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과 노을의 안식처


에로게 칼럼4 - <포스트 '페이트' 시대, WA2의 성공과 에로게의 길> 에로게 칼럼


** 들어가기 앞서...

 1) 본 포스팅은 개인적인 의견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어떠한 공신력이나 객관적 신뢰도를 갖고 있지 않으니 '참고' 수준에서만 읽어주시고, 근거 없는 비난보다는 일리 있는 비판을 해주시면 고개 숙여 감사드리겠습니다.

 2) 서브 컬쳐는 아직 정형화된 '틀'이 없기 때문에 유저들간의 자유롭고 근거 있는 의사소통이 유저들의 수준과 문화 콘텐츠 전반의 인식 수준을 높여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건강한 의견은 적극 환영합니다.

 3) 아래 글은 에로게(미연시) 중에서 블랙게나 동인 게임을 제외한 '순애물'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아래에서 언급하는 '에로게'는 '순애물' 전반을 가리킨다고 생각해주세요.

** 정정 사항

 1) <특히나 시나리오 1위 + 캐릭터 10위권 내 3명 포함이라는 기록은> 부분. 연간 겟츄 캐릭터 부문은14년도 <달에 다가서는 소녀의 작법 2>가 10위권 내에 오른 히로인의 수 총 4명(루나 포함)으로서 종전<WA2>가 세웠던 기록을 깨게 됩니다. 잘못된 정보를 전달한 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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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찬 '스낵 컬쳐' 시대에 사는 에로게 유저들의 공통 질문!

 Q. 왜 요즘엔 에로게 '명작'이 없나요?

 A. 음...꽤 곤란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제가 재해석하면, 왜 요즘 영화는 '터미네이터' 같은 명화가 없나요?, 왜 요즘 판타지 소설엔 '해리포터' 같은 소설이 없나요?, 왜 요즘은 베토벤의 '비창'과 같은 클래식 명곡이 없나요?  등과 같은 질문과 동일하다고 생각해요. 문화 콘텐츠의 발달과 다양화로 인해 과거와 같은 기준에서의 서브 컬쳐, 나아가 에로게에선 '명작'은 아무래도 찾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SF영화 계의 불후의 명작, <터미네이터>. 5편도 곧 개봉할 예정이다.]

[어느새 '고전'이 되어버린 상상력의 결정체, <해리포터 시리즈>]

 Q. 그럼 문화 콘텐츠 전반에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명작' 클래스는 없다는 소리인가요?

 A.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제가 이와 관련해서 지난 포스팅('스낵컬쳐' 시대의 에로게 유저들을 향한 한 마디 - '명작'은 우리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다.) 에서 언급했듯, 이제 '명작'은 객관의 영역에서 주관의 영역으로 위치를 옮기고 있어요. 즉, '팬덤'은 과거에 비해서 더욱 다양화되고 분화되었으며, 개인의 의사 소통의 자유가 인터넷 영역을 통해 발달되고, '스낵 컬쳐'로의 이행에 따라 과거와 같이 절대 다수의 지지와 객관성을 확보한 '팬덤' 형성이 불가능해졌습니다. 더욱이 그와 비견되는 '인기'를 얻는다고 하더라도, '일회성'에 그치거나 잠깐 반짝이고 사라져 다른 것에게 '트렌드'의 왕좌를 넘겨주곤 합니다.

 Q. 현대 기준에서의 '명작'은 어떤 겁니까?

 A. 결국 현재 기준에서의 '명작'은 과거의 '명작'들과는 달리, '최근의 트렌드'를 가장 잘 포착하여 그 본질을 파악하고 대중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인상을 남기며 동시에 '작품성'까지 확보하고 있는 작품이 됩니다. 과거도 그러했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만, 과거에는 가장 핵심이 되는 '트렌드'의 흐름이 현재보다는 더 느렸고, 어느 정도 '확립'되고 '일관'된 가치관이 있었지요. 에로게에서는 그것이 바로 '스토리'에 집중되었고요. 하지만 현재의 '트렌드'는 '캐릭터'로 초점을 맞췄지만 이 '캐릭터'라는 것은 '취향'의 영역이기 때문에 무엇을 '특정'하지 않고 뚜렷한 기준도 없습니다. (다만 성적인 의미에서 이목을 끌기 위한 요소는 어느 정도 확립된 부분이긴 합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그 '캐릭터'를 뒷받침할 '스토리'가 다시 부각되기 시작했고, 그 이외의 '게임성'의 요소, 연출이나 그래픽, 음악까지도 주목하게 되는 등 바야흐로 '포스트모던' 트렌드의 시대입니다. 이 트렌드는 특징적인 트렌드라고 할 수도 없으며 더욱이 '절대적 패왕'도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더욱이 인간이 모여 만드는 '게임'일수록 '캐릭터'와 '스토리', '게임성', '에로' 모두를 충족시킬 수는 없을 뿐더러 어느 것에 초점을 둬야 하는지도 가치관에 따라 달라졌으며 유저의 수요도 제각기 따로 놉니다. 다른 의미에서 '춘추 전국 시대'를 맞이한 서브 컬쳐와 에로게 업계는 결국 이 애매모호한 '트렌드'에 따라서 브랜드 자신만의 색을 입힌 자신만의 무기로 '작품성'을 확보하여 대중의 '인기'를 얻을 수 있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고, 만약 이것이 성공한다면 현대의 '명작'이라 할 수 있겠지요.

-> 과거와 현대의 '명작'의 대표적인 예시를 들며 결국 지금의 서브 컬쳐와 에로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명작'의 기준을 다시 언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래 글은 비격식체인 점, 양해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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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게 칼럼 4
포스트 '페이트' 시대, WA2의 성공과 에로게의 길

 ※ '페이트 시리즈'의 성공

 90년대 후반에 본격적으로 시장을 형성하고, 00년대 초반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마냥 갖가지 에로게가 등장하고 인지도를 넓혀가던 시기, 감히 이를 평정하고 통일한 '진시황'이라 할 수 있는 작품, 바로 '나스 키노코'와 'TYPE-MOON'이 만든 <페이트 시리즈(2004~)>를 에로게의 '명작'을 언급하는 데에 있어서 지나칠 수가 없다. 이 <페이트 시리즈>가 10년이 넘은 지금까지 인기를 끌 수 있도록 '팬덤'이 조성된 것은 물론 <Fate/stay Night(2004)>와는 관련 없이, 그 때 당시의 '나스 키노코'를 향한 동인 시절(<월희>)의 외적인 인기와 팬덤도 한 몫을 했지만(추후 그의 독창적 세계관은 소위 '달빠'를 양산하기도 했을 정도), 그 어떤 판타지와 비교해서 뒤떨어지지 않은 독창적인 세계관의 깊이를 게임 내에 담아내어 유저들이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줬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덕분에 <페이트 시리즈>는 겟츄에서 '유일무이'한 종합부문 2연패(2004~2005)를 달성했다.

[<Fate/stay Night>와 그 팬디스크인 <Fate/hollow ataraxia(2005)>]

['페이트 시리즈'는 아니지만 나스 키노코의 독특한 세계관이 뛰어난 퀄리티로 담긴 <마법사의 밤(2012)>]

 과연 <페이트 시리즈> 이후 최근의 작품에서 그러한 '상상력의 깊이'와 유저들의 상상력이 끼어들 수 있는 작품이 얼마나 존재하는가? 단지 1회성의, 그 작품 내에서만 그치고 그 작품에서만 완결되어 버리는 근시적인 작품이 많은 건 아닐까? 이는 에로게 시장과 업계가 안정화되고,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점차 마련됨에 따라, 또 서브 컬쳐 전반에 걸친 '캐릭터' 열풍으로 트렌드가 뒤바뀌면서, <페이트 시리즈> 이후로도 인상적인 작품과 괜찮은 시도들을 통해 인지도를 쌓은 작품들은 많았으나 트렌드가 '스토리' -> '캐릭터'로 옮기는 그 과도기에 걸친 탓에, 또한 엄격하게 말하면 <페이트> 정도의 상상력의 깊이를 담아내어 '팬덤'을 이끌어내지 못했기에, '아직까지도' <페이트> 시리즈의 인기와 상업성과 비견될 수 있는 작품은 쉬이 등장하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슈타인즈 게이트(Nitro+)>도 충분한 팬덤을 만들었지만 '전연령'이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작품성만으로는 매우 뛰어났으나 인지도와 인기에서 밀려 충분히 평가받지 못한 비운의 작품, <카타하네(Tar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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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트 <페이트> 시대, WA2 의 성공

 <페이트 시리즈>가 유례 없는 성공을 거두며 에로게뿐만 아니라 소위 '빛의 세계'인 애니메나 소설로 영역을 확장시켜갈 때, 에로게 또한 다양하고 도전적인 작품들이 많이 등장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모두 잠깐 반짝였을 뿐, <페이트 시리즈>의 성공과 겨루기엔 제아무리 겟츄 1위니 2ch 1위인 작품이어도 버거워보였다.

[Key의 유일한 연간 겟츄 1위 수상작, <리틀 버스터즈!(2007)>]

 하지만 2011년, 과거의 '페이트'의 영광에 객관적으로 비견될 수 있는 가장 '최근의' 작품이 바로, 마루토 후미아키 씨가 시나리오를 맡고, LEAF에서 제작한 <화이트 앨범2(2011), 이하 WA2>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도 '물론' <페이트 시리즈>처럼 외적인 팬덤(전작, <화이트 앨범1(1998)>)을 이미 어느 정도 쌓아온 상태였기는 하다. 역시 이를 시야에서 거둔 채 WA2의 팬덤을 설명하기는 어렵고 또 부정할 수 없다.

[현대 에로게 중에서 가장 '성공'한 게임, <화이트 앨범 2>]

 허나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 수는 없는 법. 현대 에로게 축에 속하는 <WA2>가 성공하고, 또 팬덤을 유지하며(<페이트 시리즈>보다는 못하지만) 에로게 내에서 가장 성공한 작품 중에 하나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역시 '상상력의 여지'가 이 작품에도 잘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페이트>와는 다른 방향에서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상상력'을 개입시키는 것과 동시에 '감수성'을 자극받게 된다. 남자의 꿈과도 같은 로망의 결정체인 2명의 히로인을 사이에 두고 갈등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비단 '연애'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닌 작품은 나아가 '인생'으로까지 무대를 넓혀 다루고 있다. 때문에 폭 넓은 연령층에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고 이 역시 유례 없는 에로게의 '성공'으로 '명작'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SAGA PLANETS의 '사계 시리즈'에서 가장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하츠유키사쿠라>. 하지만 <WA2>와 비견되긴 어렵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페이트> 이후가 그랬듯, <WA2> 이후로는 '더 이상' 둘의 클래스를 따라갈 수 있는 객관적인 지지와 팬덤을 형성할 만한 작품이 등장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겟츄 순위를 기준으로 했을 때, 2012년도 1위 - <하츠유키사쿠라(SAGA PLANETS)>, 2013년도 1위 - <대도서관의 양치기(AUGUST)>, 2014년도 1위 - <달에 다가서는 소녀의 작법2(Navel)>는 분명히 '한 해'를 대표할 만한 작품임에는 부정할 수 없지만 '에로게'를 대표할 만한 작품이라고 하기엔 지난 2003~2010년의 1위 작품들과는 무게감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어 보인다. 솔직히 이 시기는 이제 과거의 '스토리게'가 에로게의 '명작' 기준을 지배하는 관념에서 벗어나, 얼마나 매력적인 '캐릭터'가 작품과 에로게 업계를 지배할 수 있는지(<달작법 시리즈>의 '사쿠라코지 루나'가 대표적)가 굉장히 주요한 화두가 되었기에 아예 작품의 스펙트럼과 방향성 자체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들과 <페이트>, <WA2>를 동일선상에 두지는 않는다. 그럼 더 이상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작품은 불가능하며, <페이트>와 <WA2>는 과거의 영광이고 이젠 잊어버려야 할 '미화된 과거'인 걸까?

['루나님'의 캐릭터 부문 3연패는 과거 <페이트>의 2연패와 맞먹는 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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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력의 깊이' -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명작을 향한 '최고의 무기'

 결론부터 말하면, <페이트>와 <WA2>는 미화될 과거도 아니고, 과거만의 영광이 아니다. 어떤 것이든 과도기를 거치며 성장하고, 과도기 이전의 '전성기' 때의 장점을 흡수하고 새로운 것과 조화를 이루며 '온고지신'을 제대로 발휘하는 것이 '제 2의 전성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위의 두 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상상력의 깊이'다.

 쉽게 말해 '상상력'은 작품 자체가 갖는 포텐셜이며 가능성이다. 해리포터가 전세계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도, 더 이상 '해리포터'는 J.K.롤링의 것이 아니고, 어린이와 어른들이 자유롭게 상상하고 재창조할 수 있는 것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페이트>에는 비록 중2병스럽지만, 남성의 로망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이러한 부분이 유저들의 상상력을 자극시키고 '더 알고' 싶게 되고 '내가' 새롭게 창조하고 싶어진다. 이는 곧 더할 나위 없는 '팬덤'이 되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포스팅의 명제는 '포스트 페이트 시대'이다. 거기엔 <화이트 앨범2>도 포함 되는 것이다. '페이트 시대' -> 'WA2' -> '현재'가 아니라, '페이트 시대 -> 현재(WA2 이후~)'로 보는 것이 옳다는 것. 이는 'WA2'가 어떤 작품인지 파악하면 쉽게 답이 나오는데, '화이트 앨범2'는 '페이트'와는 내용과 방향성 면에서 '전혀' 다른, 어찌보면 '혁명적'인 작품이다. 그리고 현대 에로게 중에서 '스토리'와 '캐릭터'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가장 완성도 있는 작품이다. '페이트 시대'는 '캐릭터'가 그리 중요한 시대는 아니었다. 때문에 UBW루트에서는 (내용누설 주의, 드래그) 귀여운 히로인인 '이리야'가 죽임을 당하기도 하고, 사쿠라는 끔찍한 벌레에게 범해지기도 한다. 다른 얘기지만 애니메이션인 '코드기어스(2006~08)'가 스토리를 위해 히로인(유페미아, 셜리)를 죽이거나, 결국엔 를르슈도 죽이는 등의 이야기를 선보일 수 있었던 것도 이처럼 서브 컬처 내의 '스토리>캐릭터' 가치관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당시 선풍적이었으며,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명작 애니메이션, <코드기어스>]

 하지만 <WA2>의 시대는 달랐다. 비록 동년대의 작품, <예익의 유스티아(AUGUST)>의 그랜드 엔딩(유스티아의 죽음)이 비록 과거의 가치관을 따랐고, 작품성도 인정 받긴 했지만 그건 더 이상 현대의 트렌드는 아니었다. (때문에 AUGUST는 곧바로 다음 해에 <대도서관의 양치기>를 발표한다.) <WA2>는 지금의 트렌드인 '캐릭터'를 전면에 배치하면서도, 그 캐릭터들(히로인)을 '주인공'과 엮어 기존의 '미연시' 개념을 뒤집고 '삼각 관계'를 테마로 삼아 인터넷 소설이나 순정 만화에서나 볼 법한 '치정극'을 에로게에서, 그것도 순애물에서 선보였다. 하지만 마루토 후미아키는 이 치정극을 자신의 인물 조형과 묘사 실력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며 '특별한 치정극'으로 품격을 높였고 '캐릭터'와 더불어, '스토리', '음악(노래)'까지 잡아내며 11년도 겟츄 종합 1위, 시나리오 1위, 캐릭터 1위 포함 및 10위 내 3명 포함, 음악 부문 1위 등 거의 모든 부문에서 1위 및 상위권을 차지하는 대중적인 지지를 받았다. 특히나 시나리오 1위 + 캐릭터 10위권 내 3명 포함이라는 기록은 <달작법2> 이전엔 없었던 놀라운 기록이다. (참고로 <달작법2>는 10위권 내 3+1캐릭터가 포함되어 있다.) 즉, 유저들 입장에서는 '스토리게'뿐만 아니라 뛰어난 '캐러게'로서도 더할 나위 없는 성공을 거뒀다는 객관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WA2>는 엄밀히 말하면 '캐러게'다. 하지만 '삼각 관계'를 통해서 드러나는 인물들의 감정과 심리 묘사, 나아가 각 인물들이 처한 상황에 따른 주인공의 '선택'은 이를 단순히 '치정극'을 넘어선 가히 인간의 '인생'에 비견될 정도의 퀄리티로 살려낸 것은 시나리오 라이터 마루토 후미아키 씨의 실력이며 곧 '스토리게'로서도 성공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캐릭터'와 '스토리'를 살려내는 이 조화의 과정에서 <WA2>만의 매력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며 다른 작품들이 넘볼 수 없는 '상상력의 깊이'가 '캐릭터'를 통해서 살아나는 모범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반박할 수 없는 <WA2>의 '팬덤'의 원초가 되며 유저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즉 우리는 11년도, 지금과 같은 '트렌드'에 속하는 <WA2>의 성공의 포인트와 본질을 제대로 포착할 수 있다면, 어떠한 작품이 현대의 '명작'이 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상상력의 깊이'를 어떻게, 어떤 방향성으로 활용하느냐는 지금의 에로게가 극복해야할 과제지만, 최우선적으로는 '상상력의 깊이'를 작품 속에 내제하는 것이다. 최근의 작품들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S급의 메이저 회사가 아닌 이상 거의 대부분의 회사가 트렌드에 맞춰 상업적 목적의, 일회성 양산형 '캐러게'를 창조하거나, 변칙적으로 '스토리게'를 선보이지만 거기엔 상상력의 깊이가 부족하고 팬덤의 형성조차 어려워보인다. 창작자가 '영혼'을 담은 작품이면 작품일수록 그 작품이 펼치는 세계관과 캐릭터의 깊이는 깊어지며 그 깊이만큼 유저의 상상력이 개입되고 재창조되며 '팬덤'이 형성되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WA2> 이후로 이런 '열린' 작품을 얼마나 만나고 있는가?

 개인적으로는 이 관점에서 좋은 예시가 될 수 있는 작품을 몇 가지 소개해 보자면, 앞서 언급한 <예익의 유스티아(AUGUST, 2011)>는 그 '상상력의 깊이'에서는 좋은 점수를 줄 수 있다. 하지만 작품 자체가 '게임의 이야기'를 완전히 끝내고 있다는 점에서 '작품성'은 뛰어나지만 '팬덤'을 형성하기에는 다소 부족하며 무엇보다 에로게의 트렌드인 '캐릭터'들의 매력을 살리지는 못하기 때문에 역시 한계를 지니고 있다.

['에로게'이기 때문에 가능한 상상력을 보여준, 충격적인 작품, <예익의 유스티아>]

 AUGUST는 그들이 이런 단점을 파악하기라도 했듯, 자신들의 주무기인 '학원물'을 무대로 하여 트렌드인 '캐릭터'들을 제대로 살린 <대도서관의 양치기(2013)>를 선보였지만 역시 '팬덤'을 형성하기엔 '스토리'면에서 내적 의미는 충분히 고찰될 여지가 있었지만 상상력의 개입 여부를 제작진 스스로 닫아놓은 인상이 있어 '명작'으로 가기엔 한 걸음 부족했던 작품이었다.

 이는 14년도 겟츄 대상 수상작인 <달작법2>에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캐릭터'의 '설정'에서는 상상력의 특별함을 보여줬지만, 이를 지지해줄 '스토리'가 전작의 악습을 그대로 이어 받았다. 다만 신인 시나리오 라이터 '히가시노스케'의 문장력과 '에스트 루트'의 감동은 14년도 스토리 부문 1위를 안겨줬다는 점에서는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이다.

[현대의 에로게 트렌드를 가장 잘 드러내는 작품, <대도서관의 양치기>와 <달에 다가서는 소녀의 작법 2>]

 반면 sprite의 <푸른 저편의 포리듬(2014)>은 '소재'로서 '상상력의 깊이'를 요 근래 어떤 에로게보다도 깊이 있고 철저하게 표현하여 헌신적인 연출과 그래픽 CG로서 완성시켰다. '캐릭터' 면에서는 다소 뒤떨어진다 하더라도 'FC'라는 특별한 소재와 설정, 그리고 스토리에 남다른 '상상력의 깊이'를 부여하여 14년도에 들어 가장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으로도 계속 전개될 예정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주목해봐야 하는 작품에는 틀림없다.

[현대 에로게의 '상상력'이 어느 경지까지 이를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현대풍 '명작', <아오카나> 아직 애니메로서의 전개를 남겨두고 있다.]

[상상력의 깊이가 일본의 '화풍'과 섞이며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는 AUGUST의 신작, <천의 인도, 도화염의 황희>]

[<스바히비>로 명성을 떨친 '마쿠라'사의 불후(?)의 작품, <사쿠라의 시>는 올해(?) 발매된다]


[인터넷과 현실(리얼) 간의 소외와 소통을 테마로 하여 충분한 작품의 내적 의미를 선사해줄 것으로 기대하는 네코네코소프트의 신작, '<스미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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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로'로부터의 탈피 - 혁명의 묘수? 혹은 자충수?

 하지만 '에로게'는 서브 컬쳐의 전반적인 양적 성장과 에로게 원화가를 통해서 전개되었던 '모에'의 주도권이 라노벨이나 애니메로 넘어감에 따라 '에로게'는 '에로'가 기본 베이스이자 중심이 되는 '에로게'만의 수요로 전락했고, 굳이 '에로게'를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인기' 있는 캐릭터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2차 창작물을 통해서 '에로'까지 일부 포함함에 따라 에로게의 영역은 과거 '페이트 시대'에 비해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마루토 후미아키 씨가 <WA2>를 통해 대성공을 거뒀음에도 에로게 업계를 떠난 것도 이 업계의 쇠퇴를 몸소 겪었기 때문이다. SRPG계의 명가인 '에우슈리'도 매년 도산 걱정을 해야할 정도로(웃음) 어려운 업계 사정은 자꾸만 상업적인 선취를 위한 일회성에 그친 작품이 더 쉽게 등장하게 하고, 영혼(?)과 깊이가 담긴 하이 리스크의 작품은 메이저 브랜드조차도 쉽게 시도하지 않고 있다. 더욱이 좋은 작품성의 기초가 되는 실력있는 시나리오 라이터는 그 숫자가 점차 적어지거나 부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최근 애니메로도 제작되어 큰 인기를 얻은 마루토 후미아키 씨의 라이트 노벨]

[2015년판 루스보이에 기대했던 분들은 실망감을 얻을 수 있는 작품, <나의 일인전쟁>]

 때문에 점차 폐쇄되는 '에로게'의 우물을 벗어나기 위해 애초부터 '전연령'으로 게임을 제작하는 브랜드가 점차 늘고 있으며, <그리자이아 시리즈>를 제작한 유명 브랜드, 'FrontWing'조차도 신작 기획을 발표하면서 이색적인 '전연령' 패키지 -> 19금 패치 다운로드라는 계획을 밝혔고, 이는 '에로게(19금)'가 할 수 없는 광고 & 홍보 면의 이점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이런 상황만 보더라도 오타쿠 문화가 번성하는 일본에서조차 '에로게'의 입지는 광역적이지 않아 프론트윙과 같은 시도는 앞으로 많아질 것이며 패키지 산업의 수익성 저하는 에로게에도 유료 DLC의 도입이 점차 활발해질 것으로 예측된다.

[독특한 기획의 FrontWing의 신작, <끝나지 않는 미래로부터> 패키지는 전연령, '19금 버전'은 추가 다운로드 패치를 통해 배포한다고 밝혔다]

 위 시도는 일견 에로게의 정체된 흐름을 바꾸며 자정 작용을 일으키는 좋은 시도임에는 분명하다. 상업적인 면에서 독식하고 있는 메이저 브랜드가 전연령판 -> 19금 DLC(무료/유료) 정책을 추후에 활발하게 펼친다면 DLC가 유료가 될 경우 패키지 자체는 가격이 내려가며 유저들의 부담이 줄어들고, DLC에의 접근성이 패키지 구매자들에게 한정된다면(CD-KEY) 소위 '복돌이'가 줄어들어 시장의 수익성이 이전보다 훨씬 살아날 긍정적 요소가 분명히 있다. 물론 이는 아직 먼 얘기이고 '에로'를 주무기로 사용하는 블랙게나 '캐러게'는 시도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프론트윙과 같은 전연령판 기본 패키지 -> 19금 DLC는 자칫하면 '에로게'의 고유성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 물론 '비주얼 노블'이라는, 서브 컬쳐에서의 소설과 애니메와는 또 다른 '게임'으로서의 매력은 유지되겠으나 '19금'이라는 레이블을 통해서 표현 가능한 에로게만의 내용과 소재가 사라질 우려가 있으며 또한 DLC의 유무에 상관 없이 작품이 전개되어야 하기 때문에 '에로신'과의 부조화를 또 어떻게 처리해야할 것인지를 세밀하게 조정해야 할 부담이 생긴다. 완전히 같은 사례는 아니지만, 과거 minori가 이러한 시도를 했다가 크게 데인 적이 있어 프론트윙은 이를 타산지석 삼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이미 Key는 '전연령'으로 아예 노선을 바꿨음에도 인기와 팬덤은 여전하다]

[minori는 <ef(2006~08)>의 성공으로 상승세를 타며 <eden*(2009)>를 발매했지만 최악의 방향으로 19금판을 따로 발매하여 유저들의 원성을 샀다]

 표면적으로 갈수록 하향 평준화가  되어가는 것 같은 에로게의 작품성, 제작자들의 어려움, 사회적 입지의 비좁음 등 여러 요인이 겹치면서 에로게는 과거와는 달리 향후 10년을 장담하지 못하는 업계가 되었다. 에로게 시장이 매우 활발했던 00년대 중반에 설립된 많은 회사들이 곧 10주년을 맞이하거나 벌써 맞이하여 각각 게임을 계획하고 내놓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아 보인다. 솔직히 00년대 중반에 비한다면 설령 지금을 '쇠퇴기'라고 해도 현장에서 뛰고 있는 제작자나 유저들도 마냥 부정은 하지 못할 것이다.

[Lump of Sugar 의 10주년은 과거의 영광이었던 <타유타마>의 재림이 될 것인가?]

 하지만 위의 시도와 같이 '설령' 앞으로는 더 이상 '19금 레이블'의 숫자가 줄어든다고 할지라도, '비주얼 노블'이라는 장르는 어떤 식으로든 '에로게'와 계속 공존하거나 새로운 길을 찾거나 더 발전할 것이라는 점에선 의심의 여지가 없다. <WA2>의 마루토 후미아키 씨는 비록 에로게 업계를 떠나, 한창 '시원찮은 그녀의 육성방법'이라는 라노벨 작가로 활약하고 계시지만, 그가 라노벨에서 그리는 세계는 결국 '미소녀 게임'을 주된 소재로 삼고 있다. 그리고 메인 히로인인 '카토' 또한 그런 '미소녀 게임'의 주인공이다. '라노벨 작가'인 우타하가 메인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의 '게이머'이고 동시에 '게임 창작자'라는 진정한 자아가 라노벨 작가라는 페르소나(가면)를 결론적으로 깨부수고 있는 것이다. (웃음) 어쨌거나, 에로게는 내외적으로 과도기에 있는 상태고 내적으로 유의미한 성취를 거두기 위해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작품에 좀 더 '깊이'와 '상상력'을 담아야 할 것이며, 외적으로는 좀 더 다양한 시도와 돌파구를 찾도록 창작자 뿐만 아니라 유저들도 함께 모색해봐야하지 않나 싶다.

[한국의 모바일 비주얼 노블들]

 에로게, 아니 '비주얼 노블'은 무척 매력있는 문화 콘텐츠 장르 중에 하나다. 그리고 한 번 그 재미와 아름다움에 빠지면 쉽게 헤어나오지 못한다. 모바일 업계에서는 소규모이지만 계속해서 '비주얼 노블' 콘텐츠가 플랫폼과 함께 제작중이며 비록 '비주얼 노블' = '미연시' = '에로게'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자리잡고는 있지만 작은 시도들이 그런 인식들을 바꿔놓는 데에 조금씩 기여할 수 있다면 충분히 텍스트(글)과 그림과 음악이 곁들어진 종합 예술 콘텐츠의 하나로 자리잡을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어디까지나 우리나라는 후발주자고 국내의 스폰서나 지원이 빈약하지만, 일본 '에로게' 업계가 위와 같이 여러 긍정적인 시도를 하여 좋은 성과를 거둔다면 머지 않아 우리나라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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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운나래.

P.S. 에로게 칼럼 시리즈 1~3

덧글

  • icoul 2015/04/22 08:53 # 답글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예전에도 느낀거지만 글을 잘 쓰시네요. 부러운 능력 ㅇ>-<

    위에 말씀하신 내용들로 인해 현재 에로게 시장은 너무 극단적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과거에는 순애계통과 능욕계통이 서로 어우러지는 작품도 많았고(이건 좀 많이 옛날이지만..)
    그 후로도 많은 회사에서 이러한 시도를 했었고

    과거부터 보아온 명작들로 평가받는 작품은 대체로 한 쪽에 극단적으로 치우친 형태가 없었거든요..
    그나마 열쇠의 작품들이 스토리에 극단적으로 치우침에도 불구하고 명작으로 평가받긴하지만..
    위에서 예시로 나왔던 화이트앨범2도 캐러게로써 유저들의 관심을 사로잡은 부분도 있지만
    질척질척한 치정싸움을 즐기는 라이트 NTR유저나 비순애계열 유저들의 관심을 확 사로잡은 부분 역시 컸던 것 처럼
    다양한 요소들이 적절히 균형을 이루었을 때가 가장 좋은 것 같은데..

    지금은 그 회사가 지향하는 방향이 무엇이냐 라는 것에 따라서 극단적으로 한 쪽에 치중하는 느낌이랄까요.
    에로가 지향점은 회사는 극단적으로 에로를 공략..
    모에가 지향점인 회사는 극단적으로 모에를 공략..
    이는 회사들의 사정이 나빠지면서 저가형과 미들프라이스가 많아지는 것도 한 원인일텐데.

    아무튼 그러한 요소가 모두에게 인정받는 명작이 등장하기 어렵게 만들지 않나 싶네요.
  • 하운나래 2015/04/22 19:55 #

    댓글 감사합니다! 블로그 쉬시는 줄 알았는데, 들러주셔서 감사해요.

    말씀대로 한 가지만 파고 드는, 일회성의 작품들이 많아지다보니 과거와 같은 대작 스케일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WA2>만큼의 본격적이고, 모든 에로게 유저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작품이 과연 또 나올 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오히려 이런 시기이기에 <WA2>와 같은 깊이 있는 작품이 단독으로 주목받을 수 있는 시기일텐데 말이지요.

    몇 몇 인상적인 시도를 하고 있는 제작사들은 있습니다만, 역시 '보이지 않는 벽'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들 스스로 힘을 100% 쏟지 않고 살짝 빼고 다음~ 을 준비하려 하는, 어찌보면 영리합니다만 어찌보면 그 이상의 성장을 이룰 수 없는 자충수죠.

    전문화 된 부분은 역시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더 이상 예전과 같이 스토리와 캐릭터, 그 밖의 요소들에게도 전력을 쏟고 영혼을 담는 대작급을 쉬이 만날 수 없다는 데엔 큰 아쉬움이 듭니다.

    다만 에로게를 즐기는 유저로서 조금 더 기다려보고 지켜봐야하겠지요! 텍스트를 활용한 게임이라는 것은 매우 매력있는 장르니까요.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있다고 생각합니다.
  • 2015/04/22 10:0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4/22 20:0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하냥 2015/04/22 18:05 # 답글

    개인적으론 00년 중반이후 흥하게된 라노벨이라는 대체장르가 에로게 업계파이를 잠식한게 아닌가 싶더군요 에로게 전성기 04~06년과 쿄아니의 스즈미야 하루히 우울 애니화, 그 이후 라노벨 원작 미디어믹스, 업계파이 증가 시기가 맞물리거든요 잘아시다시피 업게 대표 라이터들도 라노벨 시장으로 점점 넘어가는 추세이고.
  • 하냥 2015/04/22 18:07 # 답글

    또한 에로게 업계 파이자체도 많이 줄어 들었죠 업계 현황 마토메를 보면 10년도 이후 10만장 이상 판매고를 올리는 작품은 매년 5개 이하, 5만장 이하도 마찬가지이고. 앞으로 10만장 이상 판매고 작품 안나오면 업계는 사실상 끝아니냐 하는 기사를 올해 본 기억이 나네요 한 번 참고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 하운나래 2015/04/22 20:17 #

    댓글 및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과거에는 '모에' 장르라는 서브 컬쳐를 에로게가 담당하고 있었다면, 지금은 라노벨이나 애니와 같은 다른 서브 컬쳐 장르에게 넘어갔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 에로게가 '에로(거유)'를 강조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고요.

    말씀대로 업계의 파이는 줄어들었습니다만 그렇다고 에로게가 완전히 몰락하지는 않을 겁니다. 거대 브랜드만 살아남는 미래가 될 수도 있습니다만, '에로게' 즉 '비주얼 노블'이 갖는 독특함과 '게임'만의 매력은 대체가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Key의 선전이나, 프론트윙의 참신한 기획처럼 계속해서 돌파구를 찾아나갈 것으로 생각합니다.
  • 유스티아 2015/04/22 18:29 # 답글

    여태까지 읽었던 하운나래님의 글 중에서 가장 몰입하면서 읽은 것 같네요(컨디션 탓?). 저번에서도 "명작은 스스로의 주관이 만드는 것이다"라는 글에서도 인상깊은 충격을 받았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신선한 충격과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쯤되면 "믿고보는 하운나래님"이라는 칭호가 붙어도 되려나요(웃음).

    확실히 <WHIATE ALBUM2>는 스토리게라기보다는 캐러게로써의 냄새가 더 진했지만 저나 하운나래님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부분, 이야기의 전개가 굉장히 극적이고 내면묘사가 치밀하기 때문에 '스토리'의 요소까지 잡아낼 수 있었던 전대미문의 괴물 작품이죠. 그런 점에서 생각나는 것이, 같은 "캐러게"라고 하더라도 화앨2처럼 내면 심리나 행동원리 등이 복잡하면서도 강렬하게 만들어진 종류와 단순하게 에로게 히로인의 독특한 특성들을 '모에'스럽게 설정하여 "이챠러브"를 목적으로 하는 종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제가 좋아하는 <유즈소프트>의 작품들은 이챠러브에 중심을 두면서도 나름 볼만한 스토리를 중심으로 재미있게 꾸려내는 독특한 종류도 있을 수 있겠군요. 아무튼 하운나래님 말씀대로 현대의 주류(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히로인)에 맞추면서도 스토리 쪽에서도 짜임새 있는 작품이 거의 "명작"에 가까운 수준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이 점에서는 제가 언급한 캐러게 종류 중에서도 전자 쪽이 더 가능성 있지 않나 싶네요.(달작법2의 그 복잡한 캐릭터 설정이나 아오카나의 단순하지만 치밀한 인물묘사를 보면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들인 <별하늘의 메모리아>나 <형형색색 시리즈>의 작품들은 전부 객관적인 "명작" 반열에 올리기에는 좀 무리가 있을 듯 싶습니다. 두 작품군 모두 치밀한 배경 소재와 감동적이고 극적인 스토리 전개로 유저의 심금을 울리는, 이른바 "나키게"로써 상당한 명성을 떨친 바 있지요. 그러나 가장 커다란 단점인 "캐릭터 라인의 불균형"의 문제가 매우 커서, 현대처럼 인상적인 캐릭터를 바탕으로 에로게 업계를 공략하는 방식에서는 살아남기가 힘들다고 봅니다. 이번 FAVORITE 신작 발표도 그랬듯이, '니카이도 신쿠'의 경우가 이례적으로 성공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임팩트' 면에서는 확실히 <달작법2>나 <아오카나> 등보다 떨어져 보입니다.

    언급하신 "페이트 시리즈"와 인간의 "상상력"에 대한 부분은 격하게 공감했습니다. 저 역시 <하루우루>를 통해서 처음 이쪽 세계에 들어온 것에 앞서, 미리 <페이트 스테이 나이트>라는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처음 발을 들였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 당시 <성배전쟁>이라는 특이하면서도 매우 복잡하고 치밀한 설정을 바탕으로 온갖 상상을 해보았던 옛날이 떠오르네요. 그런 의미에서 "페이트 시리즈"는 그냥 일시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상상력 속에서 유지된다고 하는 내용의 의견에서는 극적으로 동의합니다.

    "제작진 스스로 상상력의 여지를 닫아 놓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대도서관의 양치기>에 한정해서 해석했을 경우에, 주인공이 스스로 양치기가 됨을 포기함으로써 평범한 인간의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엔딩을 맞은 것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이쪽에 대해서 굉장히 알고 싶습니다. 이를 이해하면 <별하늘의 메모리아>나 <형형색색 시리즈>는 "닫힌 상상력인지, 열린 상상력인지" 분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 읽을 땐 뭐라도 반박해보자 하는 식으로 읽어봤지만(풉) 결국 끝까지 계속 공감하고 배우는 식으로만 있었습니다... 역시나 뭘 하셔도 앞서가시는 것 같습니다! 뭔가 제 앞을 가로막은 벽 같이 많이 배우고 성장하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만간 저런 "간지 터뜨리는" 글들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 하운나래 2015/04/22 20:33 #

    댓글 감사합니다! 인상 깊게 읽어주셨다니 작성한 저로서도 기쁠 따름입니다.

    말씀대로 지금 에로게 트렌드에 맞춰진 명작의 기준이라 한다면, '캐릭터'를 기본으로 하되, '스토리'에 심혈을 기울이며 제작사 나름대로의 상상력을 부여하여 '유니크'한 게임을 만드는 데에 있을 것입니다. 그 상상력의 내제 방향이 스토리가 되었든, 캐릭터가 되었든 유저들이 두고두고 곱씹을 수 있고 오랫동안 변함 없이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깊이와 퀄리티를 추구하는 게 뭣보다 중요하겠지요. 최근에는 그래픽이나 연출과도 같은 '게임성'의 극대화에도 초점이 맞춰지고 있으니 만약 실현 가능하다면 <페이트>, <WA2>의 계보를 잇는 작품은 '완전체'에 가깝지 않나 하는 행복한 상상도 해봅니다. (웃음) 그만큼 어려운 얘기가 되겠지요. <달작법2>와 <아오카나>가 한 계단 더 올라서고, 한 번 더 제작진들이 곱씹고 두께를 늘렸다면 설령 하이리스크라 할지라도 지금보다 더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조금 남는군요.

    유스티아 님께서 'FAVORITE'의 작품을 좋아하시는 것처럼, 저도 AUGUST를 좋아하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역시 몇 걸음 부족하거든요. 하지만 두 회사 모두 충분히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매번 신작이 나올 때마다 기대하게 되는 것 같아요.

    <페이트 시리즈>가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서브 컬쳐 내 다른 장르를 옮겨 다니며 유지되는 것은 이 작품이 가히 최고의 성공을 거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객관적인 지표가 됩니다. 곧 신규 모바일 게임으로도 나오고, 현재 애니메이션으로도 재 리메이크 되어 활약중이니 설령 '달빠'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언급한, '상상력의 여지' 부분은 말씀해주신 내용이 맞습니다. <대도서관의 양치기>가 캐릭터와 작품의 내적 의미를 성취하는 데까진 좋았습니다만, 유저들의 상상력과 재창조가 이뤄질 수 있는 부분, 즉 '양치기'에 대한 소재의 활용을 '본격적'으로는 하지 않았다는 부분에서 스토리 상의 큰 한계점이 있다고 할 수 있지요. '막장'이기는 했습니다만(웃음), '애니메이션'에서 보여준 것처럼 카케이가 '양치기'가 되어 어떤 식으로든 실패와 후회, 그리고 반성과 내적 성장을 통해 다시 인간으로 회귀하는, 좀 더 '시리어스'하고 '극적인' 전개를 보였더라면 <대도서관의 양치기>는 객관적으로 압도적인 게임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상상력'이 파고들 만한 여지가 충분했던 소재였으니까요. <예익의 유스티아>가 타협없이 본격적이었던 것처럼 이 작품도 충분히 그럴 수 있엇거든요. 방금 언급한 내용이 PS VITA판에 살짝이나마 들어가 있어 더더욱 아쉽기만 합니다. (웃음)

    공감해주셨다면야 저로서는 한 없이 기쁠 따름이고, 또 반박해주시거나 비판해주신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기쁩니다. 활발하고 건강한 의견 교류가 서브 컬쳐를 수용하고 재생산 하는 데에 밑거름이 되니까요. 저도 매번 유스티아님의 글을 잘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기대할게요!
  • 나인테일 2015/04/22 21:05 # 답글

    모에에서 라이트노벨이나 애니메이션의 역할이 요즘 물론 크긴 하지만 게임 내에서도 모에에 있어 노벨 게임만 있는게 아니라는게 문제겠죠. 섬란 카구라, 초차원게임 넵튠 같은 타 장르에도 게임성은 모르겠고 모에 하나만 보고 달리자는 작품들은 많아졌고 동방프로젝트는 슈팅게임 주제에 이 동네의 끝판왕 비슷한게 되어버렸으니까요.
  • 하운나래 2015/04/22 23:09 #

    댓글 감사합니다!
    좋은 지적이신 것 같습니다. 그러한 연유로 언급한 바, 에로게나 비주얼 노블의 입지가 서브 컬쳐에서, 또 '모에' 장르에서 더 줄어드는 것 같아요.
  • 이태리버거 2015/04/23 20:37 # 답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참 어려운 문제지요, '명작'이라는 물건을 만드려면. 트렌드는 항상 변하고 소비자가 원하는 수준은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높아져가고.

    기업이 나름 명작이라고 만든 작품을 시장에 내놔도 팔리지 않으면 곤란하니 기업인 이상 영리는 추구해야겠고. 이 영리를 얻기위해 괜히 모험보다는 안전하고 확실하게 팔릴 만한 요소를 가득 집어넌 이른바 말하는 "양산작"을 만들어야하니. 딜레마네요.

    소비자들은 수준 높은 '작품'을 원하고
    기업은 팔리는 '작품'을 원하고.

    두 마리 토끼를 잡기란 참 어렵네요.

    거기다가 '모에'라는 컨텐츠를 애니나 라노벨, 만화 시장과 공유하다보니, 어느 한쪽 시장이 커지만 다른 시장이 작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죠.

    시장이 작아지면 당연히 그 업종에 종사하려는 사람들이 줄고, 소비자가 원하는 물건은 점점 나오기 힘들어지겠죠.

    그런 의미에서 페이트는 엄청나게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서브 컬쳐에서도 마이너라 할 수 있는 에로게라는 시장에서 시장에 판도를 흔들만큼 엄청난 영향을 끼쳤으니까요.

    물론 앞으로 에로게 시장은 소비자나 기업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구도를 바꿔나가겠지요, 그게 어떤 형태가 될까 살짝 불안하기도 하고 기대도 됩니다.

    쓸데없는 말이 길었지만 결국 소비자든 기업이든 해야할 일은 언제든 똑같습니다.

    기업이 좋은 물건을 내놓으면 소비자는 물건을 구매하고 소비하여 제대로 된 피드백을 하고, 기업은 피드백을 받아 보다 낳은 물건을 만들어낸다.

    건전한(에로게 시장인데?) 시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소비자나 기업이든 같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하운나래 2015/04/23 23:00 #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말씀대로 창작자와 소비자 둘이 모두 만족하는 타협점을 찾는 게 서브 컬쳐뿐만 아니라 다른 상업 문화 콘텐츠의 영원한 숙제인 것 같습니다. 게다가 입지가 줄어든 에로게엔 그것이 더욱 심하다고 생각하고요. 여기에 장르 특성상 '모에'와 '스토리'가 공존하기가 쉽지도 않으니 만약 제가 창작자라면 오히려 라이트 노벨보다 에로게가 더 좋고 완벽한 작품을 만드는 게 어려울 것 같아요.

    그래도 주요 메이저 브랜드가 안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조금씩 발전된 모습과 새로운 시도를 해주는 것은 저는 꽤 긍정적으로 보고 있고, 말씀대로 어떤 식으로든 그 구도가 조금씩 바뀌어질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도 창작자뿐만 아니라 유저도 활발한 피드백을 통한 노력이 침체한 업계 활성화에 꼭 필요한 불가결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 실피드 2015/04/24 17:15 # 삭제 답글

    하운나래님 저가 이 글에 대해선 공감하는 면도 있으면서도 보충하고 싶은 것도 개인적으로 코멘트를 하고 싶은 이야기가도 있고 그 글을 여러 에로게 유저들에게 표현하고 싶은 부분이많아서 댓글을 대신 링크와 일부 내용을 사용하되 출처는 남기면서 포스팅을 해보고 싶은데 어떻게 안되나 싶어서 댓글을 남겨봅니다. 저가 하운나래님에 비해서 집필능력이 부족하지만 하운나래님의 "명성"에 먹칠은 안나게 노력해보겠습니다
  • 하운나래 2015/04/24 17:49 #

    안녕하세요! 실피드님.

    본문의 내용은 바꾸지만 않으시면 자유롭게 사용하셔도 됩니다. 그렇다고 위의 내용이 반드시 옳고 그런 건 아니니까요. 제 개인적인 의견이 많고, 부족한 지식으로 퍼즐 짜맞추듯 작성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의견이나 보충하시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자유롭게 관련 내용을 첨부해서 포스팅해주시면 됩니다.

    솔직히 이글루스 활동만 하기 때문에 "명성"이랄 것도 없고, 그런 표현 쓰시는 것도 제겐 살짝 부담스럽습니다. (웃음) 한 달에 많아야 3~4번 단평하는 것 정도인걸요. 작품 분석은 둘째치고, 에로게 전반에 관해서는 실피드님께서 지식이 더 많으시니 추후에 포스팅 하시면 저도 좋은 공부가 될 것 같습니다.

    또 무엇보다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다양한 의견 교류가 에로게 유저들을 위해서도 저도 더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적극적으로 해주시면 저도 감사하겠습니다.
  • ㅁㄴㅇㅁㄴㅇㄹㄹ 2015/04/24 23:50 # 답글

    잘읽었습니다. 역시 볼때마다 느끼지만 글을 깊고 길게 잘쓰신다는 :)
    아직 플레이해본 명작조차 많지않은(화앨2도 안해봤다지요ㅠ) 겜알못의 의견이지만, 사실 저런정도의 명작이 매년 빵빵 터지면 그게 더 이상할거같아요. 매분기 많은 작품이 쏟아지는 애니메조차 평작조차 찾기힘든 절망적인 분기도 자주 있으니까요. 아무 근거도 없지만 뭔가 3~4년 더 기다리면 시간상으로 나올거다!라는 기대를 품어봅니다(04-11-18?...)
    아 이건 사족입니다만 토토노같은 작품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순애물로 판단 안하시려나요(..)
  • 하운나래 2015/04/25 02:51 #

    댓글 감사합니다! 길게 쓰는 게 마냥 좋은 습관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좋게 봐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에요.

    게임이 이건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필독서의 개념은 아니기 때문에 에로게 역시도 하고 싶으신 것부터 하시게 되면 그게 더 좋습니다. 저도 사정 상 화이트 앨범2는 꽤 뒤늦게 플레이 했습니다만, 시기 상관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때에 하는 게 게임을 제대로 즐기는 최선의 방법인 것 같아요.

    최근엔 애니메뿐만 아니라 라노벨도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비단 에로게만의 문제가 아니라, 양적으로 팽창되는 서브 컬쳐 전반에 걸친 현상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꾸준하게 '대작급'이라고는 할 수 없겠습니다만 과거에는 나올 수 없는 새롭고 재미있는 시도들이 이뤄진 작품들이 많아서 '노벨'로서의 에로게가 아니라, '게임'으로서의 에로게가 앞으로 더 성장하고, 또 바람직한 길로 생각합니다. 매달 꾸준하게 신작의 흐름을 느끼고 있는 유저 입장에서 보면,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인상은 있어서 저도 희망적이긴 해요.

    생각보다 토토노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시는 분들이 꽤 많더라고요. (웃음) 어떠한 개성을 지닌 작품인지도 알고 있어서 만약 이 글의 방향성이 더 나아가서 에로게의 미래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했다면 빠지지 않고 언급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제 치유와 안정(?)과는 거리가 멀고, 멘탈을 단단하게 부여 잡아야 하는 게임이기 때문에 (웃음) 머지않아 자극이 필요하면 그 때 제대로 플레이해서 다룰 예정입니다. 물론 순애물...! 이겠죠!?
  • ArKaeins 2015/04/25 14:47 # 답글

    언제나 좋은 포스팅 감사합니다. 하운나래님의 열정을 보고 있으면 항상 뭔가 쓰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겨버리네요. 그래서 또 어처구니 없는 기획 포스팅 하나 시작해버렸습니다... 책임 지세요.
  • 하운나래 2015/04/25 19:17 #

    흐~저로서는 기획하신 포스팅 덕분에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아가서 기쁠 따름입니다...! 열정만 있지 정작 지식은 얕으니까요...감사합니다! (웃음) 야근 때문에 이제서야 글들을 봤는데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다음 편도 기대하겠습니다~_~
  • 플로리스 2015/05/04 21:47 # 답글

    제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나름 생각한 바가 있어서 한번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사실 이런 판도가 바뀐데는 문화콘텐츠적 분석이 아니라 경제학적, 그리고 사회학적 분석을 해야한다고 봐요.
    이게 무슨얘기냐하면 많은 분들이 살짝 도외시하는 부분이 사람들의 취향에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건 경제적 여건이라는 점입니다. 유행이나 개인적 성벽같은건 어디까지나 그 이후에 고려하게되는 조건이라고 봐야하구요.

    제가 평론을 할만큼 많은 작품을 접하진 못했지만, 정말 눈에 뛰게 서브컬쳐의 패러다임이 바뀐 시기는 2008년 전후. 그러니까 2007년 이전과 08년말과 09년 초기부터라고 생각해요.

    물론 단시간에 모든 것이 뒤집어진건 아니지만 그 시기부터 모에계니 스토리계니 일상계니 하는 작품간 카테고리 비율에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났다고 생각해요.

    에로게, 애니메이션, 라이트노벨 과 같이 서브컬쳐 전분야에 걸쳐서 하필 이 시기에 이런 변화가 일어난 이유.
    그건 07-08년에 걸쳐 발생한 세계금융위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저 당시 제 2의 대공황이 일어나는 게 아닌가 싶을정도로 세계 곳곳에서 우려섞인 목소리가 나왔었고, 실제로 세계경제에 상당한 여파를 가져왔습니다. 가뜩이나 경제성장이 둔화되어가는 흐름 속에서 소비와 투자가 위축되고 실물자산에 대한 수요는 증가하고..

    이것이 상품시장에 전반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다음의 명제에서 추론 가능합니다.
    '경기가 불황일 때는 치마 길이가 짧아진다.'

    이 명제가 의미하는 바는 불황일 때는 상대적으로 저비용으로 고효율의 치장을 하기 위해서 치마를 짧게 입는 등과 같은 풍조가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불황에서 소비자들의 구매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저비용으로 고효율의 상품홍보가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 무거운 스토리나 다소 깊은 이해도가 필요한 작품들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아예 그런 계통의 작품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만, 전체 비율상으로는 그렇게 되구요. 위험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1쿨 작품이 확연히 증가하는 추세에서도 그런 점을 엿볼 수 있구요.


    이 시기에 말도안되게 히트치는 작품이 하나 등장합니다. 'K-ON'. 이 작품의 특징은 간단합니다. 일상계이자 전형적인 모에계 작품. (물론 3분기에 바케모노가타리라는 대작이 나타납니다만, 독특한 작가와 독특한 연출진의 만남이 이뤄낸 정말 특출난 케이스이기 때문에 예외)

    더 이상 무거운 스토리는 일부 시리어스물 매니아층을 제외하고는 힘을 쓰기 힘든 시기가 오는 걸 알리는 시작이었습니다. 그 이후에 히트를 치고 수익성 기준으로 잘 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 역시, 아이마스나 러브라이브같은 작품이었고, 이들은 상대적으로 스토리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단 캐릭터의 개성을 중시하고 모에를 팔아서 스토리는 그것을 받쳐주는 부수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작화의 중요성이 스토리를 압도하는 시기가 오기 시작하죠 'ㅅ'

    이런 변화가 불황의 여파이기도하지만, 사람은 기본적으로 아프기 위해서 돈을 쓰지 않고 기쁘기 위해서 돈을 쓰는데, 그 성향을 강화시켜줬다고나 할까요? 스스로의 삶이 정말로 힘들 때는 그저 즐겁고 행복한 기분을 만들어주는 것을 보는 것이 더 힘이되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보는 것은 즐겁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모습에 자신을 투영해서 고독감이나 괴로움이 배가 되는 경우도 있구요. 또 사람들이 다른사람의 고통을 보는 이유는 그것을 봄으로써 자신은 안전한 곳에 있다는 안도감, 그리고 약간의 우월감에서 오는 카타르시스 때문입니다. 즉 사람들은 보고싶은 것을 보길 원하지,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고 싶어하지는 않는 다는 것..

    라이트노벨 시장이 지금처럼 번성할 수 있었던 건 그런 추세를 아주 잘 수용했기 때문입니다. 에로게와 달리 라노베는 진입장벽 자체가 낮은 편이기 때문에 시나리오에 대한 공급이 수요를 충족시켜주고도 남습니다. 또한 그들은 얼마든지 빠르게 변화할 수 있는 환경에 있습니다. 책이란 것은 1권 내보고 반응에 따라 계속 내도 되고 아니면 바로 방향선회해도 되고 상대적으로 유동적으로 생산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메리트가 있으니까요.[어디까지나 게임시장과 비교해서]

    살짝 이야기가 길어진면이 없지않아 있는데,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이 있구요.
    전 이 말을 경제변동주기에 맞춰 해석하는 편인데, 다시 말해서 경제가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듯이 그 속에서 유행의 흐름도 변화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지금의 경제상황이 극복될 때쯤이면, 아베노믹스가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해서 일본 내 경제가 안정이 된다면, 패러다임의 변화가 오지 않을까 싶네요.

    P.S: 물론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생각이고, 결론 역시 희망적인 관측일 뿐입니다.
    가능성의 측면에서 말씀드리자면 사실 이런 경향이 보다 더 심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은 자극이란 거에 내성이 있어서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되기 때문에..
    분명히 언젠가 한번 한계에 부딪칠때까지는 계속 이렇게 달릴듯하네요.
    그 부딪치는 순간에 혜성처럼 나타날 구세주가 누구인지를 생각해보는 재미는 있을 거 같네요.
  • 하운나래 2015/05/04 23:05 #

    댓글 감사합니다.

    재미있는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문화콘텐츠적 접근은 미시적인 측면이고, 말씀하신대로 거시적으로는 그 기반이 되는 사회경제학적 측면에서 보는 것이 일반적으로는 타당한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문화의 트렌드가 크게 뒤바뀌게 된 것은 물론 그런 사회경제학적인 흐름의 변화에도 기인합니다만, 그렇다고해서 그것이 유일무이의 원인이지도 않을 뿐더러 여기서 말하는, 서브 컬쳐(혹은 에로게) 전반에 대한 깊이 있는 시선을 주지는 못하기 때문에 '원인'의 한 가지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봅니다.

    에로게를 비롯한 서브 컬쳐의 변화의 '원인'을 찾는 것은 말씀해주신 사회경제학적 원인 등 여러가지가 있겠습니다만 우선시되어야 하는 건 역시 미시적인 측면, 즉 에로게를 비롯한 서브 컬쳐의 본질과 특징에서 그 변화의 원인을 찾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봐요.

    소위 무겁고 - 가볍다, 이건 애초에 대중 문화 측면에서 바라봤을 때, 대중 문화는 '무겁다'는 이미지와 맞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애초부터 스토리의 시리어스함이나 무게감, 내적 의미 등은 순수 예술이나 순수 문예가 전담하는 것이지, 대중 문화는 애초에 가벼우며 즐거움을 추구하는 엔터테인먼트가 주 본질이 되겠지요.

    때문에 대중 문화의 측면에서 보면 이와 같은 변화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고, 오히려 대중 문화의 본질에 충실히 이행하는 과정이며 그 결과라 보는 것이 타당하겠지요. 애초에 게임이나 라이트 노벨, 애니메는 '즐겁고' '재미'가 있어야 하는 것이지, 어려운 명제에 대한 해설이나 주제 의식, 메시지를 전달받기 위해 에로게나 라이트 노벨, 애니메이션을 보는 건 아니거든요. 때문에 소수의 스토리게나 스토리 지향의 시리어스 작품의 성공을 제외하고는 어중간한 작품은 성공하기 어려운 건 당연하고요.

    최근의 서브 컬쳐의 양적 성장이나 대중화는 이를 비중 상 더 부각시키는 것이고요. 또한 인터넷과 SNS, 휴대 단말기 등의 발달은 지난 번 포스팅에서 언급한 '스낵 컬쳐'를 더 촉진시키면서 대중 문화에 대한 접근과 시선이 더욱 '라이트'해진 것입니다.

    에로게를 살펴 보면, 에로게는 본래의 역할은 '에로'에 있습니다. '에로'는 '스토리'보다는 '캐릭터'에 연관이 있고요. 이 둘이 강조되는 트렌드로의 변화는 굳이 사회경제학적인 해석 필요 없이 당연한 것이 되겠지요. 말씀하신대로 에로게의 트렌드의 변화는 돌고 도는 현상이 있고, 최근에 들어 다시 캐릭터보다는 '스토리'가 중심이 되는 변화의 조짐이 슬쩍슬쩍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과거와 같이 캐릭터와 에로를 뒷전에 둔 스토리게가 아닌, 캐릭터와 에로를 함께 끌고 가는 더 나은 스토리게라는 점에서 희망적인 관측이 가능한 것이고요.

    말씀해주신 사회경제학적 해석이 틀리다는 게 아닙니다. '문화'는 어디까지나 경제적 흐름에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아니 사회의 어떤 현상도 경제적 틀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겠지요. 다만 에로게나 서브 컬쳐의 흐름을 좀 더 올바르게 알기 위해서는 역시 장르적 본질에 대한 더 깊이있는 통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브 컬쳐는 애초에 다른 대중 문화에 비해 그 역사가 너무 짧고 변화도 빠르게 일어나기 때문에 마냥 경제적인 지표와 관련시키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성공'하는 작품들의 공통점은 트렌드의 변화를 빠르게 포착하는 것도 있습니다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특별함'의 유무가 되겠고, 그것이 이 글에서 제가 말하는 '상상력의 깊이'가 되겠지요.

    어쨌거나 좋은 말씀 감사드리며, 저도 덕분에 많이 공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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