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과 노을의 안식처


대도서관의 양치기, '스즈키 카나'의 압도적 인기 결과를 통해 본 에로게 패러다임의 변화 에로게이야기


** 지난 3월 31일에 작성한 글인데 증발했네요...? 뭐지 이글루스.................;; 다행히 네이버 블로그에 백업해둬서 살렸습니다.





['스즈키'라는 성은 평범한데, 인기는 평범하지가 않다.]


 지난 21일부터 28일까지 AUGUST 社의 공식 홈페이지에서 시행되었던 '대도서관의 양치기 캐릭터 인기투표'의 결과가 지난 29일에 발표되었는데요. 1위와 2위는 놀랍게도 25일 중간 순위에서 각각 1위, 2위를 차지했던 '스즈키 카나'와 '코다치 나기'가 변함없이 1위 2위를 지켰습니다. 그동안의 AUGUST 게임 인기투표에 있어서 이례적인 현상입니다. 그 때문인지, 제작측에서도 적잖게 놀라고 있는 모양입니다. 즉, 이렇게 인기를 끌 캐릭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죠. 실제로 오프라인 사전 조사(구입자 앙케이트 조사 등)에서는 이정도로 인기가 있지는 않았다고 하네요.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즈키의 첫 등장부터 압도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성도 평범하고, 가슴도 작습니다만...-_-)

 2위와 3위의 표를 합한 수만큼의 득표를 한 1위의 '스즈키 카나'라는 캐릭터가 분명 매력적인 것은 사실입니다만, 왜 매력적인가. 어째서 유저들에게 이만큼의 인기를 얻을 수 있었는가에 대해서 다시 조명해볼 필요가 분명 있습니다. 그동안의 인기투표를 보죠. 마이(여동생 캐릭터), 피나(완전무결 공주님), 하루나(현모양처 타입), 에리카(돌격 부회장), 리시아(어리숙한 왕녀), 피오네(우직한 여검사)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각각의 인물이 지니는 특징적인 '모에(?)'요소 -Charming Point- 가 있고 그것이 그 캐릭터의 정체성을 결정했죠.
 이번 대도서관의 양치기의 체험판이 나오고, 저 개인적으로 각 인물에 대해 코멘트를 하고 시나리오를 예상했을 때, 작품의 열쇠가 되는 나기를 제외하고는 '스즈키 카나'가 이런 캐릭터이며 이런 시나리오로 갈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짐작은 했지만, 그 정체성에 딱 맞춘 너무나도 현실적이면서도 평범한 시나리오일 줄은 몰랐던 거죠. 반면에 츠구미, 타마모, 센리의 이야기는 일종의 '왕도' 패턴을 걷습니다. 즉, 캐릭터만 보고도 시나리오를 알 수 있는 수준이었죠.
 이야기를 돌려서, '스즈키 카나'의 모에 요소는 작중 '우레시노 사유미'가 언급했던 붙임성 좋고 리액션 좋은 친근하면서도 가벼운 후배 캐릭터였습니다. 솔직히 이 정체성만으로는 그다지 경쟁력이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만, 놀랍게도 바로 이러한 스즈키의 매력이 유저들을 사로잡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리얼리티(사실성)가 느껴지면서도, 이상적인 특징을 한 번에 갖추고 있다는 점이죠. 그녀는 우리가 대학에서, 사회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그러한 인물이었습니다. 자신의 '속'을 드러내지 않고 철저하게 '겉'을 꾸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그녀의 모습에서 '현대인의 전형'을 획득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예상 외의 평범한 시나리오가 오히려 유저들 스스로가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는 커다란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이죠. 그녀가 갖고 있는 고민과 행동이 우리들의 그것과 무척 닮았기에 '성'도 평범하고 성적인 매력이 전혀 없는 신체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인간적'이면서도 친근한 고민에 모두가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 '공감'이 무척 중요한 '키포인트'입니다. 우리는 에로게를 접하면서 '공감'하기 위해서 플레이하지는 않습니다. 모두가 서로 다른 기대와 이상을 품고, '비일상'을 경험하기 위해 현실에는 없는 캐릭터와 접하고 대화하며 플레이하고 교류합니다. 이는 비단 에로게뿐만 아니라, 게임이 갖는 근본적인 목적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때문에 '게임', '에로게'에서는 '공감'의 감정이 그리 우선시되지 않으며 그것을 경험하기 위해 에로게를 하진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제작진이 시도한 '대도서관의 양치기' 그 속의 '스즈키 카나'라는 캐릭터는 무모할 수밖엔 없는 모험이었죠. 하지만 결과적으로 제작진이 유저들로 하여금 얻게끔 만든 그 '공감'이 이 작품에, 그리고 '스즈키 카나'에 열광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동안 AUGUST가 보여준 다른 어느 작품보다도 '학교 생활', '동아리 활동'에 치중되어 이야기가 전개되며 '트루 시나리오'는 아예 '학교'의 이야기가 주된 플롯이자 이벤트입니다. 주인공인 '카케이'를 비롯하여 '스즈키 카나'는 각자 개성 넘치고 평범하지만 함께 있어 즐거운 '도서부'의 일원으로 학교 생활을 보냅니다.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사건들은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면서도 어느 학원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입니다. 제작진이 밝힌 제작 의도인 '유저분들이 직접 도서부원이 되어 활동하는 것'을 느낄 수 있게끔 '양치기'라는 매력적인 판타지 소재도 뒷전으로 했습니다. 유저는 어느새 도서부의 한 일원으로서 몰입하게 되고 그들의 사소한 고민들에 '공감'하면서 한편으로는 부러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아, 나도 저런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었더라면.'
 결국 '스즈키 카나'라는 캐릭터가 인기를 얻게 된 것은 '대도서관의 양치기'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제작진의 '의도'가 모두 성공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직 '스즈키 카나'라는 인물만이 주인공과 더불어 '도서부'를 그만둘 지, 이어나갈 지 현실적인 고민을 하며 그 안에서 스스로 친구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합니다. 나아가 도서부의 일원으로서 무언가를 스스로 하려 했으며 '진정한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마음의 문을 열고 노력한 그녀의 현실적이면서도 애틋한 노력은 만약 우리들이 도서부에 들어간다면 어떨까? 라는 몰입에서 나오는 고민이며, 우리 스스로를 '스즈키 카나'라는 인물에 투영하면서 그녀의 고민에 깊은 '공감'을 할 수 있게끔 해줬습니다.

 그렇다면 왜, 유저들은 다른 것도 아닌 그녀에게 깊은 '공감'을 느꼈기에 이례적인 인기를 쏟아부은 것일까요? 이것은 조금씩 에로게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봅니다. 본격적인 에로게의 역사도 30년 가까이 되면서 어두운 '욕망의 배출구'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에로게'에 있어서도 변혁의 시기가 왔다고 봅니다. 만약 이 작품이 약 10년 전, 05년도에 나와 요아케나와 겨뤘다면 완패하고 말았을 겁니다. 더욱이 '스즈키 카나'라는 캐릭터는 수면 위로 올라오지도 못했을 지도 모릅니다. FA가 보여준 것처럼 이상적인 현모양처 캐릭터인 하루나가 인기를 얻었듯 메인 히로인인 '츠구미'가 카나 못지 않은 인기를 얻었을 겁니다. 하지만 13년의 지금은 사정이 다르죠. 지극히 이상적인 캐릭터(하지만 존재하지 않는)인 '시라사키 츠구미'보다는 이제 유저들은 현실적인 캐릭터 '스즈키 카나'에 자신들의 욕망을 투영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에로게를 통해서 '비일상'만을 경험하려는 욕망은 시들어가고 있습니다. 도리어 우리는 현실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지극히 '현실적인 것'을 에로게를 통해서, '대도서관의 양치기'를 통해서, '스즈키 카나'를 통해서 욕망하려 하고 동시에 공감하고 싶어합니다. 리얼보다 더 강한 리얼을 경험하고 싶은 우리들의 욕망. 이제는 '비일상'으로의 도피가 아닌, '일상'을 향해 마주하고 부딪치려 하고  공감하는 것에서 근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더불어서 '코다치 나기'라는 캐릭터도 '양치기'라는 소재만 빼면 그렇게 특징적인 캐릭터는 아닙니다. 그녀의 말투나 행동은 정말 옆 방의 우연히 알게된 클래스 메이트처럼 자연스럽습니다. 쿨한 성격과 그녀가 취하는 거리감은 우리가 만나는 현실의 인물과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녀에 대한 인기도 단연 그러한 그녀의 캐릭터에, 고민에, 행동에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이처럼 이번 '대도서관의 양치기'의 인기 투표는 꽤나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잠깐 다른 얘기를 하자면, 이와 같은 맥락으로 현대의 작품으로 거듭날 수록, 시나리오에 있어서 '사실감'이 높아지고 있달까요? 더욱이 그러한 작품이 좋은 평을 받고 주목받고 인기를 끄는 것 같습니다. 그 반대의 과거작, 에로게 역사의 한 획을 그은 '그것은 흩날리는 벚꽃처럼'과 'D.C. 다카포'를 보도록 하죠. 이 작품들의 시나리오의 핵심은 '신비한 경험(판타지)'입니다. 다시 말하면 논리적인 것으로 설명하기도 어렵고 설명도 안 될 뿐더러 논리적인 연결을 지으려 하면 작품 자체가 의미가 없어지고 재미가 없어져 버리는, 그런 커다란 헛점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죠. (당시 평도 무척 좋았습니다.) 하지만 요새 만약 이런 작품이 나온다고 치면 졸작이라는 평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라며 말이죠.
 이처럼 시대는 변했으며 에로게를 통해 추구하는 욕망의 표현 양상도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소레치루'의 작가 '왕작손' 氏의 신작 '달에 다가서는 아가씨의 작법'이 호평을 받은 것은 소레치루에서의 강점이었던 신비한 경험, 탁월한 유머 센스가 아닌, 신작의 철저한 시나리오의 짜임과 리얼리티가 한 몫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역시도 현대의 유저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완전히 다른 작품'을 만들어 냈던 것이죠. 이야기의 '논리적인 짜임'이 작품의 중요한 질을 결정하는 요즘의 경향을 잘 반영했습니다.
 이러한 에로게 패러다임의 변화 과정의 흐름 속에서 이번 '대도서관의 양치기'가 보여준 여러 모습은 짧은 에로게 역사적으로 깊은 의미를 남겼다고 생각합니다. 논리적인 짜임과 '언리얼 속에서 추구하는 리얼보다 강한 리얼', '공감의 요소' 등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통해서 현대 사회 속 인간 관계 총체성을 적절하게 반영하며 AUGUST만의 '리얼리즘'을 창조해냈습니다. 이러한 변화와 발전의 양상을 '대도서관의 양치기' 작품과 더불어 그 인기 투표의 결과를 통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긴 글 읽으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하운나래 (13.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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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구라펭귄 2013/12/10 19:46 # 답글

    성우연기도 한몫했다고 봅니다.
  • 하운나래 2013/12/10 19:52 #

    말씀대로 하루카 소라와 정말 잘 맞는 캐릭터였다고 봅니다.
  • 밥상뒤집기 2013/12/10 19:53 # 답글

    센다이 에리가 굉장히 좋은 연기를 해줬죠. 덕분에 양치기이후로 작품을 쫒아댕기고있습니다
  • 하운나래 2013/12/10 21:47 #

    최근에 많은 작품에서 목소리가 들리네요. 항상 반갑고 친근한 목소리가 인상적입니다.
  • Dj 2013/12/10 21:03 # 답글

    스즈키 카나랑 남주 친구 캐릭과의 콤비는 정말 공통루트에서 엄청난 폭발력을 자랑했죠

    팬디에서의 활약 역시 매우 기대됩니다
  • 하운나래 2013/12/10 21:48 #

    팬디에서는 카케이랑 붙어버려서 흑흑...팬디에서도 역시 새로운 개그 콤비가 필요합니다!
  • Dj 2013/12/10 22:13 #

    아 팬디에도 공통루트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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