나의 이름을 갖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포스트모던의 사회인 현재 어느 하나 ‘모범’이나 ‘정형’으로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제가 이 글에서 언급한 게임들이 결코 ‘좋은 작품’이라고 단언할 수 없습니다. 제가 밝혀내고 싶었던 것의 대부분은 에로게가 지닌 가능성의 영역을 좀 더 다양한 측면에서 발굴해내었으면 하는 바람이 큽니다. 


[모에키바라 후미타케의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인상적인 12월 20일에 발매 예정인 LoS 社의 ‘세계와 세계의 한가운데서’. 전작인 ‘타유타마’와 같이 깊은 감동을 안겨줄 수 있을까?]



['E-Mote' 모션 신기술을 도입하여 에로게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Windmill 社의 '위치즈 가든']


 사람이 창조하는바 모든지 예술이 되며 다양한 가치를 부여받을 수 있기에 에로게 또한 문학과 같이 한 사람이 창조해내는 것이 아닌, 각 분야의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경로로 참여하여 공동의 ‘하나의’ 작품을 창조하는 것이기에 그만큼의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그늘의 영역에 있다는 것을 이유로 시장이 쇠퇴하고 발전이 더딘 정체의 현상에 직면하고 있지만 ‘이야기+캐릭터+게임요소+에로’가 물리적 결합이 아닌 화학적 결합으로 나아가 에로게만이 창조할 수 있는, 그동안 보여주지 못한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완전한 작품’이 아닌, 다양한 스펙트럼을 뿜어내는 하나의 ‘좋은 작품’이 많이 만들어지길 바라면서...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P.Say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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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RuBisCO 2013/09/22 22:23 # 답글

    엘프가 쩌라가 되버린 지금 딱히 의욕을 돋구는 작품이 없어서 슬픕니다. 미육의 향기때만 해도 부활하는줄 알고 설레였었는데 그냥 회광반조였을 뿐이고... "딸감"이 아니라 게임으로써 의욕을 돋구는 건 이젠 너무 귀해지지 않았나 합니다.
  • 하운나래 2013/09/22 22:38 #

    elf 社야말로 많은 작품을 해보지 않았습니다만 에로게 초창기를 주름잡던 명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동시에 에로게 장르의 확실한 한 축을 형성하고 있었다고 보는데...에로게다운 에로게를 만든 건 어떻게 보면 elf 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요샌 풍요 속에 빈곤이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정말 게임으로서 의욕을 돋구는 게 무척 귀해졌네요.
  • 마루빵 2013/09/22 22:41 #

    저는 앨리스 신작들이 기대에 계속 못미쳐서ㅠㅠ 게임요소 강한 에로게로 말하자면 앨리스는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대제국나 란스퀘스트같은거 보면 대번장이나 란스6~7과 비교해서 영 빠지는 느낌이..
  • 하운나래 2013/09/22 22:49 #

    말씀대로 앨리스 소프트도 게임 요소 측면에서 에로게 역사상 혁혁한 공을 세운 브랜드입니다만...제가 앨리스 소프트 작품을 해본 게 없어서 언급하기가 어려웠습니다 ㅠ.ㅠ
  • RuBisCO 2013/09/22 22:52 #

    다만 남성향에서 한정하지 않고 오토메 게임들까지 가면 간간히 근사한 물건이 좀 있는거 같더군요.
  • 하운나래 2013/09/22 22:59 #

    오, 그렇군요...어찌보면 그런 마이너한 부류의 작품들이 오히려 더욱 열정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마루빵 2013/09/22 22:40 # 답글

    솔직히 요즘은 끌리는 에로게가 없네요..

    한창 덕질하던 시절엔 페이트로 입문해서 소레치루-셔플, key 4연작(리토바스까지), 다카포시리즈, 파르페-아오조라, 란스시리즈 등등 재밌게 한 게임 참 많았는데 말이에요 ㅠㅠ

    책장에 박아놓은 게임들 다시 해보니 옛날 느낌 안나는 거 보면 그냥 열정이 식은 탓도 좀 있는거같긴 한데 그런거 제쳐놓고서라도 할 맛이 안나더라구요. 주인장님 말씀대로 시나리오적인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도 많고..
  • 하운나래 2013/09/22 22:52 #

    저도 올해 하반기 나올 신작들을 쭉 보니 의욕이 생기지가 않아서 다시 과거작들에 손대고 있는 참입니다. 시나리오를 중요하게 여기시는 분들은 더더욱 가뭄과도 같은 요즘 에로게 시장에 많이들 답답해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 2013/09/22 23:0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9/22 23:3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환상그후 2015/05/25 22:16 # 답글

    4개의 요소를 전부 가질 수 있는 작품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스토리텔링과 캐릭터요소, 게임요소와 에로.
    스토리 텔링과 캐릭터 요소가 충분했어도 에로와 게임요소가 부족했던 에로게가 상당했고, 에로와 게임
    요소를 메인화 하면서 캐릭터요소와 스토리텔링이 죽어버리는 경우도 있었죠.
    이런 경우도 본 것 같네요. 스토리텔링과 에로가 너무 메인이 되서 캐릭터와 게임 요소가 죽어버린 경우.
    캐릭터 요소와 에로가 메인이 되니 스토리텔링과 게임요소가 죽는 경우가 있더군요.
    제가 해본 것들로 예시를 들자면
    캐릭터 요소와 에로를 메인으로 게임요소와 스토리텔링을 서브로 한 것들이라면 솔레이유 시리즈가.
    에로와 게임요소를 메인으로 한 것들이라면 전여신 시리즈.
    스토리텔링과 캐릭터 위주로 하여 남은 것들이 조금 부족해보였던 것들이라면 KEY 사 게임들 등을
    뽑을 수 있겠네요.

    완전한 건 나오기 힘들지만, 그에 필적한만한 작품은 언제고 나올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그게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자체부터가 가능성을 내제하고 있다고 해야겠지요.
  • 하운나래 2015/05/25 22:37 #

    저 또한 4개의 요소를 완벽하게 가질 수 있는 작품은 '공상' 속에서만 존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에로게 플레이 경험이 늘수록 그런 생각이 더 확고해져만 가요. 까놓고 말해 이상론이겠지요.

    스토리 텔링과 캐릭터 요소의 공존은 예나 지금이나 항상 어려운 난제이긴 합니다. 또 이를 작품성을 통해서 훌륭하게 풀어낸 게임들이 몇몇 존재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고요. 말씀해주신 KEY 사의 작품들이 그나마 스토리 텔링과 캐릭터 요소의 공존을 훌륭한 수준에서 풀어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만 대중적인 '트렌드'에는 살짝 맞지 않는 경향이 있고 말씀하신대로 에로 등의 나머지 부분들에 상당한 약점을 안고 있습니다. 저 개인적인 시점에서는 플레이한 작품 중에서 가장 유의미한 공존을 이뤄낸 게 화이트앨범2밖에는 없지 않나 생각해요. 어느 한 쪽은 확실하게 우수하다고 생각되는 작품은 매년 나오는 편입니다만 이 둘의 공존과 동반 상승에 성공한 케이스는 최근에는 없다고 봅니다.

    허나 마지막에 말씀하신 것처럼 4개 요소들 모두 브랜드 스스로가 퀄리티를 높이고 완성도를 높이려는 시도는 매년 몇몇 열정 있는 브랜드에 의해서 현실화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도 합니다. 또한 종래의 편견을 극복하게 만드는 인상적인 작품들도 꽤 많아져서, 완전하고 좋은 에로게에 대한 고정 관념을 살짝 바꾸면서도 그러한 본격적인 규모의 게임이 나오리라는 기대를 저 개인적으로는 저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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