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과 노을의 안식처


BEST 에로게 파헤치기! - WHITE ALBUM 2 '캐릭터' 편 BEST 에로게 파헤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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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ST 에로게 파헤치기! - WHITE ALBUM 2 '이야기' 편

** 이 게시글은 본 이글루스의 주인장이 평가한 작품들 중에서 '종합 점수' 90점 이상 혹은 '개인평' 95점 이상의 걸출한 에로게 작품의 특징을 파헤치는 글입니다. 따라서 기존의 에로게 '단평'과는 글의 성격이 다소 다르며, 작품이 지니고 있는 '고유의' 장점을 중점적으로 살피면서 '좋은' 에로게가 지니는 특징들을 여러 작품에 걸쳐 살펴보고 있습니다.

** 세부적으로는 평가 항목과 동일하게 '이야기', '캐릭터', '게임성' 순으로 살펴볼 것이며 '그 외'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면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 이 글은 해당 작품의 내용 누설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 게임명 : WHITE ALBUM 2
** 제작사 및 년도 : Leaf (2011)
** 원화 :
なかむらたけし桂憲一郎柳沢まさひで
** 시나리오 : 丸戸史明with企画屋

 

평가 범주

별점 (5개 만점)

점수 (100점 만점)

이야기 (30%)

내용 및 구성

★★★★★

98

주제 의식

★★★★★

캐릭터 (30%)

캐릭터성

★★★★★

98

캐릭터 완성도

★★★★★

게임성 (20%)

음악, 성우

★★★★★

83

작화, 그래픽, 연출
(CG: 149개소)

★★★☆

게임 시스템 및 인터페이스

★★★

에로
(H신: 24개)

★★★

개인평 (20%)

★★★★★

100

종합 점수

★★★★★

95


 

※ 캐릭터 (등장인물)


 6. 화이트 앨범 2는 캐러게다?
: WA2의 시나리오는 극적인 사건 전개에 따른 자극성보다는 상징적인 두 히로인과 주인공이 펼치는 삼각관계에 따른 감정, 내면 심리의 충돌에 무게를 두기 때문에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캐러게의 일반적인 전형에서는 벗어났지만 ‘캐러게’에 포함시킬 수 있다. 일반적으로 캐러게란, 스토리게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쓰이기 마련인데, 스토리-캐릭터의 천칭은 어느 한 쪽이 있고 없음의 문제가 아니라 정도의 차이다. 때문에 스토리게 또한 캐러게의 측면을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캐러게 또한 스토리게에서 보여주는 진지하거나 무게감 있는 전개를 선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WA2는 캐릭터들을 위해서 짜여진 시나리오를 지니고 있는 ‘캐러게’에 더 가깝지만, 이 작품이 보여주고 있는 시나리오의 수준이 캐릭터들을 특별한 수준에까지 파고들며 그 매력을 극대화하면서 동시에 소재로 삼는 삼각관계와 음악을 마찬가지로 특별한 경지에까지 이르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우린 WA2를 캐러게로 생각할 수 없게끔 유도한다. 하지만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WA2를 스토리게와 캐러게 둘 중 어느 쪽에 그나마 가깝냐고 필자에게 묻는다면, 필자는 조심스럽게 ‘캐러게’에 무게를 둘 것이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캐러게’이지만 시나리오가 캐릭터를 특별한 경지에 이르도록 완벽하게 구성되어 있는 ‘역대급 캐러게’라는 것이다. 

  이 작품이 스토리게인지 캐러게인지 애매하다면, 다른 소위 ‘명작’이라 불리는 작품들의 스토리와 비교해보면 좋다. 필자가 전에 다룬 ‘예익의 유스티아(AUGUST, 2011)’와 비교해봐도 그 차이가 뚜렷하다. 스토리게와 캐러게는 해당 작품이 어느 쪽에 더 우위를 두고 있느냐는 식으로도 설명을 할 수 있지만,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 그리고 양손잡이 이렇게 구분하는 게 더 올바른 부분이지 않나 싶다. (어느 한 쪽이 우월하다고 해서 어느 한 쪽이 약해지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7. 상징적인 히로인 배치와 사실적 투영
: WA2의 캐릭터적 측면에서 가장 주목할 수 있는 부분은 역시 치밀하게 배치되어 히로인 그 자체가 하나의 상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더욱 특별한 점은 그 상징이 작품의 전개에 걸쳐서 ‘서서히’ 플레이어의 흐름에 맞춰서 완성되어 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처음부터 학창시절의 카즈사는 하루키의 이상이나 로망으로 자리 잡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돌’인 세츠나와의 만남과 그녀와의 교류가 하루키에게 있어서는 더 특별한 로망이고 이상이 될 수가 있다. 허나 CC, coda에 접어들며 캐릭터들은 각자의 상황과 처지, 환경에 영향을 받으며 조금씩 하루키를 가운데에 두고 대립극으로 멀리 떨어진다. 결국 카즈사는 하루키가 가슴 한켠에 갖고 있는 숨겨진 이상이며 로망이 되고, 옆에서 자신을 지지해주는 세츠나는 그가 처한 현실로 자리 잡는다. 카즈사의 그랜드 엔딩이 어째서 ‘배신’이 되는지는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도망치고 항상 꿈꿔왔던 이상과 로망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는 하루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라, 우리들 모두에게 주어진 영원한 숙제일지도 모르겠다.
 
  메인급 히로인 2명은 이렇게 하루키의 심리와, 인생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면 나머지 서브(?) 히로인 3명은 이들과 다소 성격이 다르다. 굳이 따지자면 ‘현실’에 처한 인물들이고 각 인물들이 처한 공간은 직장, 대학교, 고등학교로 분명하게 나뉜다. 이러한 구분은 선택의 연속인 우리네 인생을 많이 빼닮았다. WA2는 이례적으로 메인급 히로인 2명뿐만 아니라 다른 서브 히로인 3명의 인기도 꽤 좋았다. 하루키를 통해 사실적으로 투영되고 있는 WA2의 세계는 역시 그 세계를 채우고 있는 특별한 ‘히로인’들이 있기 때문에 매력적이다.


 8. 섬세한 인물 내면 심리와 감정의 주제화
: 이 작품이 일반적인 스토리게나 캐러게와는 약간 다른 위치에 있다고 한다면 역시 이 부분 때문이지 않을까. 보통 등장인물들의 내면 심리나 감정들을 세밀하게 조명하는 것은 해당 캐릭터들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고 이 캐릭터들의 완성도가 높아지면 유저들은 해당 캐릭터들을 더 깊이 있게 받아들이거나 쉽게 공감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이 시나리오와 잘 맞물리게 된다면 시나리오의 깊이와 완성도를 확보할 수도 있게 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일반적으로 이는 작품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핵심’이 되는 무언가 – 스토리나 캐릭터 –를 강조하기 위한 ‘수단’의 일종인데, WA2는 ‘삼각관계’를 소재로 들고 나오면서 이러한 개인과 인물 간의 내면 심리와 감정, 이 자체를 전면에 내세워 다른 소재들과 동등하게 ‘핵심 소재’로 격상시키고 있다. 때문에 ‘어느 작품에서도’ 존재하는 인물 내면과 감정을 다루는 것이 이 작품을 설명할 때는 ‘필수 요소’이자 그 자체로 월등한 ‘경쟁력’이 되는 것이다.


 9. 우유부단한 주인공의 클리세에서 벗어나지는 못함
: 이 작품의 한계점이라고 한다면 한계점일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주인공’에 있다. 우리가 이 작품을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하루키’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웃음) 그가 너무도 ‘우유부단’하고 확실하게 결정내리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는 탓에 세츠나가 극심히 고통 받는다는 점과 어정쩡한 관계로 남아버린 카즈사를 향한 뚜렷한 의사 표현이 없기 때문이다. 본래 ‘삼각관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조건(문제)가 있다. 첫 번째 조건은 바로 ‘삼각관계’의 원인이 ‘삼각관계’를 구성하고 있는 인물들 내부에 있는 것이고 두 번째 조건은 ‘삼각관계’의 고리 바깥의 환경적 요인에 의해 ‘숙명적’으로 그러한 관계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전자는 WA2에서처럼 ‘삼각관계’의 고리 안에 있는 인물들의 내면 심리와 감정에 따라서 해소될 가능성이 생기며, 후자는 환경적 요인의 극복을 통해서 해소될 수 있다. 후자의 경우, 쉽게 말하면 ‘약혼자, 정혼자’라는 집안의 강제적, 종속적 요인에 의한 것이 우리가 떠올리기에 가장 쉬운 것이라 할 수 있다. 후자의 경우 하지만, ‘삼각관계’라 하기엔 다소 미묘한 부분이 있을 수는 있겠으나 현실적 상대와 이상적 상대 사이에서의 갈등이 역시 핵심 갈등이 될 수밖에는 없으므로 삼각관계의 또 하나의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문제는 WA2는 일견 생각해보면 위 두 가지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하루키가 갖는 세츠나 집안과의 관계는 그가 세츠나를 포기하고 카즈사를 선택하기 더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는 일종의 반강제적 종속 요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하루키’ 자신 스스로의 선택(우유부단)에 의해 그 종속적 요인이 더 강해지는 것이지, 그의 힘이 닿지 않는 외압에 의해 강제적으로 종속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 ‘삼각관계’를 말도 안 되게 복잡하게 얽어놓은 하루키를 까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웃음)
 
 애초에 ‘삼각관계’라는 소재는 ‘일반적’이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에 어떤 요소를 뒤틀거나 꼬아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 부분을 하필 주인공의 ‘성격적 타입’에 걸고 있기 때문에 하렘물이나 다른 미소녀 게임에서 겪었던 우유부단한 주인공의 모습과 겹치며 둘 다 좋은데 누구 하나를 차마 버릴 수가 없어! 라는 우유부단의 클리세를 그대로 취하고 있다는 점이 WA2의 한계점이라 할 수 있겠다. 만약 외압에 의해, 혹은 필연적으로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 의해 세츠나와 카즈사 사이에서 갈등했더라면 WA2는 ‘완전무결’의 작품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 '에로게' 캐릭터 측면으로서의 특징 및 장단점:
▲ 현실감이 살아있는 뛰어난 완성도의 등장인물
▲ 수준급인 등장 인물들의 내면 심리와 감정의 포착
▲ 등장인물의 상징적 배치
▽ 삼각관계의 '우유부단' 클리세를 벗어나지 못함


** 가독성을 위해 '게임성 및 그 외'는 다음 포스팅에서 이어집니다.
** P.S. 다음 파트는 내용이 적어 한 번에 합쳐 포스팅할 예정이었는데 몸상태가 갑자기 안 좋아져서...ㅜ.ㅜ 죄송합니다.


덧글

  • 유스티아 2014/11/23 00:52 # 답글

    이른바 "화앨2"라고 하면 주인공의 찌질함, 혹은 주인공의 우유부단함이 갑이라고들 하지요(웃음). 화앨도 빨랑 잡아봐야되는데 할 작품이 워낙많아서... ㅜㅜ 이것도 대충 네타를 피하는 방향으로 읽고갑니다...(시무룩)
  • 하운나래 2014/11/23 19:03 #

    아무래도 자극성 있는 스토리 라인을 가진 작품이 아니고, 삼각관계에 처한 주연 3명의 감정과 심리를 주무기로 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흥미가 가기는 쉽지는 않습니다. 다만 플레이 하게 되면 굉장한 몰입감을 주니 맘 잡고 시간 내서 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유스티아 2014/11/23 22:17 #

    몰입감 뛰어난건 유명하지요... 일명 하얀마약이라고까지 불릴정도니까요! 이제 시간도 널럴하니 거짓왕자 깨고다른몇개 마친다음 잡을생각입니다 ^^~
  • 뽀로리 2014/11/23 15:00 # 삭제 답글

    흔히 하루키의 찌질함을 욕하곤 하지만, 사실 스토리 안에서 자기가 자기도모르게 좋아하고 동경해왔던 카즈사, 그리고 학교의 아이돌이면서 실은 평범하고 소탈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걸 자신에게 보여주고 자신에의 호감을 여실히 드러내는 세츠나, 두 명의 절세미인(이게중요) 사이에서 한낱 범생이 모솔고딩에 불과하던 하루키의 방황은 기정사실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우린 주변에 이런 여자들이 없어서 이런 고민조차 할 필요없는 우리 자신들을 까야 합니다(?)
  • 하운나래 2014/11/23 19:05 #

    한편으론 하루키의 입장에 제가 처한다면 과연 카즈사나 세츠나 둘 중 한 명을 완벽하게 버리고 다른 한 명을 선택할 수 있을까...생각을 해봤는데 저도 하루키와 같은 길을 택할 것 같다는 기분을 버릴 수가 없군요. (웃음)
  • 검휘 2014/12/06 03:02 # 답글

    잘봤습니다!
    유유부단함이 작품을 깎는 결과가 되었다고 하셨는데 저는 살짝 생각이 다르네요.
    하루키가 카즈사와 세츠나 둘 중에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충분한 인과 관계를 넣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루키가 카즈사를 세츠나보다 먼저 좋아했던 것을 깨닫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선택을 하지못하는 것이죠.
    (괜히 신경쓰이는 이 마음이 사랑인지를 몰랐던 것이죠.)

    세츠나도 좋고, 카즈사도 좋다. 누굴 선택하면 좋을까 라는 유유부단함이 아니라
    하루키의 타인을 생각하는 성격이 사랑을 하게된 순위를 알게됨으로서 심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하루키가 선택공황장애가 걸린 주인공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데
    주변에는 그런 평이 대체적이고, 스트레스 받는다는 평이 많아서 살짝 아쉽네요.
  • 하운나래 2014/12/09 09:08 #

    댓글 감사합니다!

    이 작품이 두고두고 훌륭한 작품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인물들의 표면에 드러난 행동이나 대사로 갈등이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각 개개인이 하루키 혹은 세츠나나 카즈사에게 감정 이입하거나 몰입 혹은 공감하여 바라보게 한다는 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설령 그 '우유부단'도 누군가에겐 공감의 요소가 되어 오히려 인물뿐만 아니라 작품 자체를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만들어 줍니다. 작품에 드러난 것 이상으로 등장인물에 대한 해설이 첨부됩니다. 검휘님의 말씀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러한 것이 결코 그른 해석 또는 확대해석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습니다. 작품을 더 풍부하게 해주는 것은 역시 검휘님과 같이 다양한 분들의 풍성한 고찰과 팬덤이니까요. 좋은 댓글 감사드리며 답글이 늦어진 점 죄송합니다. (__)
  • eidyf 2015/07/22 18:47 # 삭제 답글

    우연히 이글루에 처음 오게 됐습니다. 하운나래님의 글을 잘 읽었습니다. 야겜에 대한 엄청난 열정, 가치를 판단하는 능력이 있으시네요. 칼럼에서 다룬 야겜의 일반론은 구구절절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예전부터 느끼던 점이라서 깜짝 놀라기도 했고요. 일본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닙니다. 또, 우연의 일치겠지만 그런 특론에서 예시하는 적지 않은 게임이 제가 해본 것이기도 하네요.

    참고로 키네틱 노벨이나 비주얼 노벨, 연애 시뮬레이션의 구별을 말씀드릴게요. 먼저 키네틱 노벨은 VA의 특정 레이블일 뿐 다른 노벨 게임의 장르와 구분이 안됩니다. 비주얼 노벨은 텍스트 오버레이 공간이 화면 전체를 아우르는 UI를 가집니다. 연애 시뮬레이션은 오버레이 공간이 화면의 약 20~30%를 차지하고요. 이런 구별은 90년대 LVNS(Leaf Visual Novel Series)가 나오면서 확실시됐다고 보면 됩니다.

    비주얼 노벨과 연애 시뮬레이션의 구별이 이야기의 수준(취향이 아님)에 따른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말도 안되는 것입니다. 다만 비주얼 노벨은 글의 비중이 압도적이라서 소양 있는 작가가 반드시 요구됩니다. 하운나래님의 '트렌드'의 출시되는 게임 대부분이 연애 시뮬레이션이라는 점, LVNS에서 '투하트2'가 비주얼 노벨이지만 글자 수가 적게 나오도록 조절한 사례를 생각해보면 이런 사실이 금방 이해될겁니다. 또한, VA의 키네틱 노벨의 브랜딩(branding)도 못했으면서 키네틱 노벨이라는 단어를 차용할 수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장르 놀음은 제작자의 희망이 반영된 것일 뿐입니다. 키네틱 노벨, 비주얼 노벨, 연애 시뮬레이션의 구별을 할 줄 모르는거죠. 그래서 자기 맘대로 하는거고요.

    이외에, 칼럼에서 보편타당하며 모범되는 이야기를 한 것과는 다르게 '화앨2'나 '하쓰유끼사꾸라' 같은 과대평가된 망작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셨더군요. 많은 사람이 님과 같이 '화앨2'를 먼저 나온 게임들에 비해 (매우 모호한 표현이지만) 심리 묘사가 투철하고 이야기의 흐름과 연출이 좋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정중한 묘사 덕분에 캐릭터에 논리성이 있다는 거죠. 이게 '화앨2'가 캐릭터 게임(템플레이트 게임)과는 다르다는 평가의 근거이죠. 기억으로는 아마 몇 년 전~예전부터 동일한 작가가 쓴 여러 게임이 비슷한 맥락에서 호평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화앨2'는 전반적으로 논리성이 부족한, 평범한 게임입니다. ic에 선택지가 없어서 현실감이 전혀 없죠. ic만 봤을 때에는 디지털 소설 같은 장르로 괜찮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cc와 coda라는 다음 이야기가 있고, 그것을 위해 ic에는 선택지가 없게 됐습니다. 플레이어의 의지 없이 어떻게 이딴 식으로 게임이 (cc와 coda의 내용으로) 진행되죠? 한마디로 첫 시작에 나오는 말 '어떻게 하다 이렇게 된 걸까...'를 플레이어로서는 끊임없이 되새기게 하는 게임이 '화앨2'입니다. 애초에 이 게임은 이 글의 수준까지 논의될 가치가 없습니다.

    ic 때문이기도 하지만, cc와 coda의 내용도 자체만으로 전형적인 편의주의 게임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특이한 어떤 캐릭터에 상징성을 부여하긴 하는데, 편의주의 혹은 감상주의의 연장선에 불과하죠. 저는 cc와 coda를 하자마자 이것이 어떤 소설 작가의 성향을 따른다고 단정지었습니다. 주인공 이름을 보면 알텐데요. cc와 coda에 흐르는 일관된 분위기를 즐긴 사람일수록 그 소설 작가를 선호할 경향성이 있을겁니다. 이런 관점이 '화앨2'의 논리성 없고 안이한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게 한 가장 큰 원인입니다.

    '하쓰유끼사꾸라'에 대해서는... 글이 너무 길어져서 패스~
    이글루에는 방명록이 없어서 부득이하게 여기에 글 올릴게요. 고맙습니다.
  • 하운나래 2015/07/22 23:54 #

    안녕하세요, 양질의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전반부의, 명칭에 관련된 해설은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다만 명칭의 세세한 구별이 더 이상 유의미하다고는 개인적으론 생각하지 않아서 저로서는 현재 통칭 '에로게'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소위 '연애 시뮬'과 '비주얼 노블'의 주된 차이점으로 언급하신, 텍스트 오버레이에 관해서는 '구별'의 한 가지 방법임에는 틀림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이제는 과거의 기준이라는 점에서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위 구별법만을 양자의 차이로 인정하게 되면, 근 몇 년간 발매되는 90% 이상의 에로게는 모두 '연애 시뮬레이션'이라는 틀에 갇히게 됩니다.
    현재의 에로게 트렌드상 '그래픽'과 '캐릭터', 그 이외의 요소들이 강조되기 때문에 텍스트 오버레이를 화면 전체로 끌어올리기엔 위험 부담이 있고, 유저들 또한 이를 원하지 않습니다. 이는 장르의 구분을 가르는 접근이 아닌, 노벨이 갖는 특수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장치로서 활용되는 뉘앙스가 있습니다. 또한 굳이 텍스트 오버레이를, 말씀하신 LVNS의 방식으로 취한다 할지라도 제작자의 의도와 목적이 노벨에 있다면, 그건 노벨 게임으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시스템적 틀로서 작품의 장르가 결정되는 시대는 이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진짜 의미에서의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은 텍스트 오버레이보다는 게임의 방향성과 목적, 즉 '연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hibiki works의 작품인 프리티케이션 시리즈가 이 장르를 충실하게 실현하고 있는 현대적 '미연시'겠지요.(이 경우 패러미터의 도입은 미연시 고유의 시스템적 특질이고 개성으로 다가갈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장르 이외에 연애 시뮬이니, 비주얼 노블이니 어떠한 뚜렷한 기준으로 재단하고 구별하는 것은 지금의 트렌드에선 유의미하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냥 에로게로 부르는 것이고요.

  • 하운나래 2015/07/23 00:02 #

    그리고 댓글 닉네임에 달린 링크를 타고 화앨2와 관련된 글을 잘 읽었습니다.
    언급해주신 화앨2에 관한 견해는 저로서도 충분히 납득 가능하고, 이 작품의 분명한 한계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한계점만을 꼬집어 작품 전체를 마냥 부정하는 것은 저로서는 힘든 부분이에요. 어차피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게임이기도 하고, 어떤 작품이든 수용자의 코드에 맞지 않으면 그건 그 개인에게 있어 ‘쿠소게’가 됩니다. 작품성과는 별도로 말이죠.
    이 작품은 언급하신 논리성, 선택지 요소(저는 게임성으로 묶습니다)의 취약점을 인정하더라도, 그 다른 부분에 있어 작품 내부에서 충분히 내적 의미를 형성함과 동시에 많은 수용자들의 정서적 공감과 몰입을 일으킨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포스팅을 통해 흔들리지 않는 저만의 이 작품을 바라보는 ‘통찰’을 지니고 있습니다. 댓글을 달아주신 님과 같이 말이죠. 이를 통해 이 작품이 단순히 ‘대중’의 정서에 호소하는 평범한? 캐러게로만이 아니라, 충분히 작품론 측면에서 또한 내적 의미를 성취하고 있는 스토리게로서도 바라보고 있는 것이고요.
    어떠한 작품이든 장단점은 반드시 존재합니다. 어느 면을 볼 것이며, 어느 면을 강조할 것인가 역시도 개인의 몫이겠죠. 저는 단점보단 장점을 강조하는 방향에서 이 작품을 긍정적으로 평하고자 했습니다.

    하츠유키사쿠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전 애초에 하츠유키사쿠라를 마냥 긍정적으로 보고 있진 않아요. 소위 ‘분위기 게임’이라는 걸 부정하지 않고, 논리적 개연성이나 스토리게로서 취약한 부분이 많아, 스토리게보다는 오히려 특색있는 ‘캐러게’로 바라보고 있고 그렇게 평가하려 합니다.
    저 개인적인 평가 지침과 방향은 잘 된 부분은 잘 되었다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아니라고 천칭에 다는 것과 동시에 작품의 장점을 최대한 극대화해서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물론 단점이 장점을 커버하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작품은 가차 없이 까내립니다만, 하츠유키사쿠라는 이 역시 이미 ‘대중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작품이고 저 역시 그렇게 평가받을 수 있는 부분이 이 작품에 충분히 있다고 인정합니다.

    작품을 바라보는 관점과 시선, 통찰의 방법이 다른 것뿐, 저는 특정 개인의 작품론과 가치관을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포스트모던의 시대에는 작품은 작품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수용자 개인과 더불어 거대한 대중 담론(또는 팬덤)의 영향이 지배적입니다. 뭣보다 서브 컬쳐 중의 서브에 해당되는 에로게는 더 이상 특정 팬덤이 형성되기 어려운 지경에 있지요. 그런 의미에서 화앨2의 적잖은 팬덤을 마냥 무시하기도 어려워 보입니다.

    다시 한 번 양질의 댓글에 감사드리고, 저도 편협한 관점에서 벗어나 좀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된 것 같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고, 블로그에 좋은 글이 많은데 종종 들르겠습니다.
  • 139cm 2015/07/24 19:28 # 삭제 답글

    '하쓰유끼사꾸라'를 님이 좋게 봤다고 이야기한 것은 평점 때문입니다. 저는 평점을 매길 때는 제가 과거에 한 게임 중 하나만을 골라 그걸을 refer합니다. 님도 엑셀해 정리해놓은 설명이라든지 이런걸 보면 분명히 같은 취지에서 평점을 매기는 것일텐데... 그 게임 평점이 지나치게 높아 보여서 그렇게 말한겁니다. '하쓰유끼사꾸라'를 혹평하는 근거는 님과 저의 의견 차이가 명확하다고 생각되어 말하지 않겠습니다.

    나머지는 이게 아닌데... 의외로 답답하네요.

    비주얼 노벨, 연애 시뮬레이션의 구별... 이거 과거의 기준이 아닙니다. 지금도 이 기준이 유효함을 님 블로그에서 다루는 게임을 들어 말씀드렸죠. 비주얼 노벨과 연애 시뮬레이션의 구별은 대체적으로 이야기의 객관적인 수준 차이로 이어집니다. 그것이 UI의 다름으로 이어지는거고요(텍스트와 이야기에 많은 노고를 할애). 비주얼 노벨이 만들기 쉬울까요, 연애 시뮬레이션이 만들기 쉬울까요? 님이 말하는 위험 부담이라는 건 사실 터놓고 말하면 시나리오 작가들의 무능함과 멍청한 소비자 때문이죠. 물론 이해 못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야 돈이 벌리겠죠.

    파라메터는 선택지를 활용하지 못하거나 야겜의 게임성을 잘못 이해한 경우입니다. 파라메터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극히 드뭅니다. 90~00년대 야겜 잡지를 보면 '이런 지루한 시스템은 넣지 않았으면 한다'는 표현이 흔하게 보이거든요. 저는 님의 블로그와 마찬가지로 제가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 생각을 다른 사람이 정확하게 말하는 때를 보고 많이 놀라곤 합니다. 말씀하신 'PC2'는 그냥 연애 시뮬레이션인데 왜 그것이 비주얼 노벨과 연애 시뮬레이션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사례가 되죠? 비주얼 노벨 UI를 채택하면서 평범한(=캐릭터적) 내용을 다루는 게임은 없습니다.

    결정적으로 이걸 말하지 않아서 큰 오해를 하게 된 것 같은데요, 위에서 연애 시뮬레이션이라는 말은 진짜 모의 연애를 말하는게 아니라 UI의 형태를 말하는겁니다. 우리가 '구별을 위한 장르로서의 연애 시뮬레이션'의 가장 원시적인 형태가 '이야기(내용)으로서의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예전에 등장했기 때문이죠. 이런 내용은 제가 임의로 하기 전에 몇몇 책에서도 언급된 내용입니다. 결정적으로 야겜 제작진은 리프를 빼고는 절대 비주얼 노벨이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노벨 게임의 일종인 비주얼 노벨, 연애 시뮬레이션은 이건 명확하게 구별해야 합니다. UI의 차이로 말이죠.

    그리고 현대사상은 제가 잘 모르기 전에, 이 이야기에 대입할 필요가 없습니다. 일본의 사회학자, 문화평론가 등이 야겜을 서브컬처와 묶고 그것에 대해 언급한 책이 여러 권 있으며 주지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 야겜에 대해 가장 많은 (구체적인) 이야기를 한 사람이 어떤 사회학자이고, 그가 '포스트모던'을 집중적으로 언급했었습니다.

    어쨌든 그 사람이 한 이야기는 굳이 현대사상 등 인문학계의 관점을 가져올 필요가 없는, 게임 플레이어의 관점으로만 보면 되는 것을 멋대로 정한 측면이 있습니다. 님과 저처럼 야겜하는 사람들은 이미 알고 느끼는 내용을 왜 현대사상을 들먹거리면서 잘난 듯 해석 혹은 왜곡하냐 이거죠.

    그가 야겜과 그 플레이어를 불필요하게 인문학적으로 해석하긴 했어도, 환경적 분석이나 야겜의 소재주의에 대한 내용은 님의 특론처럼 동의할 수밖에 없는 부분입니다. 그는 '환경적 분석'이라는 신조어를 쓰는데 이게 바로 님이 이야기하는 가치관 혹은 취향 운운과 관련이 있습니다. 기존의 작품을 대하는 태도 - 특히 소설(문학)을 평가하는 종래의 관점으로는 서브컬처의 산물을 제대로 볼 수 없으니 환경적 분석, 쉽게 말해서 소위 '취존'의 관점으로 보자는게 그 주된 내용입니다.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질이 낮은 요즘 야겜을 과대평가하는 세대의 관점은 환경적 분석에서 말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그러나 환경적 분석을 들여온다고 못난 게임이 잘난 게임이 되는게 아닙니다. 명작이 괜히 명작의 칭호를 받는게 아니며, conventional한 모범적인 플레이와 감상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님은 지금 포스트모던이나 다원주의 등의 사회학적 관점과 그걸 기반으로 한 감상주의를 통해 '화앨2'을 명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수의 관점이라고 항상 진실이거나 옳은 게 아닙니다. 님을 포함해 그 다수의 '정서적 공감'의 근거가 틀렸음을 정중하게 말씀드립니다.

    모든 플레이어는 자연스러운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그 자연스러움이라는게 다른 말로 하면 논리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 논리성이라는 것은 수학이나 논리학에서 말하는 그런 엄밀한게 아닙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감상주의(sentimentalism)의 반대인데요.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고 칩시다. '학교에서 모범생인 쉬키라는 애가 있습니다. 얘가 어느 날 자기 가족을 전부 죽였습니다. 이유는 짝사랑하던 아이가 자기의 고백을 거절해서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저 말만으로 쉬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죠. 따라서 이 수준에서 쉬키의 행동은 논리성이 없습니다. 논리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주로 쉬키의 이야기, 일거수일투족을 알아갈 필요가 있겠죠. 설정과 소재가 도입될 수도 있겠고요. 그러나 논리성이 있는 캐릭터, 이야기를 만드는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게임은 이러는데 실패합니다. 결과적으로 동일한 언행에 대해서도 그 묘사와 전달 방법에 따라서 천차만별로 생각되고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런 과정의 허실에 따라 쉬키의 행동에는 논리성과 현실성이 부여됩니다. 만약 논리성이 없는데 쉬키는 가족을 죽였다, 이러면 이게 감상주의입니다. 어떤 감상을 받을 제대로 된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았는데도 그런 내용에 공감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죠. 그리고 캐릭터 게임+감상주의가 요즘 야겜의 이야기 노선입니다. '화앨2'도 여기서 거의 벗어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야기의 기본 환경이 생성되는 ic에 선택지가 하나도 없으며, 그 덕분에 cc와 coda라는 이후 이야기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야겜의 이야기와 시점은 주인공과 플레이어의 일치를 상정합니다. 이야기에서 선택지가 나온다는 것은 플레이어(주인공)의 태도, 심리를 정하는데 비할데 없는 중요성을 지닙니다. (이건 지금까지 나온 게임으로도 아주 잘 증명됩니다. 못난 게임은 선택지가 없거나 어처구니없는 선택지 내용과 이야기 전개를 가질 때가 아주 많습니다.) 선택지에 따라서 극과 극이 갈릴 수 있고, 고로 '화앨2'를 해보거나 하는 우리로서는 하루키가 유키나에게 교실에서 키스를 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otherwise의 생각을 할 수 있죠. 플레이어의 의지 개입이 야겜의 이야기가 논리성을 가지는 좋을뿐만 아니라 꼭 있어야 하는 현상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화앨2'에는 그게 없습니다. ㅡㅡ;;; '플레이어와 주인공 합치의 관점'이 없다는 말이죠. 걍 작가가 만들어놓은 이야기를 그대로 타고 가야합니다. cc와 coda에서 주인공 일행의 찌찔대는 치정극을 보기 위해서요. cc와 coda는 논리성이 없습니다. 더구나 '멍청한 모범생'들의 늘어지는 이야기를 플레이어에게 일방적으로 주입할 권리는 작가에게 없습니다. 그걸(ic가 아니라 cc와 coda)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는 것은 그들의 감각이 왜곡되어 있음을 의미하고요.

    물론 캐릭터 자체에도 현실성이 없으며(나중 이야기를 위해 작가에 의해 작위적으로 설정됐으니), coda는 그렇다 쳐도 cc에서 주인공에게 당연한 듯이 달라붙는 여자들은 뭐...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인 '해변의 카프카'나 '상실의 시대'는 '화앨2'의 cc는 물론이고 수많은 야겜과 구도가 대단히 유사합니다. 많은 히로인이 주인공에게 꼬이며, 감정 묘사가 모호하고, 내면적 발전이 전무하죠. 왜 하필 이런 못난 작가를 추종했는지 의아할 따름입니다.

    ic 자체만으로 '화앨2'는 훌륭한 디지털 소설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음악 따위를 이용한 극적이고 유치한 애니메이션적 연출, 일견 봐서는 진지해 보이는 내용이 그 근거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cc와 coda를 끝내는 순간, ic와 이 캐릭터들 - 비교적 인간 같았던 주인공 일행 - 이 cc와 coda라는 이야기의 확장을 위해 작위적으로 구성됐음을 인지하는 순간, 이 게임은 기존 캐릭터 게임과 아무 다를바가 없게 되는거죠. 사실 이건 취향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감상입니다.
  • 하운나래 2015/07/24 22:04 #

    먼저, 전 ‘하츠유키사쿠라’의 음악 제작에 참여하신 ‘미즈츠키 료’ 씨의 팬이에요. 다른 게임들이 쉽게 표현하지 못한, 음악이 주는 ‘분위기 창조’가 다른 작품들에 비해 유의미하게 시나리오와 결합했다고 생각했고, 그 점을 들어 좋은 [평점]을 매긴 것이지 작품을 (이제와서 그럴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만) 하나하나 해부해서 작품론으로 들어가 아예 점수를 죄다 뜯어고칠 생각은 별로 없고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139cm님께서 시나리오 위주의 시선으로 평점을 매기시듯, 저는 그와 더불어 엄연히 게임의 한 요소인 ‘음악 따위’에서 특별한 경험을 했고, 그에 의해 점수가 ‘지나치게 높아’ 보였다면, 그냥 그렇게 넘기시면 됩니다.

    용어 문제에 관해서. 물론 말씀하신 의도처럼, 당연히 UI의 차이 -> 결과적으로는 이야기의 객관적 수준의 차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은 저도 인정합니다만 ‘UI의 차이’와 ‘이야기의 수준의 차이’는 서로 필요충분조건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에 (이야기의 수준의 차이 -> UI의 차이로 반드시 이어지지 않기 때문) 저는 그런 의도로 이전 답글을 달았던 것입니다. ‘대체로’ 그렇다는 것은 결국 그 요소는 두 양자 간의 핵심적이고 결정적인 차이점이 될 순 없어요. 따라서 UI가 비주얼 노벨의 그것을 따르지 않았다고 해서, 이것은 비주얼 노벨이 우선 아니며, 연애 시뮬레이션(캐릭터 게임)에 지나지 않다는 편견을 갖는 건 옳지 못하다고 보는 것이고요.
    아니 무엇보다, 이와 관련된 ‘용어’ 논의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비주얼 노벨과 연애 시뮬레이션의 명확한 구분을 UI로 해서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다고 말씀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이미 뉘앙스상 비주얼 노벨 성향의 게임(스토리게)이 연애 시뮬레이션(캐릭터 게임)보다 우월하다고 여기시는 관점에서 UI의 차이를 언급하시는 건 그냥 비주얼 노벨 성향 게임의 ‘특징’을 언급하시는 것밖엔 안 됩니다.

    또 오해하신 한 가지는, PC2는 지금의 일반적인 캐릭터 게임이 보여주는 아예 방향성과 목적이 다른 게임이지요. 옛날의 캐릭터 게임이 그러한 ‘무의미한’ 패러미터 시스템을 취한 한계를 가진 것은 분명하고, 한동안 그러한 캐릭터 게임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트렌드에 들어선 캐릭터 게임은 ‘패러미터’로써 공략이 진행되지 않고 말씀하신 ‘선택지’로써 진행이 되며, 주로 독특한 설정과 소재로 캐릭터의 매력을 어필하는 시나리오를 취합니다. 하지만 PC2는 우선 그 ‘시나리오’가 아예 없습니다. 캐릭터의 매력을 강조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히로인과의 조우 – 회화 및 연애 or H신에 할당되며, 히로인의 공략은 소수의 선택지와 다수의 공략 히로인에 맞는 패러미터 상승을 위한 플레이어들의 다양한 선택들(게임 내에선 진부하다고도 할 수 있는 운동, 쇼핑 등)로 대체됩니다. 때문에 캐릭터의 매력을 어필하고자 하는 ‘시나리오’를 취한 지금의 캐러게와, PC2와 같은 게임을 ‘굳이’ 구분하자면 저로서는 PC2가 직관적인 의미에서 ‘연애 시뮬레이션’이라는 용어적 의미에 가깝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고요. PC2를 노벨 게임이라고 부르진 않잖아요?

    그리고 나머지 언급하신 것에 대해서는, 에로게 작품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심히 있는 것 같군요. 무엇보다 139cm님의, 연애 시뮬레이션(캐러게)에 대한 인식이 ‘이미’ 부정적이고, 관점 자체가 비주얼 노블 > 연애 시뮬레이션의 우위 관계를 갖고 계신데, 저와는 이 부분에서 관점이 완전히 다르지만, 그렇다고 139cm님의 견해에 딴지를 걸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반대로 타인의 의견으로 제 가치관을 고칠 생각도 없으며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못합니다. 그냥 그러한 작품들을 원하시면 현대에 나오는 에로게에 손을 떼시면 됩니다. 에로게에게 있어서 그것은 필수 사항이 ‘절대’ 아니에요. 그리고 그것이 명작을 위한 ‘필요충분’ 요건이 더더욱 될 수 없고요. 명작은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이름난 작품이며 어디까지나 대중의 지지(팬덤)과 떼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한 개인이 아무리 명작이라 울부짖어도 대중이 수용하지 못하면 소용없듯 말이죠. 139cm님께서 이상적으로 그리는 것은 명작이 아니라, 그냥 ‘잘 만든 작품’에 지나지 않습니다. 명작이 될 수 있는 작품성의 기본 수준이 있는 건 ‘당연’합니다만, 제가 보기엔 WA2는 그 기본 수준은 가볍게 넘고 있어요. ‘에로게’로서 말이죠.

    저는 못난 게임을 잘났다고 하지 않았고, 그럴 생각 추호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에로게는 ‘문예’ 작품이 아닙니다. 전 절대로 WA2가 문학적 수준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도, 언급하지도 않았습니다. 과대평가가 된 부분이 없잖아 있다고 생각하고요. 다만 게임이, 에로게가, 보여줄 수 있는, 또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유의미하게 보여줬다고 생각했기에 그 부분을 평가한 것이지, 문학에서 ‘당연하게’ 보여줘야 할 인물들의 치밀한 논리성과 개연성이 에로게라는 서브컬쳐적 한계에 의해 다소 부족하다고 해서 그것만을 꼬집고 내려 깔 생각이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게임은 139cm님이 말씀하신 논리성과 현실성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대중의 공감적 인기와 팬덤을 획득했습니다. 바로 그것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논리성과 현실성이 부족함에도 ‘다수’를 공감시키고 몰입시켰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에요. 그러지 않은 분들은 그냥 쿠소게라고 욕하고 마시면 됩니다.
    또 선택지 운운하시는 것은 솔직히 전혀 공감이 안 됩니다. 그냥 139cm님은 이 게임에 전혀 공감되지 않고 실망했는데, 굳이 따져보니 선택지를 걸고넘어지는 것으로밖엔 보이지 않네요. 어떠한 게임이든 많든 적든 작가가 만들어 놓은 이야기를 그대로 타고 갑니다. 정도의 차이일 뿐이죠. 그 정도의 차이로 우열을 가릴 수 없어요. 그건 139cm님의 개인 호불호의 영역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작품을 평가할 때의, 포스트모던의 사회학적 관점을 부정적으로 보고 계시면서 왜 WA2에 그런 포스트모던의 요소(유저의 개입 – 선택지)가 부족하다고 하시는지 저로선 이해가 안 되는군요. 물론 선택지 자체가 유저의 개입의 탈을 쓴 작가의 장치긴 합니다만, 적어도 유저에게 작가가 준비한 세계와 이야기에 유저의 선택에 의한 다양성을 부여하여 작가뿐만 아니라 유저가 함께 작품에 참여하는 ‘게임’의 틀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에로게는 이미 포스트모던 속에 있습니다.
    그럴 리는 없습니다만, 설령 공감의 근거가 만에 하나 잘못되었다고 할지라도 인기와 팬덤을 누구나가 알 정도로 인정받은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잖아요? 그걸 게임을 재미있게 하신 분들에게 ‘잘못된 근거’에서 오는 공감이니까 나완 다른 게 아니라 확고하게 틀렸다고, 부정하시는 건 저로선 뭐라 드릴 말씀이 없군요.

    답글을 달아야 하나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애초에 이미 ‘질이 낮은 요즘 야겜’, ‘과대평가하는 세대’ 라는 부분에서 지금의 트렌드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했다고밖엔 보이지 않고, 아예 보는 방향과 관점이 저와는 완전히 다른 것은 물론이고, 그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타인과, 그리고 대중의 감상과 관점의 근거가 ‘틀렸다고’ 139cm 님처럼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일단 저에겐 없습니다. 차라리 마냥 옳지 않다고는 생각하지만 존중하고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보려 합니다. 다수의 관점이라고 항상 진실이거나 옳은 게 아닌 건 당연하지만, 그 사실을 굳이 언급하는 게 소수의견을 정당화시켜주는 건 아닙니다. 139cm님께서 자신이 소수의 진실 측에 서있다고 착각하시기 전에, 자신이 정말 보다 많은 다수를 '눈 흐린 멍청한 작자들' 이라 깎아 내리는 우월감에 중독되신 건 아닌지 생각해보셨으면 좋겠군요. (엄연히 이 작품에 한정 되서 말이죠)

    마지막으로 저는 언급하신 사회학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습니다. 그 학자 또한 포스트모던에 속한 하나의 견해일 따름이고요.
    더 이상 이 작품과 관련된 논의는 불필요하고 또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작품 혹은 다른 소재에 관한 얘기라면 언제나 환영입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P.S. 왜 굳이 좋은 우리말 놔두고 영어를 쓰셔야 하는지 잘 모르겠군요. 학문적 수준의 논의를 하는 것이 아니므로, ‘논리성’이 강한 영어를 굳이 끌어올 필요성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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