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과 노을의 안식처


사쿠라의 시 (Makura, 2015) 작품 해설 (내용 추가) -- 사쿠라의 시


(아래 사용된 CG 및 그림들의 저작권은 모두 ⓒMAKURA에 있습니다.)

[10년 만에 태어난 스카지의 역작, <사쿠라의 시>]


* 게임명: 사쿠라의 시 -벚나무 숲 위를 춤춘다- (サクラノ詩 -櫻の森の上を舞う-)
* 장르: 노벨 타입 ADV / 노벨
* 규격: 풀 프라이스 (9,880엔)
* 제작사 및 발매일: 枕 (2015. 10. 23)
* 원화: 狗神煌、籠目、基4
* 시나리오: すかぢ、浅生詠


* 참고: 이 리뷰를 마지막으로 첫 번째 수치화된 평가표는 앞으로 기재되지 않습니다.


● 총평: 기획자이자 시나리오 라이터, '스카지'의 미적, 예술적 담론을 향한 꿈과 이상을 화풍(和風)의 ‘사쿠라(벚나무)’와 한 인물의 인생(나오야)과 접목시켜 한 편의 그림과도 같은 작품을 10년 만에 세상에 내보냈다. 이야기 내부에 결함은 있지만, 그 이상으로 문학, 철학, 미학 등을 인용하여 이 작품만의 '고유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엔 성공했다고 본다. 후속작이 존재하는 작품으로 나오야 인생의 ‘최고로 행복한 순간’은 좀 더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

● 추천 방향: 예술을 다루는 몇 안 되는 스토리게이므로 대중화된 이능력 배틀물 또는 캐러게에 지친 분들을 위한 차 한 잔과도 같은 작품

● 매력 포인트: 중2병과 문예 사이에 걸친 장면과 임팩트, 서브 컬처에선 쉽게 보기 어려운 진지한 예술 작품론

● 한계: 최근 트렌드와 부합되지 않는 내용 및 게임성, 예술의 탈을 쓴 마법과 기적의 이야기



● 작품 해설

 (내용 누설 주의)

 1. What is ‘Eroge’? Never ‘Literature’.

 에로게에서 많이 취하는 플랫폼, 다시 말하자면 '비주얼 노벨' 플랫폼을 취하는 게임은 텍스트로 구성된 '이야기'를 기본이자 핵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소설 혹은 희곡(연극)과도 닮기도 하면서 이 매체들이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을 BGM, CG 및 그래픽 등을 통해서 시각적, 청각적으로 대신하기 때문에 전혀 다른 개성을 지닌 이야기 전달 매체이기도 합니다. 이 차이는 '텍스트'를 통해서 나타나게 되고요.

 비주얼 노블은 '최소한의 게임성'을 지닌, 이야기와 사운드, 그래픽과 시스템(UI)만 존재하면 쉽게 만들 수 있는 '게임'이기도 합니다. 아시다시피 게임은 엔터테인먼트의 일종으로, 그것은 곧 소비자(플레이어)에게 즐거움을 느끼게 끔 하는 데에 궁극적인 목적이 있습니다. 한 때 에로게는 엔터테인먼트이기도 했으면서도 몇 몇 창작자들의 '그래픽과 사운드가 존재하는' 대중 문학(소설) 작품의 이상적인 표출 방식이기도 했기 때문에 인디 장르가 보여주는 특유의 활력과 갖가지 모험적 시도가 활발하게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지금과 같이 캐릭터 위주의 게임이 아닌, 이야기(스토리)가 강조된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혹은 그들 작품들은 '창작자'의 의도와 즐거움이 가장 정점에 이른, 쉽게 말하면 자유롭고 이상적인 창작 욕망의 배출구이기도 했습니다. 소위 '뭘 만들어도 되는' 그 시기에는 소비자의 욕구와 취향을 고려할 필요는 사실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길게 잡아 10~20여년이 지난 지금은 에로게가 그 때와는 다른, 2D 상에서 '에로'가 존재하는 '캐릭터 게임'의 영역을 강하게 차지하는 대신, 서브 컬처의 핵심이 되기도 한 '모에'를 선도하는 자리를 다른 매체들(라노벨, 애니메, 기타 게임 등)에게 넘겨주게 되었고, 그들 매체에 비해 상업적으로 불리한 면이 많이 드러나게 되면서 그 활력은 매우 줄어들고 소비자들이 원하는 유형의 '에로게', 즉 '캐릭터 게임'이 부흥하게 됩니다.

 재미있게도 <사쿠라의 시(이하 사쿠우타)>라는 작품은 제작 기간만 10여 년이 넘는, 본래라면 10년 전에 나왔어야 하는 게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게임은 초창기 에로게와 최근의 에로게의 특징을 모두 갖고 있는, 10년 전 그 때의 과도기에 나올 법한 게임이기도 합니다. 이 말은 즉, 해묵은 에로게의 한계를 그대로 갖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과거 스토리게가 보여줬던, 독선적이기도 하면서 참신한, 지금으로선 쉽게 만나기 어려운 본격적인 에로게가 된다는 말입니다. 단순히 과거에 나왔어야 할 게임이 최근에 나왔다는 것으로만 넘어가기엔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는 사실이지요.

 이 작품은 그런 배경을 뒷전으로 해도 될 만큼, 시나리오 라이터의 특색이 아주 강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이미 유명한 <스바히비>로 명성을 떨쳤고, 어찌 보면 <스바히비>와 같은 작품이 과거에 충분히 인정받았기 때문에 이 작품 또한 무난하게 지금의 유저들에게도 수용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만약 <스바히비>가 없었고, '스카지'라는 이름값이 없었다면 <사쿠우타>가 지금 시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까요? 한 번 생각해볼 만한 부분입니다.

 스카지의 <사쿠우타>는 그가 관련되지 않은 파트가 없을 정도로 각 부문 스태프 명단에서 그의 이름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기획, 시나리오뿐만 아니라 서브 원화, 그래픽, 주제곡 가사 등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그가 혼신의 힘을 다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에 최근의 트렌드에 길들여진, 혹은 '에로게'에 소비자들이 원하는 요소들(주로 캐러게적 요소)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에로게이기 때문에 H신은 포함되어 있지만 최근의 다른 게임들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수준이 달립니다.)

 만약 그 빈 공간이 차 있는 공간보다 더 컸다면, 이 작품은 혹평을 면치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소위 올해 원탑이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유저들의 지지를 받고 있고, 여러 통판 및 리뷰 사이트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이 작품이 ‘블루 오션’이 되어버린 스토리게의 황야에 다시 한 번 싹을 피우는, 혹은 유저들이 다시 한 번 스토리게에 ‘혹시?’하는 기대를 걸어보게 만드는, 그런 위치에 놓인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해 엄격한 관점에서는 <사쿠우타>는 완성도가 좋다고 할 수 있는 이야기물은 아닙니다. 독자들을 몰입시켜야 할 스토리와 플롯은 치밀해 보이면서도 세부적으로는 어딘가 모르게 엉성하고 지루하며, 주인공은 개성이 지워져있으면서도 소위 ‘히어로’ 타입에다가 천재 예술가이기도 하면서 주위의 모든 여성 히로인들은 그에게 호감을 갖고 있습니다. 뭣보다 가장 심각한 것은 인물들에게는 독자적인 자아가 결여되어 있으며, 쿠사나기 나오야라는 인물의 희로애락과 예술적 각성 및 행위를 위한 일종의 장치로써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표면적으로 그와 대척점에 서 있는 핵심 인물인 미사쿠라 린은 행동보다는 ‘말’로써만 자신의 존재의의를 역설하며 일종의 ‘상징적인 존재’로서밖엔 기능하지 못합니다.

[유저는 린이 만들어낸 '예술'을 직접 눈으로 보는 일은 없었다]

 이 밖에도 여러 ‘치명적인 결함’을 스토리 내부에 지니고 있습니다만 (이에 대해선 아래 다른 항목에서 언급하겠습니다.) 결과적으로 ‘스토리게’로서 대중들의 지지를 받는 데에 성공하고 있습니다. 쉽게 생각해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작품이 취하는 텍스트의 ‘개성’입니다. 작품의 반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때론 현학적으로, 때론 감상적으로 인물들은 유명한 문호들의 창작물의 구절을 읊거나 철학을 논하고, 예술론을 피력합니다. 그것은 소위 ‘철학적’인 무게로서 중2병스럽다고, 전파적이라고 느끼기 이전에 유저들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시나리오 라이터인 스카지의 이런 기법은 작품이 취하고 있는 소재인 ‘미술’과 ‘벚나무’를 상징적으로 사용하여 절묘한 분위기 조성 효과를 발휘하는 데에 성공합니다.

[리나-유우미 파트에서는 상징적인 회화와 독특한 화면 연출을 통해 작품 고유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사쿠우타>와는 기법 면에서 차이가 크게 납니다만, 비슷하게 이런 ‘분위기 조성 효과’를 통해서 유저들을 압도시킨 무게감을 만들어낸 게임이 있습니다. 바로 <하츠유키사쿠라(SAGA PLANETS, 2012)>라는 작품이지요. 이 두 게임은 ‘스토리 지향적’이라는 것 이외엔 완전히 목적과 방향성이 다른 게임이기도 하지만, 이야기 내부의 결함을 훌륭하게 보완시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유저들을 사로잡는 독특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에 성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혹자들은 소위 ‘분위기 게임’이라며 혹평하기도 합니다만, 이것은 ‘에로게만이’ 취할 수 있는 매우 독특한 개성이 될 수 있습니다. 유저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그들 라이터의 세련되고 인상적인 문장들이 한 몫을 거두고 있습니다만, 동시에 이들을 떠받쳐주는 사운드와 그래픽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지요. 단순한 텍스트만을 갖고 승부하는 활자 문학이 지니지 못하는 개성이기도 합니다. 제 관점에서는 <사쿠우타> 또한 <하츠유키사쿠라>와 비슷하게 자극적인 플롯의 전개가 아닌 게임을 플레이 하는 과정 내내 유저들에게 ‘독특한 분위기(작풍)’을 느끼게끔 하여 다른 기대감과 몰입감을 줄 수 있었다는 면에서 닮은 부분이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본질적인 면에서는 <하츠유키사쿠라>와는 전혀 다르기도 합니다. <하츠유키사쿠라>는 어쨌든 궁극적으로 해피엔딩으로 향하여 모든 갈등이 해결되는, 이른바 에로게식 종결을 통해서 유저들에게 성취감을 느끼게 해줍니다만 <사쿠우타>는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 <사쿠우타> 이 작품 자체가 "유미주의"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어라? 유미주의(유미론)은 작중 인물인 미사쿠라 린의 미술론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본질 면에서는 같으나 문예에서의 유미주의는 살짝 다릅니다. 다시 말해서 린과는 다른 예술론을 펼치는 쿠사나기 나오야라는 인물을 ‘유미주의적 관점’에서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에로게임에도 불구하고 ‘트루 루트(챕터 6)’는 그 어떤 여성(히로인)과 맺어지지 않은 채 끝을 맺게 하고 있습니다. (물론 후속작을 예고하고 있습니다만 단일 작품으로서 봤을 때는 이례적인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의 본질은 누군가와 이어져 ‘사랑’을 성취하는 데에 있지 않고 나오야를 필두로 하여 다양한 인물들이 ‘어떤 예술론’으로 살아가는지, 또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며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것’에 있습니다. 즉, ‘예술(미술)’ 때문에 좌절하고 절망해도 결국 쇠사슬처럼 예술에 묶여 살아갈 수밖에 없는 주인공을 ‘그리는 것 자체’에 이 작품의 방향성이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기획자는 여기에 이야기물의 마스터키인 ‘사랑’조차도 배제해버리며, 예술에 희로애락을 느끼고 ‘행복한 순간’을 그리며 움켜쥐려는 주인공을 그저 ‘그리는 데에’ 열중합니다. 심미적인 목적 이외의 목적성을 배제하는 것.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을 하는 ‘인간’을 그저 보여주는 것. 그것은 ‘아름답지만’ 정작 현실을 돌이켜보면 주인공이 계속해서 상실을 겪듯, ‘파멸’을 그림자로 삼고 있는 것이지요. 오히려 그 현실에서의 파멸을 미(美)로써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는 것. 이것이 <유미주의>의 본질이며 <사쿠우타>가 취하고 있는 태도입니다.

[주인공은 끊임없이 상실하고 파멸하지만, 예술을 손 놓는 일은 없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에로게라는 매체가 이러한 <유미주의>와 같은 사상을 담고 그것을 표현하기에 과연 적절한 매체일까요? 그것도 캐릭터 게임이 주류가 된 지금의 에로게에서 말입니다. 지금의 에로게에서는 <미소녀만화경(wstar2012~2015)>이나 <나와 사랑하는 폰코츠 악마(스미레, 2015)>와 같은 진하디 진한 ‘에로’가 강조된 원초적인(?) 게임(소위 누키게)이 그 본질을 꿰뚫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때문에 소비자들이 원하는 게임들이기도 하고요. 더욱이 이 게임들은 ‘에로게밖엔’ 대체제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에로게는 ‘게임’의 일종입니다. 게임은 엔터테인먼트이고, 그것이 상업 게임이라면 이제는 소비자가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쿠우타>는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거의 존재하지 않고, 오직 이 작품이 추구하는 ‘독자적인 모습’만이 게임으로서가 아닌, 하나의 독립된 ‘작품’으로서 위치해 있습니다. 엄밀히 말해 상업 게임으로서는 적절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게임은 창작자가 자신의 예술론을 펼치기 위한 공간이 아닙니다. 유저와 소통하고 유저가 원하는 게임을 만들 수 있어야 하지요. 극단적으로 보면 이 작품은 좋은 ‘이야기물’이라고 하기에도 미묘하고, 좋은 ‘게임’이라고 하기도 미묘한, 이도저도 아닌 그저 심오한 예술 논제들을 읊고 보여주는, 그것을 누구도 듣기를 원하지 않은 고독한 외침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 작품은 객관적으로 ‘성공’이라고 해도 될 만큼 판매량에서도, 인지도에서도, 유저(대중)들의 평가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습니다. 그 이유는 앞서 언급한 작품 특유의 ‘분위기 조성’에 성공했다는 것, 스카지라는 작가의 이름값과 팬덤 이외에도 업계 전반과 다른 작품들 간의 상대적인 우위 등 여러 요인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어찌되었든 에로게는 ‘오락’입니다. 소비자(유저)들이 즐거워했고, 좋은 인상을 받았으며 호평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사쿠우타>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로게는 때론 문예적인 무게와 가치를 지닐 수 있겠으나 결코 문예는 아닙니다. 이 독특한 케이스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서브 컬처 중의 마이너인, 가장 원초적인 대중문화 중에 하나인 에로게는 유저와 친숙해야 하며 트렌드에 민감해야 하는 매체인 것에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물론 다양한 시도를 통해 에로게의 내부 활력을 되찾는 것에는 긍정적이지만, 유저와 동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겠지요.


 2. 수동적 주인공에서 <인과교류의 예술가>로

 흔히들 ‘천재 주인공’이라고 하면, 능동적인 주인공상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주인공의 뛰어난 활약을 보는 맛도 있을 것이고 소위 ‘정의구현’하는 맛이 능력자 주인공을 가진 이야기물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메뉴가 되지요. 하지만 재미있게도 <사쿠우타>의 주인공, 쿠사나기 나오야라는 인물은 자신이 스스로 나서서 무언가를 하는 인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면 갈수록 빼앗기는 것이 많은, '상실'을 대표하는 인물이지요. (켄이치로가 소중한 것을 위해 희생한 것이 왼팔이라면, 나오야의 경우 오른팔 - 더더욱 중요한 '기능'을 상실합니다.)  즉, 매우 ‘수동적’으로 그려져 있다는 말인데요. 이는 외형과 성격적인 면에서도 큰 존재감을 나타내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소위 ‘주인공 보정’을 받았기 때문에 성격은 모나지 않은 상냥함과 미남형으로 언제나 주위 여성들에게 사랑받는 포지션에 위치해 있지만 정작 주인공은 초식남인 안타까운(?) 상황. 외형과 성격만 봤을 때는 흔한 에로게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재미있게도 주인공은 ‘천부적인 미적 재능을 가진’ 존재로서는 그 존재감을 매우 강하게 내뿜습니다. 때문에 린, 리나, 아이, 시즈쿠 등의 인물들과 인연을 맺게 되기도 하는 것이고요.

[<인과교류의 예술가>를 잘 드러내는 장면]

 하지만 주인공은 자신의 오른팔을 핑계로 하여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다. 엄밀히는 ‘작품을 만들지 않는다’라는 의미가 됩니다만, 공교롭게도 주인공은 수동적인 인물이면서 동시에 <인과교류의 예술가>로서 활약을 하게 됩니다. 그의 이러한 독특한 개성은 과거 어렸을 적 리나와의 놀이터 돔에서의 합작을 시작으로 켄이치로의 <옆으로 뉘인 벚나무>의 연작 6부작에서 재능을 보이더니, 아카시와의(동시에 켄이치로와의) ‘합작’이자 미술부원들과 함께 만든 행복한 순간의 상징인 <벚꽃들의 발자국>, 소중한 존재인 케이를 향한 진심이 자극이 된 정신적 ‘합작’인 무어전 출전작 <나비를 꿈꾸다>, 마지막으로 나가야마 카나의 도발이 시초가 된 진정한 <벚꽃들의 발자국>. 이들 작품 모두 나오야가 능동적으로 계획하여 창작한 것들이 아닌, 모두 누군가와의 강한 관계성을 기인으로 하여 누군가와 ‘더불어’ 하는 예술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바로 <인과교류의 예술가>.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으로 그의 진정한 예술의 힘을 발휘하는 수동적이지만 가장 ‘인간적인’ 예술가. <사쿠우타>가 보여주는 주인공은 그 자체로서 아름답다고 할 수 있게 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유저들은 바랍니다. 그가 이젠 정말로 웃으며 ‘지금이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 때를. 후속작에서라면 가능할까요?


 3. <사쿠우타>의 한계

 3-1. 케케묵은 에로게의 한계
  3-1-1. 낡은 히로인 공략 시스템

 <사쿠우타>는 스토리게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다만 대부분의 트루 엔딩을 상정하고 있는 게임의 경우 캐러게가 취하는 균등한 다중 히로인 공략 시스템과는 다소 다른 접근을 시도하는 것이 일반적이지요. 대표적으로 <예익의 유스티아(AUGUST, 2011)>와 같이 히로인의 H 이벤트 및 엔딩(공략)을 메인 스토리의 흐름에서의 ‘중도하차’ 형식을 취함으로써 작중의 전개와 개연성을 부드럽게 확보하는 데에 성공하고 있습니다.

 <사쿠우타> 또한 <예익의 유스티아>처럼 어찌 보면 ‘중도하차’형의 히로인 공략 시스템을 취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 중도하차 형식이 기존의 캐러게가 취하는 히로인 공략 시스템과 부분적으로 맞물려서 (개별 히로인) 엔딩 -> 처음부터 다시 시작 -> 엔딩 -> 다시 시작을 반복해야 하고 세계관의 이해를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히로인이 있어서 결국엔 플레이어는 ‘무조건’ 순차적으로 ‘히로인을 공략’해야만 합니다. 이것은 플레이하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중도하차’ 형식과는 꽤 다른 인상을 줍니다.

 중도하차의 경우 히로인과 관련된 에피소드에 돌입하여 세계의 비밀과 설정을 유저가 경험한 이후에 비로소 이 히로인의 엔딩을 볼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는 반면, <사쿠우타>의 경우 스토리를 더 앞으로 진행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히로인을 공략하고 엔딩을 보아야만 합니다. 내용상으로도 결국 ‘연애 파트(H신)’와 트루 루트로의 ‘열쇠’가 되는 비밀들을 알게 되는 파트가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기도 하고요. 결국 게임이 유저로 하여금 ‘강제로’ 원하지 않은 히로인을 공략하게끔 만들어 버린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과거의 스토리게 혹은 캐러게가 갖고 있는 고질적인 한계이기도 한데, 아무리 이 게임 자체가 오래된 기획의 결과물이라고는 해도 이러한 부분까지 그대로 가져온 것은 분명한 단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3-1-2. 철저한 1대 1 스토리 (01.28 내용 추가)

 최근의 에로게에 들어서 과거와 큰 차이점이 있다면 소위 ‘동아리 활동’으로 대표되는 등장 인물(특히 공략 히로인)들의 ‘집단화’를 들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유저에게 선택받지 못한 히로인든 철저하게 공략 히로인의 스토리에서 배제되는 경향을 나타냈지만, 지금은 공략의 대상이 되지 못한 히로인이 또 다른 조연의 등장인물로 역할을 바꿔 등장하거나, 아예 ‘동아리 활동’ 등의 집단으로 활동하여 공략의 유무와 관계없이 대부분의 히로인들이 모두 각각의 스토리에 나름의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일견 “왜 내가 공략할 생각도 없는 히로인이 멋대로 내가 공략하고 있는 히로인의 스토리에 등장하느냐”라는 불만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반대로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히로인이 다른 히로인의 스토리에서도 ‘다른 역할’로써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에로게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또 다른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쿠우타>의 경우 이 부분에 관해서는 철저하게 과거의 에로게의 경향을 답습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개별 히로인 루트에 돌입하게 되면 철저하게 그 히로인 이외의 히로인은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이야기에도 관여하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을 굳이 이 게임의 개성이 아닌, ‘한계’로 봐야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견해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작품의 전체적인 맥락과 주제 의식을 고려했을 때 작품을 진행했을 때 자연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캐릭터(공략 히로인)들의 집단화의 경우 엄밀히 따지자면, 스토리게의 특징이 아닌 캐러게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캐러게가 살아남는 재미있는 방법 중에 하나인데, 이것이 최근의 에로게의 주된 특징이 된 것은 현대의 에로게가 캐러게를 주류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래 스토리게의 경우엔 사건과 갈등 위주로 작품이 전개되기 때문에 ‘불필요한’ 인물은 대체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다른 이야기 매체에서도 어느 정도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왜냐면 그들(캐릭터)들의 매력을 어필하고자 하는 데엔 별 흥미가 없기 때문이지요. <사쿠우타>의 경우 정확히 캐릭터들의 매력을 어필하기보다는, 보여주고 싶고 말하고 싶은 것만을 표현했기 때문에 이것이 결과적으로는 주인공과 공략 히로인의 1대1의 스토리로서 나타나게 됩니다. 만약 10년 전의 과거였다면, 이것은 단점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지금은 스토리 라인뿐만 아니라 캐릭터들의 주체성과 개성을 중요하게 다루는 '캐릭터 산업'의 거대한 틀 안에 에로게가 위치해 있기 때문에 한계점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3-2. 독자적 자아가 결여된 인물들과 공감의 부재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사쿠우타>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공략 히로인을 포함하여) 독자적인 자아를 갖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사쿠우타>에서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주인공(나오야)의 희로애락이나 예술적 각성 및 행동을 위한 일종의 장치, 인형 그 이상의 자아를 획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직 유우미, 케이, 나가야마 카나 정도가 예외적으로 <사쿠우타>에서 독립적인 자아를 획득하고 있는 주역입니다. 유우미가 리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또 나오야를 어떠한 감정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독특한 연출과 시적(감상적)인 문장들로 담담하게 표현해 나가는 것은 작품 전체적인 구성에서는 괴리되어 있습니다만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에 하나였습니다.

[유우미의 내면 서술은 순수 문학을 방불케 할 정도로 섬세하면서, 상징적-은유적으로 묘사되어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하지만 그런 그녀조차도 작품 전체적인 시선에서는 ‘하쿠키 전설’을 유저들에게 설명시키고, 주인공의 과거를 유저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역할에 그치고 맙니다. 이 이상으로 그녀가 작품에 끼치는 영향은 없습니다. 이는 마코토도 케이와의 관계와 나카무라 가문의 관계성을 드러내는 것 그 이상의 역할을 수행하지는 못하며, 챕터 6에서 또한 나오야의 예술적 각성을 위한 편리한 도구로써 등장하는 것으로 그칩니다. 무엇보다 ‘케이’는 독립적 자아를 획득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오야의 '상실'을 그리기 위한 거의 최악의 역할을 맡아버린 캐릭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인물의 작중에서의 ‘자아의 획득’은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리나 파트에서의 유우미가 그랬던 것처럼 그 인물의 ‘내면 포착’에 있습니다. 그것은 직설적으로 문장이나 ‘시점 변경’에 의한 독백으로 표현될 수 있고, 인물과 인물의 진솔한 내면적 대화일수도 있습니다. 아쉽게도 이 작품의 대부분의 대화는 상당수가 자신의 말이 아닌, 다른 무언가의 ‘언어’로써 대신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멋들어지고 세련되었지만, 그 캐릭터 스스로의 진솔한 말이라고 느껴지지는 않겠지요. 물론 이와 같은 표현법이 주는 독특한 효과는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만 인물들의 진정성을 드러내는 것과는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우리가 그녀에게서 듣고 싶었던 것은 미적 유미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진솔한 그녀 자체의 내면 심리였다.]

 때문에 대부분의 인물들에게서 유저들은 심리적-감정적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무척 어려워지게 됩니다. 주연급의 많은 인물들은 대체로 ‘천재’로서 그려지고 있으며 그들의 행동 패턴은 일상의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소위 ‘전파적’인 느낌을 그들에게서 받을 수 있으며 이는 주인공에서 극단적으로 나타납니다. 주인공은 과거의 에로게 주인공이 그러했듯 ‘천재’라는 사실을 제외하면 성격적인 측면에서 개성이 굉장히 희박합니다. 그럼에도 ‘잘생겼기(에로게에서는 이를 주로 상냥하다고 표현..)’ 때문에 주위의 여성들에게 언제나 연모의 대상이 됩니다. 그렇다고 주인공이 ‘주체적으로’, 적극적으로 행동하여 무언가를 성취하여 멋진 모습을 거두는 것도 없습니다. 때문에 플레이어는 가장 공감하거나 몰입해야 할 대상인 주인공에게 어떠한 감정적 동조도 쉽게 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플레이어는 다른 대상에게 몰입하거나 감정적으로 동조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또한 그러기 어렵습니다. 많은 캐릭터들의 언행에 ‘현실감’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때로는 인물들은 창작자의 의도에 맞게 행동하여 사건의 전개를 촉진시키거나 긴장을 유발시키는 데에 일조할 수 있습니다. 돌발적인 행동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결코 ‘전파적’인 행동을 해야 하는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주인공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캐릭터가 하늘에서 전파를 수신하는 듯한 기묘한 언행과 이에 더불어 고등학생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노숙한(?) 인생론을 펼치거나 예술론을 언급하는 등 너무나도 ‘일상’의 그것과 괴리되어 있음을 작품 내내 느꼈습니다.

[린의 사상을 잘 드러내는 부분이지만, 일상과 현실에서 지나치게 괴리되어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순 없었다]

 물론 이것들 또한 이 작품의, 시나리오 라이터인 스카지의 개성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작품의 캐치 프레이즈가 <일상의 행복>을 그리는 데에 있다고 한다면 좀 더 그 일상의 장면과 인물들의 ‘야리토리’를 유쾌하면서도 일상적으로 그릴 수 있어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뭣보다 일상에서의 ‘개그’가 너무도 지루하고 재미가 없습니다. 어설프게 ‘외설적’인 농담이 난무하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인물들의 진솔한 내면을 더 이해할 수 없게 되며, 초중반부에 이러한 것들이 집중적으로 몰려 있다 보니 거의 최악에 첫인상에 한 몫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중도하차 욕구를 몇 번이나 느꼈는지 셀 수가 없군요. (웃음)


 3-3. 예술(미술)이 아닌, 기적과 마법의 이야기

 앞서서 이 작품이 <유미주의>적인 성향을 띤다고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가장 핵심이 되어야 할 ‘예술’의 과정이 대부분 생략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드러나야 할 주인공(나오야)의 작품을 향한 내적 고뇌를 작품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직 ‘천재’라는 원인으로 인한 ‘멋진 작품’의 결과만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나마 챕터 2의 <벚꽃들의 발자국>의 제작 과정만이 그나마 온전히 표현되지 않았나 싶군요. 나머지 <앵육상도>와 <나비를 꿈꾸다>, <벚꽃들의 발자국>의 개선 등에서는 일절 주인공의, 소위 말하는 ‘노력의 과정’을 유저들이 간접 체험을 할 수가 없습니다. 예술은 물론 ‘결과물’이 무척 중요하지만, 그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까지의 과정 또한 중요합니다. 특히 이 작품에서 현학적이며 추상적인 문장은 무척 많이 등장하지만, 정작 미술 작품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선 그것들은 크게 도움이 되지는 못합니다. 때론 복잡하지 않고, 감각적이면서도 단순한 하나의 문장만으로 유저들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더욱이 <사쿠우타>가 시각적인 자극을 기반으로 하는 미술 작품을 표현하려 했다면, 적어도 몇 몇의 작품이 그러했듯 실제 CG로써 보여줄 것이 아니라면 ‘감각적인 문장’으로써 유저들에게 간접적이나마 체험할 수 있게 했어야 합니다.

 ensemble의 과거작, <소녀가 자아내는 사랑의 캔버스(乙女が紡ぐ恋のキャンバス, 2012)>에서 등장하는 문장 하나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  "똑같은 보랏빛 눈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어젯밤까지만 해도 새벽의 서리였건만. 오늘은 끝없는 어둠을 향해 시시각각 내려앉는 고드름"

 주인공이 히로인의 보랏빛 눈동자의 미세한 변화를 서술한 부분입니다. 시각적 영상과 함께 대상의 심리까지 완벽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퍽 인상적이라 메모까지 해뒀는데, 에로게에서 이런 기막힌 묘사를 해낸 작품은 쉽게 찾아볼 수 없지요. 공교롭게도 위 작품 또한 ‘천재 미술가’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입니다. 비록 캐러게 성향의 여장물입니다만 주인공이 하나의 ‘예술 작품’을 그려 내기 위한 그 고뇌와 갈등, 결단의 과정이 유저들로 하여금 충분히 공감대를 얻을 수 있도록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위와 같은 감각적인 문장들은 실제로 <사쿠우타>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한 CG임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그림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해줬습니다.

 반면 <사쿠우타>의 경우 보여줘야 할 눈앞의 광경들을 의외로 온전히 묘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묘사라기보다는, 오히려 방법론적인 설명에 가까운 것들이 많지요. 때문에 유저들은 그것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어렴풋이 알게 되지만 정작 어떤 결과물인지는 직접 보여주지 않는 이상 알기 어렵게 됩니다. 작중에서의 ‘스이’와의 수영장에서의 미술 대결이 대표적인 예시라 할 수 있네요. 충분히 그 장면의 임팩트는 남아 있었지만, 어떤 그림이 되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유저 입장에서는 그것은 그저 ‘마법’과 다를 게 없지요.

[신적 재능과 인간적 재능의 대결. 하지만 평범한 CG로 처리하여 임팩트가 적었다]

 무엇보다 ‘미술에 저주받은 재능’ 자체를 ‘인간의 것’이 아닌, 전설적인 혹은 신화적인 존재로서 ‘초현실적인 것’으로 구현한 것은 마이너스로밖엔 작용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만들기 때문에 비로소 예술입니다만, 여기에 인간이 아닌 ‘무언가가(스이라는 존재이자 천부적 재능)’ 개입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예술이 아닌, ‘마법’ 혹은 ‘기적’이 됩니다. 이를 향토적 접근(하쿠키 전설)과 부합시켜 억지로 이야기를 짜 맞췄습니다만, 오히려 이는 <유미주의>에 있어서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지는 못합니다. 굳이 이 작품에 ‘마법’ 혹은 ‘기적’의 요소를 집어넣을 필요가 과연 있었는지. 린이라는 캐릭터를 그런 식으로 조형할 필요가 있었는지. 어찌 보면 ‘시즈쿠’라는 캐릭터의 존재(더불어 하쿠키 전설)가 이 작품을 순전한 ‘예술’에서 초현실적인 ‘기적’이 개입된 ‘마법’으로 둔갑시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쿠우타>의 본질에는 마법적인 요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챕터 6에서 전혀 기능하고 있지 않게 됩니다.

[예술(미술)을 넘어, 일종의 마법의 영역에까지 발을 들여 놓는 것은 작품의 본질과 유리되어 있다]

 다른 측면에서 살펴보자면 하쿠키 전설과 작품과의 유리는 상정된 부분일 수도 있습니다. 이는 이 작품이 <유미주의>적이기 때문에 드러나는 자연스러운 한계이면서, 그 어떤 필연적인 상관성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오직 아름다운 것을 보여주기만 할 뿐이라는 것 말이죠. 제 관점에서는 하쿠키 전설은 <사쿠우타>가 지닌 단조로운 플롯을 탈피하기 위한 궁리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3-4. 나오야의 ‘상실’

 위에서 언급했던, 이 작품의 이야기 완성도에 있어서 ‘가장 치명적인’ 단점에 해당되는 부분입니다. 주인공인 나오야의 ‘상실’은 크게 두 번에 걸쳐 이뤄집니다. 어린 시절의 과거에 ‘린’을 구하기 위해 희생했던 ‘오른팔’과 오늘날 케이(소중한 존재)의 돌연사. 둘 모두 나오야라는 예술가의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이 되면서 동시에 작품 전체적인 의미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건이 됩니다.

 창작자는 나오야를 어쩔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하고 절망하면서도 그럼에도 누군가와 함께하여 아름다운 예술을 창조해내는 ‘반쪽자리 예술가’, 다시 말해 작중 표현으로는 ‘인과교류의 예술가’를 그려내고 싶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일상에서의 사건이랄 게 ‘소중한 사람’의 죽음이나 소중한 무언가의 ‘상실’ 이외엔 상정하기가 어렵지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건을 강제적으로 만들어내야 합니다. 첫 번째 사건이 바로 린이 살던 저택의 ‘화재’가 되고, 두 번째 사건이 바로 케이의 ‘오토바이 사고’입니다. 두 사건의 결과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원인’이 이야기 내부적으로 매우 커다란 구멍으로 작용합니다.

 나오야의 첫 번째 상실의 원인이 되었던 사건, 바로 화재’. 문학에서 ‘불’은 여러 가지 상징으로 사용됩니다. 때론 강한 생명력으로 표현되며 사랑, 열정, 혹은 분노 등의 감정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동시에 불로 무언가를 태우거나 타는 것으로 종종 ‘광기’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화재가 일어나기 전, 린은 소위 ‘신이 들인’ 무시무시한 재능을 지니고 있었고 부모들조차도 꺼려했지요. 만약 여러 원인와 갈등이 겹쳐서 ‘필연적으로’ 화재가 발생했다면, 그 화재가 ‘재능의 광기’-혹은 ‘폭주’로서 그려질 수 있었다면 린을 구하기 위해 희생한 나오야의 ‘오른팔’은 미쳐버린 재능의 폭주(광기)에 의해 희생된 예술가의 재능으로 앞뒤가 절묘하게 맞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화재는 단순한 ‘우연한 사고’였을 뿐이고, 무엇보다 나오야는 어렸을 적 린의 미적 재능을 전혀 모르는 상태였지요. 결국 나오야의 ‘첫 번째 상실’은 단순한 우연에 의한 화재에 희생된, 나오야에게 ‘선택’의 여지조차 주지 않은 불합리한 ‘상실’로 다가옵니다.

 나오야의 두 번째 상실, 즉 소중한 존재였던 ‘케이’의 죽음은 이 작품에서의 가장 최악의 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나오야의 절망과 좌절, 가장 높은 곳에 있을 때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하기 위한 ‘의도적인 장치’로써 어엿한 한 명의 캐릭터인 케이를 ‘돌연사’ 시킨 것은 가히 ‘cheap death’라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이야기물에서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순간에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만약 이것이 ‘돌연사’가 아닌, 충분한 복선을 걸쳐 인과관계가 뚜렷하게 성립한 안타까운 죽음이었다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사쿠우타> 본편에서는 이미 복선은 어느 정도 깔려 있었지요. 오토바이의 노후, 오토바이를 타지 못하도록 아이가 오토바이에 한 조치 등 개연성은 어느 정도 확립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죽음의 원인은 ‘한 소녀가 갑자기 나타나’ 그것을 피하려다가 일어났습니다. 두 일 사이엔 어떤 인과관계도 성립할 수 없으며, 따라서 이것은 ‘우연한 사고’가 되는 것이지요. 즉, ‘돌연사’라는 말입니다. 물론 케이라는 천재 예술가의, '영혼'을 다 바친 작품을 만든 이후의 죽음이라는 인상적인 임팩트를 남기려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만약 의도가 이러했다면 이런 식으로 그의 죽음을 그리지는 말았어야 했습니다.

[케이가 만약 '여성' 캐릭터였다면 어땠을까? 그 죽음을 유저가 온전히 납득하여 수용할 수 있었을까?]

 현대의 이야기물에서는 가장 조심스러워 해야할 것이 바로 ‘캐릭터의 돌연사’입니다. 그것도 ‘우연’에 의한 죽음 말이죠. 모든 캐릭터 하나하나가 우리를 대변할 수 있는 존재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창작자가 마음대로 작중 전개를 위한 편리한 도구로써 주요 인물을 죽일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케이가 아닌, 다른 ‘여성’ 히로인이 ‘돌연사’ 했다면 <사쿠우타>는 케이의 죽음과 똑같이 좋은 평을 받았을까요? 이 또한 생각해볼 거리가 됩니다.

 이 작품의 본질은 소중한 것들을 ‘상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타인과의 교류로서 예술로 승화시켜 ‘더불어 하는 인간적인 예술’을 보여주는 데에 있습니다. 즉, 주인공을 성공한 존재로 그릴 순 없으며 무엇이든 다 갖고 있는 물질적 행복을 주어서는 또 안 되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거대한 미적 재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술적으로 재현할 수 없게끔 오른팔을 상실(신체적 상실)한 화재와 라이벌이자 소중한 존재의 죽음(정신적 상실)이라는 사건은 확실하게 창작자가 의도한 대로의 결과를 가져다줬습니다. 하지만 그런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한 과정, 즉 나오야에게 있어선 가장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라고 표현되는 그 사건들이 정말로 그에게 ‘능동적인 선택’을 할 여유를 주었는지. 정말로 손 쓸 방도가 없이 닥쳐 버린 '자연재해'급의 우연한 사고밖엔 되지 않는지. 단순히 주인공의 '불합리한 상실'을 극대화하려 했기 때문에 관련성 없는 우연적 사고들을 배치했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만, 만약 이 작품이 하나의 수준 높은 이야기물로서 완성도를 인정받기 위해서라면, 개연성 측면에서 이 부분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인과적 교류 전등>이 더할 나위 없이 밝게 빛나려면 말이죠.


 하운나래.
---------------------------------------------------
P.S. 무척 긴 글이 되었습니다만, 이 작품을 100% 온전히 파헤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는 않고, 꼭 다뤄야할 중요한 부분을 몇 가지 집어본 것에 불과합니다. 그만큼 길고, 깊이 있는 무언가를 담아내려고 했던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지요. 혹여나 이 포스팅에서 다루지 못한,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거나 그에 대해서 코멘트하시고 싶으시면 댓글로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P.S.2. 이 포스팅을 마지막으로 15년도 결산 포스팅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본래라면 카라멜 박스의 신작인 <라스카발>을 플레이할 예정에 있었습니다만 시간 관계상 건너뛰고 추후에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핑백

덧글

  • 우아카리 2016/01/27 16:57 # 삭제 답글

    상당히 긴 글이 되었네요. 작품 이해에 대한 노력을 옅볼 수 있는 글이였습니다. 고생하신게 느껴지는 거 같네요......
    다른 분들의 글보다 비평적인 측면이 강한거 같은 데 몇 몇 부분은 잘 지적해주신 거 같습니다. 저도 개그 파트가 너무 재미 없었고, 히로인의 공략 구조가 정말로 좋은 방식인지는 한번 쯤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하다못해 스킵이라도 있었다면.....) 3장에서 히로인들의 역할이 공허하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부분이네요.

    다만 마지막 문단의 상실에 대해서는...... 저는 좀 다른 견해을 말하고 싶네요. 글에서는 주인공에게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에 불합리 하고, 이야기에서 존재하지 않아야 할 형태라고 적어주셨네요. 하지만 전 상실이라는 예상치 못하게 일어나고, 때때로, 아니 어찌보면 대부분이 불합리하게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우연'을 작품속 장치로 활용한다 해서 개연성에 바로 금이 간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케이의 죽음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변호하고 싶네요. 케이의 죽음은 오토바이에서 실족한 상처가 원인이 아니라, 자신의 작품을 완성시키기 위해 모든 힘을 소진한 것이 원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오토바이에서 굴렀지만 상처가 생명에 지장을 줄만한 것은 아니였다는 말이 나온걸로 알고 있습니다. 틀렸다면 지적 부탁드립니다.) 케이가 스스로의 몸을 돌보지 않고 그림의 열중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러한 결과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지요. 앞선 문단과 대치 되긴 하지만, 오직 이야기 전개를 케이의 죽음이라는 소재를 억지로 삼입했다는 비판은 다소 부당하지 않은가 생각했습니다.

    상실에 대한 주인공의 능동적 행동에 대해서는..... 글쎄 저는 작 내에서 충분히 보여졌다고 생각합니다. 화재는 우연이였죠. 하지만 그 중에서도 린을 구하기 위해 팔을 희생한 것, 린의 기억을 위해 스스로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고 선언한 것, 마지막으로 리나를 위해 교목을 벚꽃을 바꾼 것들은 주인공 본인의 선택입니다. 사람들이 나오야에게 공감할 수 있었던건 단순히 그가 무언가를 잃은 상황에서 성취하기만 했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스스로를 포기했기 때문이 아닐까하네요.

    기대했고, 개인적으로는 만족했던 작품인 만큼 하운나래님 글에 대한 아쉬움을 숨길 수 없었던거 같았는 데 너그럽게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댓글에서 개인적인 만족감을 지나치게 상대에게 강요하지 않았나 걱정이네요. 비평 작성하느라 고생하겼습니다. 추운 겨울 몸관리 잘하시길 바랍니다.
  • 하운나래 2016/01/27 20:24 #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무지 길었는데, 수고 많으셨어요..

    좋은 작품이기 때문에 다른 에로게에 비해 더 엄격한 시선으로 본 부분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이 만약 깊이와 무게감이 없었다면 그냥 그러려니 넘겼을 부분이 많지만, 완성도와 작품성 양면에서 두루 명작이라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역시 까칠한 시선도 필요한 부분이지 않나 싶어요.

    나오야의 상실에 대해서 지적하신 부분에 대해 코멘트를 해보자면, 만약 현실에서의 '상실'이라고 한다면 말씀하신대로 대부분 우연한 사고에 의해 발생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이야기물'에 들여온다면 살짝 관점은 달라집니다.

    이야기물에서조차 현실에서 일어나는 우발적인 경우의 수까지 '사실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면, 또 그런 우연한 사고를 작중 전개의 장치로 사용하는 것은 창작자로서 꽤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나오야가 결과적으로 오른팔과 정신적 벗을 상실한 것 자체는 좋은 의도적 장치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그 의도적 장치의 '점화'를 현실에서 '있을 법한' 우연적 사고로써 가져오는 것은 결코 좋은 이야기물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시도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야기물에선 현실과는 달리 인물들의 내-외면적 갈등에 의해 특정 사건이 발생하거나 종료됩니다. 완전히 우연적 요소를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가장 신중하게' 다뤄야 하는 부분에서 우연성을 가져온다는 것은 너무 '편의적'이라고 지적하고 싶었습니다. 얼마든지 개연성을 신중하게 확보하면서도 '불합리한 상실'을 표현할 수 있었다고 봐요.

    그리고 케이의 죽음에 관해서. 케이의 죽음 자체는 핵심적인 장치로서 작용합니다. 이 자체엔 문제가 없습니다만, 앞서 언급한 '화재'와 마찬가지로 '죽음의 원인'이 너무도 우연적이고 편의적이라는 인상이 강합니다. 만약 케이가 자신의 작품을 완성시키기 위해 모든 힘을 소진하여 죽는 것으로 강한 인상과 임팩트를 남기고자 했다면, 케이는 자신의 작품을 완성한 직후에 운명을 맞이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나 싶습니다. 뜬금없이 중요한 시상식에 다른 무리와는 별개로 오토바이를 타고 오다가 '우연히' 사고를 당해, 이 순간 작품을 완성하고 발송한 뒤, 시상식까지의 긴 시간의 텀을 고려하지 않고 뜬금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다소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영혼을 다 바친 작품 이후의 인상적인 죽음을 그리기 위함이었다면, 얼마든지 더 '나은' 죽음의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요? 더욱이 몇 안 되는 독자적 자아를 가진 인물이었기에 이렇게 '현실에서 일어난 것처럼' 허무하게 작중에서 퇴장시킨 것은 지나치게 편의적으로 느껴져 저로선 큰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저 또한 말씀하신대로 리나와의 합작의 경우에는 '주인공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나 싶어요. 그 부분은 언급은 못했습니다만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나머지 사건들에 대해서는 '수동적 주인공'이라 언급한 것처럼 화재로부터 린을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신체를 희생한 것, 린의 정신 위생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고 주위를 속인 것 등 이 점은 주인공이 먼저 나서서 무언가를 했다기보다는, 닥친 상황에의 임기응변에 더 가깝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급하신 것처럼 그럼에도 주인공에게 유저들이 후반부부터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욕심보다는 타인의 행복과 타인의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한 예술적 희생이 빛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로서는 작품에 대해 거시-미시적으로 함께 논의하는 것을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어디까지나 제 견해가 정답이 될 수는 없고 저 역시 하나의 '의견'이기 때문에 걱정하시거나 부담스러워하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타이틀에 비해 다소 비평적인 견해가 많았습니다만 '이야깃거리'가 많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제 안에서는 가치 있는 게임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다시 한 번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추운 날씨 몸조리 잘 하시길 바라겠습니다!
  • 환상그후 2016/01/27 17:03 # 답글

    으... 폰으로 볼려니 너무 기네요. 집에거 컴으로 봐야겠어욬...ㅜㅜ
  • 하운나래 2016/01/27 21:16 #

    제가 생각해도 너무 긴 것 같습니다 ㅜㅜ 그럼에도 긴 글 봐주시는 것만으로도 저로선 감사의 마음 뿐입니다.
  • 2016/01/27 18:2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01/27 20:5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6/01/27 21:3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후아드 2016/01/27 23:56 # 삭제 답글

    이렇게 긴 리뷰 쓰시려면 고생이 많으셨을텐데 수고 많으셨겠습니다. 다음에 올리신다는 라스트 카발리에 리뷰도 기대할게요.(개인적으로 저도 이걸 재미있게 하고있어서. 정작 이 리뷰에 올라온 사쿠라의 시는 이거 먼저 하고 다른 거 하면 노잼 될 것 같다는 핑계로 계속 미루고 있습니다만.)

    사쿠우타 게임 자체는 도입부 일부분 밖에 못했기 때문에 제가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본문 윗부분에서 말씀하신 사쿠우타는 과거의 에로게임과 지금의 에로게임의 특징을 모두 갖고 있는 현시점에서는 매우 독특한 게임이라고 평하신 걸 보고 생각난 건데 대중음악쪽에서도 요즘 그런 것과 비슷한 특성을 가진 가수들이 좀 있는 것 같네요. 에로게임이 현시대로 오면서 상업적인 메리트를 잃게됨에 따라 본능적인 에로나 캐릭터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하신 것처럼, 대중음악도 21세기에 들어온 이후 디지털 음원 위주로 시장 구조가 바뀌면서 앨범이라는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 구조를 가진 음악들이 상업적으로 힘을 잃게 되면서 동서양을 불문하고 과거와 같이 음악에 이야기를 담아서 노래하는 가수들이 예전에 비해 고전하거나 아예 비주류로 몰락한 경우가 많습니다.(이렇게 에로게임 블로그에 와서 정작 에로게임과는 무관한 이야기만 또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기본 매체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만)사쿠우타가 그런 것처럼 미국의 켄드릭 라마나 스쿨보이 Q(참고로 이 둘은 같은 크루에 속한 사람들임), 우리나라의 아이유(이쪽은 보기에 따라서는 전혀 아닐수도 있지만 동세대의 다른 주류 대중가수들과 비교했을 때는 노래안에 이야기를 넣는다는 측면에서는 확실히 눈에 띄기 때문에 여기에 넣었습니다. 물론 이는 저의 빠심이 좀 반영된 걸 수도 있습니다만.)같은 가수들을 보면 과거의 음악들이 가진 특성은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도 현재 대중적으로 많은인기를 얻고있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켄드릭 라마나 스쿨보이 Q같은 경우는 과거 8, 90년대 스눕 독이나 故 투팍, 닥터 드레와 故 이지-E, 아이스 큐브와 같은 사람들이 선도했던 웨스트 코스트 힙합의 이야기 구조와 사운드(물론 사운드적인 면에서는 필요에 따라 현재 트랜드도 반영하긴 했지만.)를 이미 상당수 웨스트 코스트 힙합 가수들이 몰락한 2010년대에 부활시켜서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아주 좋은 평가를 받았고(특히 켄드릭은 두 앨범 연속으로 힙합만이 아닌 전장르를 통틀어서 올해의 앨범으로 선정될 정도의 작품들을 내놓았습니다. 올해 그래미에도 여러 부문에 후보에 올랐고요.(하지만 이번에도 주요 부문 수상은 안될 거야 아마. T.T)), 아이유는 기본적으로는 우리나라 트랜디 음악의 공식을 따라가는 한편 가사적인 측면에서 여러가지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오거나(그것이 가사가 아니라도 뮤직비디오를 통해 드러나는 경우도 많고요.) 고전 대중음악의 특성을 자신의 노래에 종종 재현할 뿐만 아니라 직접 그 시대에 활동했던 대선배들과 작업하기도 하는 등 동세대 주류 가수들과는 차이가 있는 모습들이 많이 있지요.(다만 이 과정에서 최근 가사 표현적인 문제에서 다소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지요. T.T) 이런 것들을 보면 어느 대중매체나 이제는 상업적으로 먹히는 작품들이 대세가 되기는 했어도 여전히 하운나래 님 식으로 표현하면 '뭐든지 해도 되었었던' 시절의 작품에 대한 수요나 그리움은 여전히 있는 것 같네요.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미국 여가수 중에 티나셰라는 가수도 정식 데뷔 앨범을 내기 전에는 정말 자기가 원했던 대로 전위적으로 들릴 수 있는 음악들을 많이 했지만 정식으로 앨범을 낸 뒤로는 대중들에게 먹힐만한 노래들도 여러 냈는데(아이러니하게도 저는 티나셰가 자기 마음대로 한 그런 노래들(+ 섹시한 외모.....;;;;) 때문에 팬이 되기는 했지만 처음 접한 건 그런 노래를 통해서였습니다.) 그런 걸 보면 이제는 예술가가 자기가 진짜 하고싶은 예술을 하기가 힘들어진 시대가 된 것 같아 참으로 아쉽네요. 이상 에로게임 블로그에 와서 에로게임 이야기는 안하고 엄한 이야기만 길게 늘어놓다 가는 놈의 글이었습니다.
  • 청소부 2016/01/28 00:14 # 삭제

    상당히...폭주하셨네요
  • 하운나래 2016/01/28 16:39 #

    댓글 감사합니다! 길어서 힘드셨을텐데 고생 많으셨습니다..

    라스카발도 조만간 플레이해서 리뷰를 적을 예정이에요. 체험판에서 여러모로 인상깊었던 게임인지라.. 사쿠우타는 취향을 좀 타기 때문에, 그리고 초반부는 특히나 그렇기 때문에 인내심이 필요한 부분도 있더라고요.

    말씀하신대로 사쿠우타는 과거와 현재의 특징을 복합적으로 지닌 게임입니다. 애초에 00년도 중후반 게임들이 대체로 그렇습니다만, 사쿠우타는 그 때 나왔어야 할 게임이 지금 나온 것이기 때문에 낡게 느껴지면서도 신선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대중문화의 흐름은 거의 대체로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지 않아 싶어요. 한창 부흥기에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시기이기도 하고, 투자도 많기 때문에 창작자들이 아무래도 자유롭게 소신을 펼치는 부분이 있죠. 하지만 일종의 거품이 빠지고, 가이드라인이 정착되면서 상업적으로 유리한 물건들이 주목받고 팔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광고와 홍보’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우선 ‘팔리기’ 위해선 주목받아야 하는데, 여기엔 대중 지향적인 것들이 우위를 점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스낵 컬처라고들 하지요. 무겁고 깊이 있는 것들보다는, 가볍고 유쾌한, 간단하게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것들을 대중문화에서 소비자들이 찾고 있기도 하고요. 사쿠우타의 경우, 재미있게도 게임 자체보다는 라이터의 이름 등의 후광이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더 만들고 싶은대로 만들고, 또 그것이 수용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소위 ‘복고’가 한 때 유행했을 때도 그렇고, 문화가 갖는 힘은 단순히 가볍고 유쾌함에 있는 것만은 아니고 이것을 사람들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품들이 존재하고 또 그것이 흥망성쇠를 반복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주신 가수들도 문화의 그런 측면들을 절묘하게 잘 이용하고 있기에 ‘유니크’한 특성을 지닐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저는 ‘트렌드’라는 것은 매우 큰 시점에서는 점진적으로 방향성을 띠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그 안에서는 작은 흐름들은 바뀌며 돌고 도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뭐든지 해도 되는’ 시기는 물론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대중적 취향에만 편승하는 물건은 또 아예 높은 곳에 올라가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대중문화에 속한 예술가들은 자기만의 예술과 더불어 트렌드를 포착하고 그것과 적절히 타협하는 능력이 뭣보다 중요하지 않을까...제 짧은 소견으로는 그렇습니다.

    재미있는 얘기를 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감사합니다.
  • 유스티아 2016/01/28 00:18 # 답글

    굉장히 긴 비평문 쓰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언제쯤 올라오나 하고 계속 기다리고 있었는데 드디어 올라왔네요 ㅎ 전체적인 시각에서 단지 "좋으냐 나쁘냐"만을 판단한 제 견해보다는, 세세한 부분에서 여러 가지 작품들과 비교하며 에로게의 본질적인 역할을 꿰뚫어 설명하셨기에 더 멋진 내용들이 많이 보이는군요.

    우선 인물의 구성 면에서는 역시나 얘깃거리가 많죠. 확실히 언급해주신 카나, 유미, 케이라는 인물들이 확실하게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은 이견이 없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다른 히로인들인데, 확실히 하운나래님 말씀대로 나오야의 "상실"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녀들은 어딘가 불완전한 상태의 히로인으로 설정된 것이 리스크가 좀 있게 되었습니다.

    뭔가 인물의 독자적 자아에 대해서 언급하자니까 굉장히 길어질 것 같네요. ㅠ 저 같은 경우에는 그 자아성이 갖가지 우화를 통해서 빗대어져 표현되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고 생각했는데, 확실히 하운나래님 글을 보니 엔터테인먼트를 추구해야 하는 에로게의 틀에다가 추상적이고 은유적인 설정을 덧붙여 놨다는 것 자체가 이미 에로게로써는 굉장히 동떨어진 선택이 아닐까 싶네요. 그렇기에 캐릭터 고유의 매력보다는 과거의 "상실"로 인해 형성된 빠져있는 가치관만 보여주니 어딘가에서 나오야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은 수동적인 인물상이 되어버린 것이 좀 아깝게 느껴지긴 합니다.

    가장 잘 짚어내신 부분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이상성" 부분이네요. 린의 예술관 자체도 그렇고, 실제 나오야가 살아온 인생관 자체도 요즘 시각으로 봐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선택이긴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렇게도 생각해봤어요. 여러 가지 소설들이나 이론들을 동원해서까지 인물들의 예술성을 추상적으로 만든 이유가 뭐냐? 그것은 바로 예술 그것만이 가지는 이상성 자체에 주목을 한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문제는 이러한 예술관은 현실적인 예술 사조와 비교해보자면 굉장히 패러다임이 낡아빠진 생각이라는 것이죠. 린이 가지고 있는 세계에 없는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그 이상적인 예술관이 구식적이라 한다면, 카나가 가지고 있는 이상성의 파괴를 통해 만들어내는 배덕적인 아름다움을 신식적이라고 명명할 수 있겠습니다.

    재미있게도 카나는 작중에서 이러한 구식적인 예술 사고방식을 비판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미 작품 전체적으로 이상적이고 공감하기 힘든 예술적 인식을 담고 있는 마당에, 그걸 비판하니까 뭔가 미묘하더군요. 결국 스카지 라이터는 나오야의 예술관을 빌려, 작품의 노랫소리를 듣는 것은 오직 감상자이며, 그 감상자에 따라 예술은 죽은 예술이 될 수도 산 예술이 될 수도 있다면서 이도저도 아닌 상당히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합니다. 후속작에서 이어질 이들의 예술관 대결이 어떻게 펼쳐지느냐에 따라서 작가분이 최종적으로 전하고 싶은 예술관이 드러나게 되겠죠.

    이렇게 너무 생각하게 만드는 장치가 많아서 너무 에로게의 틀을 가지고는 무리한 것이 아니냐? 라는 의견도 꽤 많이 있었습니다(에로게스케이프에서도 몇 보이더군요). 그런데 저 같은 경우에는 오히려 이렇게 생각하게 하는 기회를 줬기에 더욱 몰입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더군요. "예술은 발견하는 독자의 가치관에 달려있다"는 작품의 중심 예술관을 바탕으로 했을 때, 저와 같이 작품 자체의 고유한 분위기에 녹아들어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었던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스카지 라이터는 성공했다고 봐야겠죠.

    그저 즐기기만을 위한 에로게에서 이런 깊은 사고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에, 그 분위기를 좋아하는 유저들에게는 청량제나 다름없었겠습니다. 반면 너무나도 많은 시도를 했기에 부분부분 보이는 아쉬운 처리나 구멍들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고, 스카지 라이터 본인도 인정했다시피 아직 완결되지 않은 불완전한 스토리가 되어버렸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유저들의 공감을 많이 얻어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완성적인 측면으로 봤을 때 개선 여지가 많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네요.

    몇 번이고 중도하차하실 뻔한 것, 계속 끈기있게 올클하신데다가 이렇게 길고 멋진 글을 쓰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댓글 주제에 너무 민폐적으로 길게 쓴 것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ㅠㅠ
  • 하운나래 2016/01/28 17:21 #

    댓글 감사합니다! 읽으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일단 플레이 타임 자체가 길기도 하고, 내용도 많은 것을 담고 있어서 여러모로 길고 오래 걸렸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른 의미에서 역대급으로 그동안의 에로게가 파헤치지 않은 부분을 깊게 들어가려고 한 작품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우면서도, 비평적인 측면에서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과거의 에로게는 캐릭터들의 주체성과 개성을 강조하는 데에 주목하지는 않았고, 이러한 경향을 역시 <사쿠우타> 또한 갖고 있습니다. 정말로 이야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그러한 타입의 캐릭터가 아닌 이상 불필요한 개성을 부여하지는 않죠. 결과적으로 지금 시점에서는 나오야에게 써먹기 좋은 캐릭터처럼 보이는 것 같습니다.

    물론 말씀하신 것처럼 갖가지 우화와 문학의 문구들로 빗대어진 인물들의 대사들은 그들의 심리나 개성을 드러내는 데에 한 몫을 합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효과적으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인물들의 진솔한 내면 포착과 더불어 정말로 ‘필요한’ 부분에서 ‘함께’ 사용되어야 하지만 이 작품은 그 내면 포착을 너무 소홀히 하고 있지요. 이것이 굉장히 잘 된 캐릭터는 오직 유우미뿐입니다.

    어떤 작품이든지 무조건 ‘현실성’을 추구해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야기물의 다양한 가능성과 그 재미는 그들이 현실에는 없는 것들을 보여주며 추구하기 때문이고, 궁극적으로 이것이 바로 이야기물에서 느끼는 ‘재미’가 됩니다. <사쿠우타>는 일면 그런 부분을 표현하려 했으면서도 지나치게 독선적이라는 느낌도 동시에 들었습니다. 주인공의 말마따나 감상자에 따라 산-죽은 예술로 갈립니다만, 이것은 수용자(여기에서는 플레이어)와의 소통이 전제가 됩니다. 그 소통은 인물에의 공감 등으로 가능한데, 이 작품은 그들의 예술관이나 인생을 유저들에게 납득시키려고 노력하지는 않습니다. 유미주의적으로 그저 ‘보여줄’ 뿐이라, 때론 불친절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고요. 이것이 개성이라면 개성이 되겠지만, 말씀하신대로 이것은 에로게입니다. 이 불친절을 ‘오락’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을지, ‘불쾌’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쨌건 이 부분에서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것이겠지요. 이런 특징이 캐릭터들의 개성과 이어져서, 결국 초반부에 쉽게 캐릭터들에게 접근하기 어렵게 되고 중도하차자들이 나오는 이유라고 보고 있습니다.

    중간에 지적하신대로 본문에는 일부러 길어질까봐 언급하지는 않았는데, 이 <유미주의> 자체가 이미 낡은, 과거의 예술 사조입니다. 필연적으로 카나를 대표로하는 새로운 예술관과 대치될 수밖에는 없고, 이를 유미주의뿐만 아니라 과거의 예술관과의 갈등과도 조심스럽게나마 6장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나오야의 경우 지금 있는 인간과 함께하는 예술관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예술관은 유동적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하지 않을까 저는 생각합니다. 때문에 카나의 예술관을 적극적으로 부정하지도 않고, 벽화의 손상에 대해 적극적으로 부정적 감정을 나타내지도 않는 것이고요.

    뭐, 작품 내적으로 얘기가 길어졌습니다만, 그 무엇도 ‘정말로’ 제대로 즐긴 자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사쿠우타>를 통해서 유스티아 님처럼 많은 것을 깨닫고 또 감동 또한 얻으셨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는 게임이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저 또한 그렇기도 하고요. 어디까지나 이건 작품 내부를 파헤치는 과정에서의 논의들이니까요. 감상론과는 별개입니다.

    결과적으로 중도하차하지 않고 끝까지 올클리어하길 잘 했다고 느낀 게임이었습니다. 다른 게임이 보여주지 못한 면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런 게임을 자주하기엔 부담스럽지만, 그럼에도 종종 캐러게들의 파도 속에서 찾아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말씀 나눌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 구구리 2016/02/03 01:55 # 삭제 답글

    작년 스토리게 중 사쿠라의 시가 이정도로 평가받는건 결국 '재미'가 있어서겠죠.
    작중 인물들에 대해 설명하면 길어지긴 하지만... 이 게임에서 자기 자신의 속 내면을 드러내는
    캐릭터는 주인공인 나오야,히카와 리나,카와치노 유미,나가야마 카나,켄이치로정도겠죠.

    저기서 특히나 속 내면을 표현하는 캐릭터중 가장 잘보여준건 거의 이야기의 외전편이나 다름없는
    유미였습니다. 자신의 사랑에 대해 표현되는 CG와 마지막 엔딩 그리고 그 루트의 결말등.
    쿠사나기 나오야를 바라보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잘볼수있는 루트였죠.
    아쉬웠던 점은 그거 뿐이었단 걸까요...실제로 저기서 히카와 리나,나가야마 카나,켄이치로도
    자신들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갔지만 쿠사나기 나오야를 바라보는 시선이라던가
    쿠사나기 나오야가 그린 그림을 볼수가 없어서 아쉬었습니다..특히 켄이치로때 말이죠.

    나오야의 상실을 가져다준 케이와 오른팔.
    첫번째 화제에서 린을 구하기 위해 희생한 나오야의 ‘오른팔’은 미쳐버린 재능의 폭주(광기)에 의해 희생된 예술가의
    재능으로 앞뒤가 맞을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개인적으로는 게임대로 해도 앞뒤는 맞다고봅니다.
    문학적 작품이 많이 사용된 이작품에서 문학적 요소로 볼때의 '불'이 상징하는건 그런 의미들이겠지만
    문학적 요소를 빼보면 단순한 사고죠. 그리고 린이 그나마 고등학생이나 중학생이라면 몰라도 아직 어린 나이때의
    소녀에게 광기의 재능으로 인한 폭주로 화재..라는건 좀 안맞지 않나 싶습니다.(물론 린의 미친 재능으로 인해 벚꽃이 피었지만..)
    설사 그렇더라도 린의 캐릭터상 그런일이 일어나기도 힘들고요.


    두번째 케이의 관해서는 확실히 죽일 필요가 있었나?라는 의문이 떠오르는 죽음이었습니다.
    확실히 하운나래님의 말씀대로 오토바이의 노후,아이가 취한 조치등을 볼때 저걸로 인해 분명 사고가 일어날것이다 란걸 암시해 줬죠.
    그리고 사고가 일어났고요. 하지만 길에 나오던 소녀를 피하려다 일어난 사고는..이것도 우연..이라고 치부할수는 있겠습니다만
    앞의 전개했던 떡밥들이 무쓸모가 되버리죠. 이 죽음의 관해서는 저도 동의합니다.
    우연이고 돌연사라고 치부할수있지만 그렇게 되면 왜 굳이 앞의 오토바이의 노후같은
    떡밥을 풀었는지 이해가 안가니까요.

    상실이 너무나도 많았던 주인공인 나오야지만 가장 대표적인 상실은 이 두가지겠네요.
    굳이 하나더 붙이자면..
    여러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던 어머니의 죽음으로 부터 탄생한 그 그림일까요.

    그리고 이걸 플레이하면서 느낀것은 문학적 표현을 사용하는것도 좋고 분위기 연출도 좋습니다.
    다만 그런 작품을 전부 알면서 하는 플레이어는 거의 없다 보기에 최소한 알게 좀 해줬다면
    좋았지 않았나 싶네요.
    가장 심하다고 생각했던건 린과 나오야의 대화였죠.
    하지만 거기서 만약 린의 심리가 드러나는 장면을 했다면 전 개인적으로 실망했을것 같네요.
    그 CG를 보면서 프롤로그때의 나오야와 케이가 생각나면서 동시에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어느정도 예감은 듭니다.
    이야기하는 내용은 둘의 정반대되는 예술관,가치관이었지만 결국 린이 하고싶은건 그거죠.
    케이의 의지를 잇는것.
    케이의 의지란? 나오야와 같이 정상에서 예술을 하는것. 그
    렇다면 쿠사나기 나오야는 과연? 이런 느낌을 주는 CG와
    대화였기에 제 개인적으로는 명장면중 하나로 뽑을수 있었습니다.
    (린의 내면은 후속작에서 풀어내줄거라 예상합니다.)

    전 개인적으로 사쿠라의 시가 완성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정도였단게 너무나도 즐겁네요.
    후속작에선 어떤 느낌을 줄지도 궁금하고요. 그리고 제 개인적으로 기대하는건 나오야의 여자네요.
    자신의 아버지와 닮은..하지만 어머니도 닮았기에 자신과는 다르다고했던 켄이치로의 아들인
    나오야의 여자가 어떤 여자가 될지 궁금합니다.
    가장 유력후보로는 '나츠메 아이'겠죠. 자신의 아버지때와 비슷하고 무엇보다
    옆에서 나오야의 멘탈을 확실히 잡아주고 지지해주는 역할은
    아이밖에 못하죠. 하지만 이렇게 끝난다면 예술가 나오야는 보지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물론 어떻게 전개할지는 모르겠지만...글쎄요..적어도 아이를 선택한다면
    전 예술가가 아닌 미술 선생님의 나오야를 볼것같네요.

    유력후보로 한명이 더 있다고 생각하고있습니다.
    바로 '미사쿠라 린'이죠.그녀는 작품의 마지막까지 와서 본다면
    나오야와의 접점이 별로 없고 아이처럼 지지해주지도 잡아주지도 않은
    히로인입니다. 히로인력으로 보면 아이쪽이 우세하죠.
    하지만 사쿠라의 시 분위기로 볼때의 결말에 과연?
    린은 케이의 의지를 이어서 열심히 예술활동중이죠. 하지만 끝의
    그녀의 분위기를 보면 예전의 그녀의 모습은 없습니다.
    그런 그녀를 어떻게든 해줄수있는건 나오야뿐이고 케이의 꿈을
    이루어주려는 마음이 있다면 나오야도 다시 일어서겠죠.
    그리고 작중 계속나왔던 범재와 천재대결. 이미 한번 일어났었던
    스이(천재)와 나오야(천재였던 범재)와의 대결이 과연 끝일지는 모르겠네요?
    마지막으로 나오야와 프리드맨과의 대화중 한 말이 신경쓰입니다.
    "제비는 남쪽으로 여행을 떠났지만 그런데도 언젠가는 돌아온다 이 땅에"
    제비는 중 한명인 케이는 왕자인 나오야와 같이 있다가 결국 죽음을,
    카나는 자신대로 예술을 펼친다며 나갔지만 결국 나오야를 계속 바라보는,
    그리고 왕자의 곁을 떠난 한 제비는 과연? 에로게고 사랑이야기가 빠지면 안되겠죠.
    후속작에서 어떻게 될지 상당히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린이 트루엔딩의 진 히로인이 됬으면 좋겠다 생각하고있네요.
    나오야가 말했듯이 "이건 내 인생이다."라고...쿠사나기 나오야는 쿠사나기 켄이치로와 다릅니다.
    천재이면서 그림을 그릴수있는 팔을 잃지않은 켄이치로와
    친구를 지키기위해 그릴수있는 팔을 바친 나오야.
    예술가로서 삶을 살았던 아버지와 아직 아버지처럼 교사로 지내고 있는 나오야.
    교사는 한때고 예술가로서 살며 케이의 꿈을 이루어주면서 아버지와는 다른선택을 했다는
    나오야를 보고싶기에 린과 이어지길 바라네요.
    아이가 선택된다면 왠지 모르게 결국엔 아버지와 비슷하게 가는구나라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기에...
    너무 사심으로 썼네요. 그리고 너무 길어버렸고요...
  • 하운나래 2016/02/03 17:01 #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말씀하신대로 결국 인정받는 이유 중에 하나는 어찌되었든 유저들이 재미있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다만 <사쿠우타>와 견줄만한 스케일의 스토리게가 없다시피했기에 온전히 평가받기에는 다른 해와 비교해선 살짝 무리가 있지요. 애초에 <사쿠우타>는 스토리게입니다만, '사건이나 전개, 갈등'으로 승부를 보는 스토리게가 아니니까요. 뭐랄까, 다른 애로게와 동일 선상에 두는 것조차 살짝 이상할 정도로 에로게라 말하기도 조금 어렵습니다.

    솔직히 라이터 스카지의 배경지식과 특유의 중2병(혹은 전파계) 스타일의 문장들은 부분부분 충분히 매력적이었습니다만, 그렇다고 스토리 자체의 '전개력'과 자연스러움에 대해선 의문이 많이 남습니다. 제가 지적했듯 그나마 전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이벤트가 언급했던 2가지가 대표적인데, 장면과 사건에 대한 '의미부여'와 '임팩트'에 대해선 큰 문제는 없습니다만 그 사건들의 '원인'을 매우 편의적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데에 미숙함이 드러나지요. 애초에 몇몇 캐릭터를 제외하곤 캐릭터의 조형조차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 작품이라 그런지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부족한 부분에 대해선 후속작이 어떻게 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요.

    본문에서 언급드렸다시피, 에로게는 게임의 일종이고 엔터테인먼트인데 <사쿠우타>는 그런 면보다는 '예술적'인 면모를 강조했고, 진짜 문예와 비교해서는 현격하게 떨어지는 부분이 많음에도 '에로게'로서는 여타 작품들이 시도하지 않은 것을 시도한 인상이라 그만큼 임팩트가 크고, 때문에 작품의 완성도 그 이상으로 유저들의 평가가 좋다는 인상이 저로선 큽니다. 에로게가 보여줄 수 있는 예술적 면모에 많은 분들이 놀라워했다는 걸 느낍니다.

    부정할 수 없는 건, 여러 단점과 한계가 있음에도 에로게로서 이런 시도를 하고, 또 유저들이 긍정적으로 수용하여 가치를 찾았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고 덕분에 올해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에로게가 될 수 있었던 것이고요.

    말씀해주신 나오야의 히로인에 대해서는, 후속작에서도 뚜렷하게 명시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한 이야기의 '결말'이야말로, 작가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인데 여기에 직접적으로 '사랑'을 성취하는 대상을 상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제가 본문에도 적어놨듯 많은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괜히 후속작에 그런 연애의 성취 과정을 그리지는 않을 것 같고, 설령 누군가를 선택한다고 해도 그 과정을 게임 내에서 보여줄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마 나오야 또한 '켄이치로'와 같은 위치에서 후세대 히로인들(사쿠라코 등)을 바라보는 위치에 서게 되어 새로운 주인공을 맞이하거나, 또는 직접 주인공이 되어 기존의 핵심 인물 및 후세대 히로인들과 함께 <인과교류의 예술가>의 성공과 파멸을 그리지 않을까...저 또한 사심 가득 조심히 생각해봅니다 ㅎㅎ
  • 구구리 2016/02/04 01:10 # 삭제 답글

    다른 페이지에서도 한번 쓴적이 있습니다만
    역시 후속작에서 사쿠라코나 그외의 다른 아이들이 히로인이 될 가능성이 높아보입니다.
    그리고 아마 될것같고요. 다만 그렇게되면 전작의 히로인들은 뭐가 되느냐가 남습니다.
    전작 히로인들중에 비중이 별로 없는 히카와 리나나 토리타니 마코토,나츠메 시즈쿠는 조연으로 빠질수있단
    생각을 하면서 그렇다면 남은 나츠메 아이와 미사쿠라 린은 어떻게 후속작에서 다룰것이냐가 궁금합니다.

    예전에도 그런게 있었지만 후속작에서 확실하게 히로인에 대해 명시되지 않을 가능성이 저도 있다 봅니다.
    다만 그렇다고 하기엔 트루엔딩쪽으로 갈때 나오야의 여자에 대해 다른 인물들이 계속해서 말했으며
    마지막 아이와 걸어나갈때 "네가 결혼할 상대를 찾을때까진..."이라는 말을 보면 결국 후속작 마지막엔
    확실히 해주지 않을까 싶긴 합니다.

    사쿠라의 시 자체가 다른 미연시와 다르게 '사랑'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는것 같아도 은근히 신경쓴 부분이
    많았죠. 대표적인게 아버지 켄이치로의 사랑이었고 말이죠.
    그런 부분에서 보자면 사쿠라코쪽과 아이쪽이 켄이치로의 길을 따라갈수 있다 보네요...확실히...
    인과교류의 예술가..나오야에게 딱 맞는 말이네요.진짜로...혼자서도 예전의 재능을 보였을때처럼 빛날수있지만
    진짜로 빛나는 경우는 다른 사람들과 작업을 할때 또는 뭔가에 대한 강한 열망(켄이치로의 6부작)인거같네요.
  • 레티 2016/02/11 23:43 # 삭제 답글

    저는 뭔가 작품을 할때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좀 많이하는 편 입니다. (작가분들이 의도하는 바 일지도 모르겠지만요.) 그래서 이 작품에선 나오야가 되어서 작품을 진행했습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중도에 하차하고싶다 라는 생각은 그닥 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숲 안에서는 숲 밖을 보지 못하는 법 이라 그런지 저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보진 못했던것 같습니다. 살다보면 능동적으로 자신이 직접 선택하는 경우 보다는 수동적이게 되는 부분이 더 많은것 이기도 하죠. 때문에 그런지 주인공의 행동에 대해서는 그다지 의문을 품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주인공의 감정적인 부분에 더 많이 영향을 받았습니다.
    주인공의 상실, 작품에 대한 생각들 에 대해서 더 많이 영향을 받아서 이제 생각해 보면 케이의 죽음은 전에 깔아뒀던 복선을 전부 갈아엎는 경우이긴 하지만 주인공의 입장에서는 그저 너무나도 충격적인 사건이어서 그다지 많은 생각을 해 보지는 못했던 모양입니다. 좋은 글 많이 읽었고요 이것 저것 많은 생각을해볼 수 있었습니다. 좋은 글을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 하운나래 2016/02/12 20:21 #

    댓글 감사합니다!
    어떤 이야기에도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이 가능하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몰입해서 즐겁게 할 수 있습니다. 취향 상 저로선 감정 이입 자체는 하기 쉽지는 않았고 말씀하신대로 숲의 밖에서 주로 작품을 봤던 것 같군요. 결과적으로 즐겁게 즐긴 사람이 승리자가 아닐까 싶어요. ㅎㅎ
    작게나마 이 글이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지나가던사람 2016/03/09 04:19 # 삭제 답글

    상당히 비판적인 관점으로 글을 서술하신 것이 보이네요.
    개인적으로는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꽤 많습니다만
    본인이 그렇게 느끼신 거라면 나도 할 말이 없습니다.
    솔직히 열받는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만, 개인이 쓴 비판글에 왈과왈부한다는 거 자체가 사실 우습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냥 읽고 넘어가려 했습니다.


    하지만,

    위 본문에서 이야기한 글 중에

    ....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 작품은 객관적으로 ‘성공’이라고 해도 될 만큼 판매량에서도, 인지도에서도, 유저(대중)들의 평가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습니다. 그 이유는 앞서 언급한 작품 특유의 ‘분위기 조성’에 성공했다는 것, 스카지라는 작가의 이름값과 팬덤 이외에도 업계 전반과 다른 작품들 간의 상대적인 우위 등 여러 요인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

    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어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됐습니다.

    대중들이 분위기에 취하고 스카지라는 이름값에 취해서, 몇 되지도 않는 팬덤 때문에 이렇게 열광한다고 말씀하고 계신데, 저를 포함한 대중들은 그렇게 멍청하지 않습니다. 최소한 그 작품에 대해, 뭔가를 느꼈고 감동을 받았기 때문에 그 작품을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사랑했던 어머니 미즈나, 그리고 아버지였던 켄이치로, 그리고 친구 케이의 죽음을 딛고 일어선 나오야의 모습에 감동했습니다.
    그리고 작품을 낳는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깨달아 가는 나오야의 모습을 보고, 또한 감동했습니다. 여기서는 작품의 범주를 미술에 한정하고 있지만, 요즘 세상을 좀 살아보면서 느끼는 건데 인생이 하나의 작품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내 작품(인생)을 낳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된 작품이 이 작품이었습니다.

    최소한, 나는, 이 작품에 대해서 팬덤이나 분위기 따위에 넘어가서 이 작품을 최고의 작품이라 평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 평가는 제가 안았던 감동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대중들 역시 바보가 아닙니다. 그들 역시 다 개개인마다 감동을 하나둘씩 얻어갔기에 이 작품을 최고로 치고 있겠죠. 스카지라는 이름이 감동을 갖다바치지는 않습니다.

    지금 이 글로 비평을 하시는 하운나래님 역시 자신이 최고로 치는 작품이 몇개 쯤은 있겠죠. 그 작품들 중에는 님께서 느낀 감동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 내가 만약 '그 작품은 그냥 분위기에 팬덤에 작가이름을 팔아서 뜬 작품이다'라고 말한다면, 그 순간 나는 님에게 시비를 거는 게 됩니다. 아니라고 하실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최소한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님이 마음으로 느낀 감동을 내가 완전히 배제하고, 그 작품을 아무것도 아닌 작품으로 탈바꿈했기 때문이죠. 님께서는 그런 상황에서 아무렇지 않으실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지금 이 상황에서 그렇게 편한 마음을 느끼고 있지 않습니다. 제 감동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죠.


    지금 이 감상글은 그 밖에도 꽤 불편한 부분이 많으나, 다른 부분은 뭐 본인이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넘어가겠습니다. 인간은 다들 개인차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한 가지만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최소한 나는 이 사쿠라의시라는 작품에서 감동을 받았고, 이 작품이 '팬덤, 분위기, 스카지라는 이름'에 힘입어 뜬 작품이라는 평가는 상당히 불편하니 내려주셨으면 한다는 겁니다. 그 평가를 본 대중들은 어떤 생각을 할 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그 평가를 본 저는 바보가 된 느낌을 받습니다.



    그 외에도 할 말이 많이 있는데 글재주가 부족해서 다 쓰지를 못하겠군요.
  • 하운나래 2016/03/09 14:16 #

    댓글 감사합니다.
    몇 가지 코멘트하기 전에, <사쿠우타> 작중에서의 아카시라는 캐릭터의 대사를 따왔습니다.

    “너에게 있어선, 많은 사람들에게 인지되기 위한 작품인가?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만들기 위한 작품인가?”
    “우리들이 무엇을 위해 작품을 만드는가. 그것만 잃지 않으면 괜찮다. 거기에 새겨지는 이름이, 자신의 이름이 아닐지라도...”

    종장에선 아카시의 이 말의 참 뜻을 나오야가 깨닫게 되지요. 작품을 향한 자기 스스로의 신념과 마음을 잃지만 않는다면, 그 작품은 진정한 의미에서 영원히 자신의 것이 되는 것. 이것은 작품을 바라보는 ‘감상’ 또한 마찬가지죠. 타인의 평가가, 대중의 평가가 어떻든 간에 자신만의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감상과 감동이 있다면, 어떤 말에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상대방이 ‘진짜로’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다고 해도 말이죠.

    제가 쓴 포스팅의 일부 구문에서 열이 받으셨으면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동시에 제가 보잘 것 없는 제 이름을 걸고 ‘작품 해설’이라는 포스팅을 한 이유를 바로 짚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특히나 <사쿠우타>라는 작품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맹목적으로 만들기 쉽거든요. 으레 과거 여러 명작들이 그러했듯 말이죠. 때문에 이 작품의 ‘팬’ 입장에선 다소 불편할 수도 있는 치부들 위주로 드러낸 것이고요. 누구나가 이 게임이 허접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저 찬양만 해서는, 그저 좋다고만 해서는 작품을 온전히 바라봤다고 하긴 힘들지요. 정말로 이 작품을 좋아하신다면, 부족한 부분을, 그럴 가능성이 있는 부분 또한 수용해서 ‘다시’ 한 번 객관적으로 고찰하는 것이 좀 더 나은 감상으로 가는 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좋은 작품일수록 다양한 교류가 이뤄져나가며 더 나은 감상을 짊어진 작품이 되는 것이니까요. 단순하게 ‘그건 네 생각이고 개인차니까 열받지만 넘어갈게. 근데 나는 이게 정말로 화나. 그래서 넌 이걸 고쳐야 해’ 라는 태도는 쌍방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차라리 마음에 안 드신 부분이 있다면 코멘트로 지적을 해주셔서 함께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하는 게 저는 정답이라고 보거든요. 감상과 코멘트에 ‘감정’이 개입되기 시작하면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순 없다고 봅니다.

    다만 불편하다고 느끼셨던, 제가 본문에서 언급한 부분은 결코 틀렸다고 보지 않습니다. 에로게의 경력이 얼마나 되셨는지 전혀 가늠할 수는 없습니다만, 현재 에로게 시장에서 <사쿠우타>와 같은 게임은 매우 이질적이면서, 현재 형성된 상업적인 가이드라인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든’ 게임입니다. 만약 이 게임이 본래 나왔어야 할 10년 전, 그러니까 <사쿠우타>와 같은 게임들이 주옥같이 많았던 그 시절에 나왔다면, <스바히비>의 지원 없이도 이 게임이 상대적으로 지금과 같은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을 겁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똑같이 실력파 스태프들이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든’ 게임들이 난무했던 10년 전과는 지금은 여러 상황 자체가 다르다는 거죠. 여기서 제가 언급하는 ‘성공’은 작품성의 성취뿐만 아니라 대중들과 상업적인 성취까지 아우러서 이르는 겁니다. 만약 <사쿠우타>와 같은 게임이 무명 라이터의 신생 브랜드가 만들었다면 어땠을까요? 중도하차하지 않고 끝까지 플레이 한 유저가 지금보다는 결코 많지는 않을 것이고, 라이터의 특색에 대한 선행이해와 팬덤 자체가 없기 때문에 ‘결코’ 지금보다 더 나은 성취를 거두진 못했을 거란 말을 드리고 싶었던 겁니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왜 ‘스카지’라는 이름값, 팬덤과 분위기를 ‘나쁘게’ 받아들이시는지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이름값과 팬덤, 분위기는 이 작품의 고유의 특색이자 다른 작품과 궤를 달리하는 장점입니다. 저는 적어도 <사쿠우타>와 같이 특유의 분위기를 조성해서 유저들을 몰입시키는 게임을 거의 본적이 없습니다. 본문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분위기’를 전혀 ‘따위’로 생각하지 않아요. 이건 팬덤도 마찬가지고요. 그 라이터의 실력과 그 작품을 좋아하고 인정하기 때문에 팬덤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를 무시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설령 이것들을 무시한다고 하더라도, 작품 자체를 퇴색시키거나 감동을 느낀 감상자들의 감동을 억누르지 못합니다. 댓글을 달아주신 그 ‘일부분만’을 인용해서 바라보시니 그렇게 느끼실 수 있겠습니다만, 전체적이 글의 맥락 속에서는 자기 반박을 위한 일부에 불과해요. 본문을 차근차근 다시 한 번 읽어주셨으면 좋겠네요. 무엇보다 언급하신 ‘대중들이 분위기에 취하고 스카지라는 이름값에 취해서, 몇 되지도 않는 팬덤 때문에 이렇게 열광한다고 말씀하고 계신데’ 이 부분은 100% 오해하고 계시는 겁니다. 오히려 그 뒤의 ‘최소한 그 작품에 대해, 뭔가를 느꼈고 감동을 받았기 때문에 그 작품을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입니다.’를 저는 본문에서 말씀드리고 싶은 거거든요. 작품 자체로만 본다면 고독한 ‘외침’이 되었을 수 있는데, (이러한 에로게 업계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공교롭게도 주관적이 아닌,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성공’이라고 해도 될 만큼 판매량, 인지도, 유저들의 평가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언급한 분위기, 팬덤, 이름값과 더불어 유저들이 작품 내부에서 감동과 가치를 발견했기 때문이죠. 전 이것을 결코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객관적으로 들춰내고자 했던 겁니다. 제가 진짜 말하고 싶은 부분이 바로 이것인데 너무 성급하게 글을 읽고 판단하시지 않으셨나 싶네요.. 유저들에게 어찌되었든 먹혔다. 이것만으로도 <사쿠우타>는 성공했다고 보니까요. 최근의 다른 게임들이 하지 못한 것을 말이죠.

    혹시라도 댓글에서도 오해하실까봐 글이 매우 늘어지고 길어졌습니다만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혹여나 제가 이 작품을 ‘정말로’ 이름값에 기댄 허접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면 작년 게임들 중에서도 최고 평점을 매기진 않았을 겁니다. 전 이 게임을 하면서 2~3번 울었는데, 한 번은 말씀하신 미즈나와 켄이치로의 이야기. 한 번은 나오야와 켄이치로의 마지막 장면. 하지만 제가 받은 감동은 감동이고, 작품은 작품입니다. 정말로 작품에 대해 열정이 있고 좋아하기 때문에 몇 시간에 걸쳐서 작품을 파헤치고 소위 해설 ‘따위’를 하고 있는 겁니다. 정말로 팬덤, 분위기, 스카지라는 이름에 힘입어서, 단순히 이것만으로 뜬 게임이라면 이렇게까지 긴, 힘겨운 포스팅을 하지 않습니다. 상식적으로 말이죠.

    포스팅을 통해서 오해를 하시고 또 불쾌하게 여겼다면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제 의도가 거기에 있지 않음을 다시 한 번 읽어주시고 음미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럼에도 마음에 들지 않은 게 아닌,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다시 코멘트를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지나가던사람 2016/03/09 15:52 # 삭제 답글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본문에서 하운나래님이 말씀하신 것 처럼

    ....
    그 이유는 앞서 언급한 작품 특유의 ‘분위기 조성’에 성공했다는 것, 스카지라는 작가의 이름값과 팬덤 이외에도 업계 전반과 다른 작품들 간의 상대적인 우위
    ....

    이런 게 성공의 원인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이런 게 성공에 일조했을지는 모르겠는데, 주 원인이 아니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은 겁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냐면
    저런 부분보다도 성공의 원인 1순위로 꼽아야 하는 것은
    사쿠라의 시가 대중에게 준 감동요소가 1순위가 되어야 한다는 거죠. 그리고 그 부분을 먼저 드러내어야 한다는 겁니다. 꼭 다뤄야 할 부분을 몇가지 짚어 보았다고 하셨는데, 정작 중요한 부분, 사쿠라의 시가 대중에게 선사한 감동에 대한 분석이 전혀 없습니다. 본문에서는 그런 부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자세히 보지 않아서 일까요? 저는 님이 이 작품에서 받은 감동이 있다는 것을 위 비평글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본문에서는 그냥 스바히비의 덕을 좀 보고, 시류를 잘 타서, 스카지 이름을 등에 업고 특유의 분위기를 통해 성공한 에로게다 라고 표현되고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하고 싶으신 말이 그게 아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 본문에서 사쿠라의 시가 대중에게 준 감동요소에 대한 설명이 있는지 도저히 찾지를 못하겠습니다. 분석글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지 않아서라고 말씀하고 계신데, 나름대로 자세히 읽어보았으나 그런 부분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하아 글 쓰다 보니 내 자신이 좀 웃기네요. 이런 거에 정색할 필요가 없는데...
    내가 이 작품에 맹목적이 되어 있던 건가요?
    과연 그랬던가?
    분명 내자신은 지금 어느정도 냉정한 편이라 생각하고 있는데...
  • 하운나래 2016/03/09 17:15 #

    결국엔 댓글 달아주신 분께서 스스로 열받아 계셔서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하고 계신 부분이,

    왜 스스로 작품의 성공의 원인을 따로 분리하고 계시냐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왜 인정하지 못하시느냐는 겁니다. 제가 글에서 성공의 원인의 우위를 나눠 판단했나요? 그 작품이 대중에게 인정받고 성공한 '그 자체'로도 말씀하신 '감동요소'를 인정하고 있는 건데 말인데요. 외적 배경 상관없이 말이죠. 언제나 작품 자체가 무조건 주 원인이 되는 것이지, 다른 외적 배경은 무조건 '부차적인 것'입니다. 이건 감상의 기본이에요. 구태여 긴 문장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이미 ‘감동적인 작품인 것을’ 모두가 알고 있으니까요. ...이걸 왈가왈부하고 싶다는 게 아닌데, 너무 여기에 집착하시는 것 같습니다. 정말로 제가 '틀린' 말을 하고 있다면, 다른 분들이 먼저 지적해주셨을 겁니다. 그저 간과할 수 있는 요소기 때문에 글의 전반을 할애한 겁니다.

    무엇보다 전 제 보잘 것 없는 이름값을 걸고 '타인이 쉽게 보지 못하는 부분' 중에서 꼭 짚어야 하는 부분을 골라서 비평했습니다. 그리고 일부러 기존의 '단평'이 아닌, 감상이 아닌 '작품 해설'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전 이 포스팅의 목적이 작품에 대한 '감동'을 앞 다투어 얘기하는 데에 있지 않아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맹목적이기 쉬운 작품의 팬들을 자극시키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야만 작품에 대해 더 깊고 올바르게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거든요. (이와 반대로 <코이카케>의 경우에는 많은 '단점'보다는 '강점'을 부각해서 작품 해설을 했죠. 왜냐면 <사쿠우타>와는 달리 대중적으로 평이 좋지 않거든요. 대중의 평을 의식하지 않는 게 정답이지만, 그렇다고 또 아예 무시해서는 안 되니까요.) 모두가 '당연히' 아는, 이 작품의 감동을 새삼스럽게 적는 행위가 물론 중요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실제로 적으려 했습니다만) 당연한 부분은 글이 길어지기 때문에 되도록 생략했고, 또 글의 전체적인 맥락과 어울리지 않아서 과감하게 지웠습니다. 통일성을 위한 이 선택은 제 글의 스타일이자 제 개인의 판단이기 때문에 이 점을 지적하신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이 부분은 그냥 '맘에 안 들어'하고 넘어가시면 되는 겁니다.
  • 지나가던사람 2016/03/09 16:23 # 삭제 답글

    쓰는 김에 한가지 더 쓰겠습니다.

    본 비평글에서

    ....
    그 현실에서의 파멸을 미(美)로써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는 것. 이것이 <유미주의>의 본질이며 <사쿠우타>가 취하고 있는 태도입니다.
    ....


    라는 부분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습니다.

    사쿠라의 시에서는 미술로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하고 있지 않다 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미사쿠라린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5장 막바지에 그런 작품이 나왔겠죠. 하지만 스카지의 뜻을 대변하고 있는 나오야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죠. 나오야는 미술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만약 스카지의 이 작품이 현실에서의 파멸을 미로서 극복할 수 있다 라는 사상을 취하고 있다면,
    이 작품의 이야기 흐름이 이런식으로 흘러가지 않을 것입니다. 유미주의적 관점을 취했다면, 나오야는 케이가 죽었을 때, 그 슬픔을 작품으로 승화시켰겠죠. 하지만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나오야는 케이가 죽은 현실에서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물론 아이 루트에서는 나오야가 아이의 품으로 도망친 적은 있습니다만, 케이가 죽은 현실을 미술을 통해 극복하려는 흐름은 없었던 것으로 압니다. 그래서, 전 본 비평글에서 사쿠라의시가 유미주의적 관점을 취하고 있다고 말하고 계신 그 의견에는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 하운나래 2016/03/09 17:17 #

    다른 분께서도 <유미주의>가 무엇이고, 또 작품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를 좀 더 명확하게 설명해줬으면 좋겠다고 댓글로 지적해주신 부분이라 더 세세하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일단 ‘미술’로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유미주의>의 본질은 아닙니다. 더더욱 문예에서 사용하는 유미주의는요. 린의 <유미론>하곤 살짝 다릅니다. 방향성도 다르고...

    그리고 말씀하신 작품 내부에서, 스카지의 뜻의 대변 = 나오야는 ‘절대로’ 아닙니다. 그의 언행이 스카지 라이터를 ‘일부분’ 대변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창작자의 작품 ‘전체적인’ 것으로서 라이터의 뜻을 판단해야합니다. 그렇기에 <유미주의>는 이 작품 ‘전체적인’ 전개와 구성에서 나타나는 겁니다. 나오야의 행동뿐만 아니라 다른 캐릭터의 행동들을 덩달아 포함해서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유미주의>라는 것이죠. 그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에 목적이 있고 그 자체가 아름다움(미)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뭣보다 본문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게임은 특정 사상(유미주의)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 절대 아닙니다. 어느 정도 <유미주의>적 성향과 태도를 지녔다고 하는 것이지 반드시 100% 유미주의에 따라야 한다는 게 아니거든요. 100% 유미주의를 모두 따르고 있으면 그건 오히려 더 안 좋습니다...더욱이 이야기물로서는 말이죠.

    마지막으로 예를 들어 주신 부분만 짚어보자면, 케이가 죽은 현실에서 도피했다? 안 했다? 이 부분은 좀 더 생각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어쨌건 종장 초반까지만 해도 기간제 미술 강사로서 도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이 도피는 나오야의 ‘정신적 상실(케이)’을 잘 드러내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 상실의 슬픔을 곧바로 미술 작품으로 드러내지 않았고(이 부분은 인간적인 좌절을 그리는 게 더 좋았죠), 종장 후반의 새 제자들과 함께 만들어낸 새로운 <벚꽃들의 발자국>으로써 극복하고 승화합니다. 이 때 비로소 정신적 상실의 극복뿐만 아니라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미술(아름다움;미)의 참된 의미를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이고요. <인과교류의 예술가>식 방법으로 말이죠. 이런 식으로 풀어나간 것은 <사쿠우타>의 백미라고 생각합니다.
  • 지나가던사람 2016/03/09 18:20 # 삭제 답글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사쿠라의시가 유미주의적인 표현방법으로 글을 썼다는 것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다시 언급하자면,

    - 현실에서의 파멸을 미로서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사쿠우타가 취하고 있는 태도이다

    이 말씀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는 것입니다.
    케이가 죽고, 무너져가면서 아이에게 울부짖던 나오야는 트루루트에서 스스로 일어섰습니다. 미로서 파멸을 극복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비틀거리면서 일어선, 그런 나오야를 아이가 도왔죠. 6장 막바지에서도 사실 나오야의 모습은 불안해 보입니다. 그런 나오야를 지탱하는 것은 미술작품이 아닙니다. 나오야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그들과 나오야가 새로이 만들어낸 <벛꽃들의 발자국>은 나오야가 좌절을 극복한 후 피어난 예술적인 결과이지, 그 작품이 나오야의 좌절을 극복하게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나오야의 좌절을 극복하게 한 것은 아이와 나오야 주변에 있는 이들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 하운나래 2016/03/09 18:34 #

    '현실에서의 파멸을 미로서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유미주의가 흔히 취하는 태도이고, 이런 유미주의적 태도를 <사쿠우타>가 취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자꾸만 사소한 것을 물고 늘어지시니 제가 더 자세하게 설명하기도 좀 그렇고...

    그리고 오해하신 것이 있는데 위에서의 '미(美)'는 '미술작품'만을 지칭하지 않습니다. 미는 의미 그대로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 아름다움은 미술작품을 포함한, 그 행위의 과정과 결과물, 주체와 객체 모두를 아우르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그리는 그것 자체에서 아름다움을 유저들에게 선사하는 것. 그 과정 자체 모두가 '미'라는 의미에 함축되어 있는 것입니다. 유미주의의 본질은 바로 그것이죠. 단지 이를 극대화하기 위해 '현실에서의 파멸'을 그리며 이를 미를 대변하는 미술작품들로 극복하는 태도를 주로 취한다는 것이지, '무조건' 미술작품에 대응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미술'로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유미주의>의 본질이 아니라고 말한 건데..설명이 부족했군요 ㅜ)

    마지막으로, 나오야는 언급했던 것처럼 <인과교류의 예술가>입니다. '사람'과 함께 했을 때 그의 진면목의 예술=미가 세상에 빛을 발하는 것이지요. 아이와 나오야 주변에 있는 이들의 힘이 아름다운 예술로써, 이는 결과적으로 <벚꽃들의 발자국>으로 상징화되는 것입니다. 미(美)가 단순히 '미술작품' 하나 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제 설명 부족인 부분이기 때문에 혼란시켜 드려서 죄송합니다. (__)
  • 청소부 2016/05/19 21:54 # 삭제 답글

    결국 윈탭을 사서 하고있는데요
    이거 공략을 찾아봐도 안나오던데 선택지는 아무거나 클릭하면되나요?
    일직선 루트에서 개별루트로 분기하진 않나요?
  • 하운나래 2016/05/20 02:57 #

    정해진 히로인의 엔딩 이후에 본격적인 다음 장이 진행되는 방식입니다.
    일직선 루트라기보다는, 공략 히로인의 순서가 정해져있다고 보시면 돼요.

    자세한 공략은
    http://seiya-saiga.com/game/makura-soft/sakuuta.html
    이 사이트에서 참고하세요!
  • 뒤늦게올클 2016/07/05 21:51 # 삭제 답글

    긴 비평글 잘 읽어봤습니다. 저같은 경우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을 꼽으라면,
    프롤로그? 였나? 1장이였나? 하교하던 주인공이 독서하는 린과 대화하는 부분이였는데,,,
    이때 린이 행복한 왕자 이야기를 하면서 마지막에 "Life imitates Art." 란 말을 하죠.

    한줄만 나왔는데, 원문은 "Life imitates Art far more than Art imitates Life.”
    '인생은 예술이 인생을 모방하는 것 이상으로 예술을 모방한다. '

    의외로 이 한줄을 스카지가 이번작 전체를 관통하는 테마로 잡은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 하운나래 2016/07/13 14:27 #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뒤늦게 잡아도, 사람들의 평과는 상관없이 아름다운 작품이지요. 말씀하신대로 예술과 인생이 맞닿아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멋진 비유군요!
  • 미베른 2016/12/22 19:05 # 삭제 답글

    작년 에로게 부문에서 사쿠라의시가 1위를 독식하는것을
    보고
    언젠가 한번 해봐야지한게 저번주부터 시작해
    오늘 그 종막을 내리게 되었네요.

    도중에 지루하기도 했지만; 저는 미연시 올클후에
    다른분들의 리뷰나 작품 전체적인 견해를 보고
    깨달음 비슷한걸 얻었으면 해서
    마지막까지 달릴수있었는데

    다른분들은 어떤 심정을 갖고 플레이에 임했을지
    궁금합니다.

    하운나래님 글을 읽고 제가 공감갔던 구문은
    1.유저들의 눈앞에
    보여줘야 할 광경을 묘사하는데 다분히 부족함이 있었던것
    (스이와의 자웅 겨루기)

    2.히로인들의 언행에 현실감이 결여되어 있는 부분
    예컨대 짜증날정도로 잦은 섹드립이나
    가히 작품내에서 범접할수없는 존재로 묘사된 후반기의
    미사쿠라린 정도 있었네요

    3.서문에서부터 계속해서 강조하시는 인과교류적 예술가라는 표현/ 작품내에서 벚꽃의 예술가라고 불리는 나오야보다
    그의 모습을 한마디로 표현하는데는 전자의것이 적합하다고
    느끼는바입니다

    흠 ㅋㅋ따로 제가 이겜을 하고나서 느낀건
    반드시 거쳐가야하는
    토리타니루트와
    미사쿠라린 그리고 히카와루트 셋이 너무나도 별개로 논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떡밥 해제를 감안하더라도 말이죠

    그런관점에서 봤을때 아무리 이게임이 최종적으로 트루루트에 수렴한다고 한들
    무엇을 말하고자하는지 머리가 혼란스러웠습니다.

    나오야라는 히어로를 위한 장대한 비극 서사시였나
    본문그대로 미라클자체를 담기위한 판타지일까

    어느쪽도 아니라면
    천년벚꽃 그것의 전승이 수많은 사람들의 구상을 담은것처럼

    사쿠라의시가 오로지
    행복한왕자의 전말을 닮은
    이야기를 장식하는것이 목적이였을까요

    암튼 좋은글 감사합니다 배우고갑니다
  • 하운나래 2016/12/22 22:03 #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부분 전반적으로 공감이 됩니다. 참고로 이 게임이 진정으로 무엇을 보여주고자 했는지는 스카지 본인만이 알겠죠. 후속작이 존재하는 게임이므로 좀 더 지켜봐도 될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엔 이야기 내부에도 결함이 군데군데 보이며, 말씀하신 게임 구조상의 문제(히로인 공략) 등이 있지만, 그럼에도 에로게에서 좀처럼 시도하기 어려운 소재와 테마, 그리고 장대한 볼륨의 이야기로 창작자 나름대로의 열의를 쏟았다는 것을 유저가 느낄 수 있었기에 좋은 평을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롯테 2017/01/15 11:14 # 삭제 답글

    제가 본 비평글중 가장 깔끔하고 주관적인 견해가 잘 나타나있다 생각되는 글입니다. 사쿠라의 시를 매우 무겁고 진지하게 플레이했기 때문에 플레이도중 여러 블로그에서 댓글,비평,리뷰등을 보면서 이게임이 말하자 하고자 하는 주제가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플레이하였고, 그러한 플레이 중에 본 하운나래님의 비평이 저에게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이 게임을 해석하는데 굉장히 도움이 됬습니다.

    일본에서 벚꽃은 굉장히 중요한 표현매체입니다. 대표적으로 시작과 생명을 나타내죠 많은 미디어에서 이러한 관점으로 표현되기도 하고요. 사쿠라의 시에서도 벚꽃은 삶과 죽음을 뜻하는 매개체이고, 쿠사나기 나오야라는 인물은 앵의 예술가=빛의 예술가=인과교류의 예술가로 작중에서 표현되면서 이러한 사상을 잘 나타냅니다.

    스카지씨가 이 게임에서 정확히 무엇을 의도하고 게임을 만든지는 모르지만. 저는 이게임을 인생론과 예술론을 표현한 게임이라 생각합니다. 저 두관점을 이게임의 주제라고 파악한다면 가장 중요하다 볼 수있는 인물들은 아카시, 린, 켄이치로, 나오야, 케이, 카나등이라 생각합니다.
    이 인물들의 공통점은 저 두가지 관점에서 자신만의 주관이있고, 나오야와 대립하거나 뜻을 같이하거나 하면서 이 게임을 끌어가는 인물들이라는 점입니다.

    첫번째로 유미주의와 미사쿠라 린에 관한 비평을 해보려합니다.

    하운나래님의 설명대로 유미주의는 아름다움 그자체를 표현하는 사상이라 할수있지요.
    근데 이 게임 내에서의 유미주의를 나오야가 모든 일을 겪어가면서 느끼는 삶의,예술의 본질적 아름다움이라는 관대한 해석으로 보지않고 저는 단순히 미사쿠라 린의 절대적인 예술의 사상이라 생각해보니 많은 부분에서 납득이 가게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일단 저는 게임의 해석이 편할 수 있게 게임내의 유미주의=린의 사상이라 생각합니다.
    저렇게 본다면 유미주의를 대변하는 인물은 린의 되고, 그에 대립하는 존재는 나오야가 됩니다. 작중에서 나오야의 사상(인과교류의 예술)등을 긍정적으로 표현하고, 린의 유미주의적 관점을 비판한듯한 부분은 생각해보면 자주 찾아낼수가 있었습니다.

    일단 백기신사와 전설에 관한 예가 있는데, 단순히 비극적인 전설이고 시즈쿠와 나츠메가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쓰인 이야기로도 볼 수 있지만, 린이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신의 구현화의 능력을 써서 천년벚꽃을 피웠을때의 결말도 비극적인걸로 보아 절대적인 린의 예술은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없는 예술이고, 인과관계의 오류를 낳았다고도 볼 수 있죠. 이 외에도 스이와의 미술적 대결에서도 카나가 비평했듯이 스이의 절대적인 미는 유미주의적 가치로써는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가졌지만 나오야의 점묘화와 혼합된 그림이 작품으로써, 사람이 보는 예술로써는 더 낫다고 표현했지요. 이는 카나의 능동적인 자신만의 예술론을 볼 수있었던 부분이기도 하지만. 남에게 보여주려 예술을 하는게 아닌, 관객이 필요없는 예술인 린과 스이의 예술을 부정하는 발언이라고도 생각합니다. 린의 행동이나 생각에서도 그런 부분을 볼 수있습니다. 린은 자신에겐 관객이 필요없다 하였지만, 자신의 그림을 보고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시즈쿠를 감동시키기 위해 그림을 그리면서 행복해 했고, (남을 위해) 그림을 그린 린과 시즈쿠는 둘다 행복할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5장 이후의 기억과 능력을 찾은 린은 자신의 옛 신념에 따라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되었고, 이는 주인공의 마음을 돌린 케이의 그림과는 달리 나오야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고, 5장 마지막 부분에 이야기들을 보아 린도 단순히 나오야 옆에 있고싶다는 감정을 내비치기도 했고 자신의 사상도 나오야를 되찾기 위해, 케이의 계승을 위해, 과거 자신의 행동에 속죄를 위해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무어전에 관해서도 유미주의를 비판하는 부분을 볼 수 있었는데. 이 게임이 린의 유미주의적 관점을 긍정적으로 표현하려한 게임이라면 왜 예술적으로 돈이 되는,가치가 큰 미에 관해서만 다루는 프리드만이 켄이치로와 나오야의 미에 집착을 하고 린도 나오야의 예술에 집착하는 부분이 자주 나올까요.

    이 게임에서 가장 비판하는 점이 되고 이질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존재는 린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론적, 인생론적 가치관을 다루는 이 게임에서 주인공인 나오야와 가장 사상적으로 대립하는 인물이면서도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에 대한 설명이 터무니도 없이 부족하고, 불친절한 인물이기도 하며
    절대적인 미의 가치관을 추구하고, 인과교류와는 동떨어진 행적을 보이는 인물이면서도 어렸을적 행적은 누구보다 개인적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했다는 점에서 비판 할 수밖에 없고요.
    주인공의 라이벌과 같은 캐릭터인데 히로인의 위치에 있으니 이해가 안되는 캐릭터가 나온거 같습니다.

    히로인들도 비판할점이 많은데, 그녀들은 나오야에게 구원을받은 인물이기도 하며 그의 그림에 구원을 받은 인물들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그의 그림에 집착을 하고 그가 다시 그림을 그리기 바라죠. 근데 그게 정말 나오야를 위한 점인지는 잘 이해가 되지않습니다.
    나오야는 마코토나 리나의 루트에서 너희들을 위해 그림을 그린다고 표현했는데. 이는 나오야 자신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것이 아니며 그가 진정 행복하게 그림을 그릴수 없다는것을 뜻한다고 봅니다. 개별루트는 그래서 배드엔딩이라 생각합니다.
    5장에서 그가 그림을 다시 시작했을때에도 그는 자신을 라이벌로 생각해주고, 자신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 케이를 위해 그림을 다시 그리는데, 히로인들이 그가 그림을 다시 그리는데 도움이 됬다고는 생각이 안되네요 방해가 됬으면 몰라도, 또한 린과 마코토는 자신들의 사상을 강요하면서 나오야에게 그림을 그리라고 하는것과 같은데.사쿠라코와 대비하면 정말 극명합니다. 사쿠라코는 그의 그림보단 나오야 자체에 관심이 있고, 아이와 함께 정신적으로 나오야를 지지해주면서 나오야가 자신을 위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도와주죠. 이러한 부분에서 사쿠라코나 아이 두명중에서 진히로인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6장의 인물들이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나오야에게 도움이 되는 인물들인게 과거의 인물들은 나오야를 천재로 규명하고 평가하는데 6장의 인물들은 단순히 사람 그 자체로 그를 받아주니까 그러한 부분에서 감동을 느낄수 있었고, 차이가 나왔다고 볼 수도 있겠죠.

    능동적 인물들의 비중에도 문제가있는데, 작중에서 나오야와 사상이 비슷하거나 나오야에게 도움을 주는 능동적 인물들은 비중이 너무 적습니다. 아카시,켄이치로,케이등으로 볼수있는데 린이나 카나처럼 예술론적 관점에서 대립하는 인물들은 많은 반면에 케이와 켄이치로등은 사망, 아카시는 등장하지 않으니까 그에게 예술론적으로 도움을 줄만한 인물은 전무하다고 볼수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은 말할필요도 없는 명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제가 에로게를 하는 관점과도 연관이 있는데. 하운나래 님은 에로게는 단순한 게임이지. 아무리 철학적이여도 문예가 되지못한다고 평하여서 에로게란 매체에 비해 너무 과분한 소재를 썼다고 평하셨지만, 저는 그래서 더욱더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에로게가 라이트노벨,소설,애니,영화보다 가장 장점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일까요? 저는 몰입도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에로게를 하는 이유는 다른 어느 매체보다 주인공을 나와 이입해서 1인칭으로 플레이하기 가장 쉽기 때문에, 다른 인생을 살아본 것 같은 느낌때문에 하는데 캐러게는 이러한 부분에서 이챠러브등으로 만족을 시키지만, 이 게임처럼 진지하게 고뇌하면서 감동을 느낄수있는 게임이 있는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에로게를 가볍던 무겁던 플레이하는 것은 플레이어 마음이지만, 진지하게 플레이하는 저로써는 굉장히 만족할만한 게임이라 생각합니다.

    위에서 비판한것처럼 잘못된 설정들도 많았지만, 올랭피아라는 그림, 스이라는 캐릭터의 설정, 1~3장의 서술트릭등은 정말 매력적이었고, 다른 에로게에서는 찾기 어려운 방식이었고 예술론에 대해서 고뇌하고 계속해서 변화하는 나오야는 유미주의 그 자체를 표현했다 생각합니다.

    6장의 나오야가 과거의 자신과 비교해서 아카시가 말했던 작품의 진정한 본질을, 린과의 대화에서 부정했던 약한 미의 신등을 자신을 위한 작품을 완성하면서 깨닫는 장면은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라 생각되고, 케이가 죽었을때의 아이와 나오야의 대화, 벚꽃들의 발자국을 다시 완성시키고 아이와의 대화는 나오야가 얼마나 변화했는지 볼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아이에게 의지하면서 혼자가 아닌, 두명이서 같이 걸으면서 맞는 엔딩도 인상적이었고.
    케이의 죽음에 관해서는 연계성이 좋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것을 천천히 극복해가는 트루엔딩의 나오야의 모습은 너무나도 감동적이었습니다.

    나오야의 최고의 순간은 언제쯤 맞이할 수 있을까요
  • 하운나래 2017/01/15 21:53 #

    양질의 댓글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포스팅이 아무래도 비판적인 시점에서 쓰인 탓에 작품 내부의 것들을 온전히 캐치하지 못한 부분이 많은데, 좋은 보충이 된 것 같습니다.

    저도 이 게임, <사쿠라의 시>는 특별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전작인 <스바히비>도 그렇습니다만 '스카지'라는 창작자는 '에로게'를 트렌드와 시류와는 상관 없이, 자신이 만들고 싶은 대로 타협없이 정성을 들여 만들었고, 이것이 곧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것'을 최대한 보여주려는 작품 자체의 완결성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시대를 불문하고 플레이하는 유저들에게 감동과 울림을 줄 수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비록 그 방법이 일부 서툴기도, 세련되지 못하기도, 또 지나치게 사상 중심적이고 편의적이기도 하지만 그런 한계를 감싸안아도 될 정도로 유저들이 납득할 수 있는 성취를 게임 내부에서 거두고 있는 점은 이 게임과 코드가 맞는 유저들에겐 명작이 될 수 있는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전히 게임은 '사상을 담는 그릇'은 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하나의 '이야기'란 사건성에 기초해야 한다고 봅니다. 다만 이 게임은 군데군데 사건성보단 사상에 치우지기도 하고 때때로 스카지의 적나라한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느낌도 들긴 합니다만, 이 또한 넓은 의미에서 에로게의 다양성과 가능성을 넓히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에 1년 전 글을 쓴 시점의 제 생각과는 달리, 지금은 다소나마 더 유연한 쪽으로 개선되어 말씀하신 것처럼 이것 또한 에로게의 일부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스카지가 올해 안에 후속작인 <사쿠라의 각>을 완성시키고 싶다고 하니까...내년에는 그 순간을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싶군요(...)
  • 물안개 2021/12/21 01:49 # 삭제 답글

    어쩌다 우연히 들렸는데 좋은 글들이 많네요. 작품 해설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이 게임을 플레이 하면서 여러 가지 찾아보고, 느낀 점도 많았는데, 덕분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어 좋았습니다. 제가 이 게임을 클리어하고 나서 얼마 뒤 후속작인 <사쿠라의 각>의 체험판이 공개된 걸로 알고 있는데 혹시 해보셨는지요?
댓글 입력 영역


트위터 위젯

애니편성표2

통계 위젯 (블랙)

38
49
494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