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과 노을의 안식처


토리노라인トリノライン (minori, 2017) 단평 미소녀 게임 단평


* 아래 사용된 그래픽의 저작권은 ⓒminori에 있습니다.



* 게임명: トリノライン (토리노라인)
* 장르: 인터렉티브 노블
* 규격: 풀 프라이스 (7,800엔)
* 제작사 및 발매일: minori (2017.03.31)
* 원화: きのこのみ, 柚子奈ひよ, 中田瑠美, sataりすく, 水野早桜
* 시나리오: 8, 御厨みくり, 花見田ひかる, 鋏鷺

- 분류: 시나리오/스토리 중심 시리어스 게임
- 핵심 키워드: 안드로이드, 로봇, 미노리, 3인 히로인, 스토리게
- 참고: <소레요리노 전주시(2015)> 단평
         <죄의 빛 랑데부(2016)> 단평



 1.‘미노리다움’의 시작점을 재조명

<토리노라인>이 가지고 온 테마인 ‘안드로이드’는 이제 픽션에서는 물론 에로게에서도 퍽 흔해진 소재입니다만, minori에게 있어선 어쩌면 처음 시도되는 본격 SF 장르이기도 했기 때문에 이 작품의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땐 퍽 놀라기도 했었습니다. 필자가 생각하는 minori의 개성이자 장점은 ‘사람’을 다루는 것이었고 기본적으로는 이쪽 부류에서의 상상력을 조립하는 능력을 제대로 접하진 못했으니까요. 그래서 불안보다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크기도 했었고요.

하지만 역시라면 역시나. 소재는 사람과 거리가 먼 안드로이드를 골라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전개인 안드로이드와 인간 사이의 갈등이나 대립, 혹은 안드로이드 그 자체를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것이 아닌 minori가 결국 말하고자, 보여주고자 하는 것의 중심엔 역시 ‘사람’이 있었습니다. 다만 기존과 차별되는 점은 그동안 일상에서, 혹은 기적의 요소를 가진 일상적인 판타지에서 보여줬던 휴머니즘과는 살짝 다른, ‘인간/사람’과 ‘영혼(마음/인간성)’에 대한 근본적이며 철학적인 질답을 내놓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죠. 새롭게 도전하는 테마에서 보여주는 그들의 원시적이며 처음으로 돌아가는 해답. 어찌보면 과거와 현재 줄곧 일관되게 유지되온 ‘미노리다움’을 <여름 하늘의 페르세우스(2012)> 이후의 ‘新 미노리’에서 가장 잘 체감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되는 작품이지 싶군요. 때문에 작품을 끝내고 남는 것은 너무 뻔한 것이기도 합니다. 시로네 루트의 다소 충격적인 결말의 방식도 결국 뻔한 이 메시지를 보여주기 위함이니까요.


 2. 한 편의 영화, 상실된 일상

러닝타임으로 치자면 짧게는 1시간 반, 길게는 2시간짜리 영화와도 같은 게임. 비단 이 작품에서만 그런 것이 아닌, ‘신 미노리’에서 가장 짙게 드러나있는 개성이기도 합니다. 캐릭터 게임 면에서 보면 단점으로 작용되기 쉽상입니다만 한 편의 작품을 영화마냥 몰입해서 즐기기엔 minori가 취하는 구성과 전개 방식은 최적화를 어느 정도 거친 성숙된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물론 텍스트 볼륨 자체는 크지 않아서 여타 메이커의 미들 프라이스 볼륨인 점은 한계점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종래의 캐릭터 게임과는 다른 접근법을 취해야 하는 바, 일상 속에서 보여지는 사람(캐릭터)들의 조형과 조립에 특화된 그들에게 있어, 상대적으로 일상의 모습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지금의 게임 디자인은 스스로의 강점에 족쇄가 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 속에서 <소레요리노 전주시>가 안팎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작품의 초점이 캐릭터(히로인) 자체와 그 일상을 중심으로 되어 있었고, 따라서 이들의 장점이 자연스럽게 조명될 수 있었던 것과 동시에 minori 특유의 연출이 하이라이트 역할을 톡톡히 해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굳이 이번 <토리노라인>에서 이 부분을 새삼스럽게 언급하는 이유는 이 작품을 통해 보내는 minori다움을 느낄 수는 있었지만, 완성된 하나의 작품으로 따졌을 땐 이 작품 속에서 유저가 경험할 수 있는 ‘인간다움’ 혹은 그 ‘일상’, ‘삶’이 상당히 간소화되어 있어 주제 의식과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뒷받침해주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혹자의 명언이 설득력을 얻게 되는 것은 그 혹자가 그 명언에 걸맞는 행위를 했거나 업적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이 정말로 인간의 가치와 정당성을 부르짖기 위해선 적어도 내세울 수 있는 인물 혹은 상황을 유저들이 납득 가능한 수준에서 제시해야 함은 가장 단순한 이치 중 하나지요. 이 작품이 이를 충실히 지키고 있느냐에 대한 물음에는 어쩔 수 없는 물음표가 남습니다. 때문에 중후반부 사족이 있는 황당한 전개와 더불어 히로인 중 가장 마지막에 플레이하게끔 되어 있는 사라 루트 & 엔딩에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것 또한 수용자인 플레이어의 경향성에 기대는 부분보다, 먼저 작품에서 유저들이 논리적&감성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느낌표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세계관이나 인물 설정 등의 1차원적인 문제는 아닙니다. 반은 짧은 ‘러닝 타임’의 문제고, 나머지 반은 때문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일상의 상실’에 있는 것이며 기본적으로 minori가 이와 같은 게임 디자인을 고수한다면 앞으로도 계속 따라올 한계점이 될 것입니다. 다만 이 작품은 아주 오랜만에, 그리고 신 미노리 체제에서 처음 시도되는 팬디스크가 붙는 게임이니만큼 본편에서 부족한 것들을 채워줄 수 있으리라 기대해봅니다.


 3. Where is the ghost?

!!내용 누설 주의!!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 Ghost in the shell(1995)>의 서브 타이틀, ‘Ghost in the shell’은 퍽 많은 것을 담고 있는 문구입니다. 인공지능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전, 즉 단순한 연산처리 장치에 불과했던 기계에 영혼(인간성, 마음)이 깃든다는 상상은 거의 망상 수준의 것이었고 위 문구의 모토가 된 ‘Ghost in the machine’은 따라서 기계엔 영혼이 깃들 수 없다는 것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심신일원론’에 대해 상식적, 심리적 그리고 과학적으로도 의문을 본격적으로 제기하게 된 시점이 바로 ‘인공지능’과 ‘특이점’ 등 과학 기술의 진보와 안드로이드의 가능성이 가시화되게 된 때인데요. 우리는 몸과 마음(영혼)이 하나이냐, 별개의 것이냐에 대해서 근거 있는 답을 내리기는 어려우며 여전히 논란 거리가 되어오고 있습니다만, 기계와 안드로이드에 대한 상상력이 구체화&가시화되면서 몸과 마음을 나뉠 수 있는 ‘파트part’별로 보게 되고 따라서 종래에는 막연했던 생각인 ‘영혼(마음)’이 깃든 곳은 어디며 그것이 무엇이냐에 대한 철학적 물음에도 자연스레 접근하게 됩니다. 앞서 언급한 영화 또한 이 점이 핵심이기도 하고요. SF와 판타지가 섞인 영화 <디스커버리(2017)>에서도 ‘영혼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요?’라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배(가슴) 혹은 머리에 있다고 답한다는 장면은 이미 신체와 영혼을 사람을 구성하는 분리된 파트로 보는 가치관을 깔고 있으며 이미 이것이 우리네 인식이라는 것을 넌지시 알려줍니다.

따라서 <토리노라인> 또한 SF이긴 합니다만 위와 같은 심신이원론을 기초로 하여 휴머니즘을 기초로 한, 인간은 무엇이고 인간의 Ghost(영혼, 마음)은 어떤 것이며 어디에 있는지를 고찰하고자 합니다. 머리(기억)을 잃은 주인공과 머리(기억)’만’이 존재하는 시로네로부터 시작되는 이 게임의 본격적인 스타트 지점은 100% 완전한 인간이 아닌, 물리/정신적으로 분리/붕괴된 인간에게 인간성과 마음을 탐구하는 기초적인 문제 상황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지요. 불완전한 인간으로서의 주인공이 (사라 루트를 제외하고) 시로네라는 여동생의 기억과 감정을 가진 안드로이드와 상호 작용하며 인간성과 그 가치가 무엇인지 해답을 얻는 과정과 그 결단, 그리고 시로네의 엔딩 장면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 주는 ‘핵심’은 탄생과 죽음 사이에 있는 ‘삶의 총체’이며 따라서 영혼(마음)은 따로 물리적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전 시로네가 ‘여동생으로의 삶’과 ‘자신의 삶’사이에서 사람의 ‘마음’을 얻게 되었듯 말이죠.



유우리 루트&엔딩도 마찬가지로 인간의 중요한 본질을 삶의 과정, 일상에서 찾고 있습니다. 신체의 일부가 잘려 나가고 신체의 모두가 자신의 것이 아니게 된다 하더라도, 살아 있는 한 자신의 영혼은 자신의 것임을 주장합니다. 비록 언젠가 죽더라도, 죽음을 향해 가는 삶이라도 살아가는 것에서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는 것. 거기에 우리네 인간성은 존재한다고 <토리노라인>은 해답을 내놓고 있습니다.

따라서 기억을 잃지 않은 상태의 100% 완전한 주인공을 내세워 ‘안드로이드’와 대결하는 사라 루트&엔딩은 탄생과 죽음 사이의 삶을 살아가는 인간과 인간성의 가치를 조명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입니다. 합리적이며 논리적으로 딱딱 분리되지 않은 불완전하고 미숙한 인간이란 존재는, 그 영혼은 결국 삶이라는 시한적 ‘육체’에 하나되어 사람의 일부이자 사람 그 자체임을 주장합니다.

minori의 이 같은 결론은 어쩌면 케케묵은 심신일원론에 가까운 해답이 되기도 합니다만, 더 적극적인 측면에서의 진보된 일원론이지 않나 싶습니다. 삶을 살아나가기 위해선 그것이 피와 살로 되어 있든 기계로 되어 있든 상관 없이 함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과 그 삶의 총체에서 해답을 얻고 있기 때문입니다. 토리노トリノ는 인간이 추구하고 발전해야 할 이상향에 가깝게 그려지며 그 과정(라인ライン)에서 발버둥 치는 인간상은 종래의 minori가 시종일관 내포해왔던 휴머니즘과 일맥상통합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적은 게임의 분량에 퍽 심도 있는 주제 의식을 내포하고 있는 탓에 대중적인 소재를 효과적으로 작품이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못 합니다. 로봇(안드로이드)은 인간과 인간성을 조명하기 위한 수동적인 장치에 그치고 있고 로봇에 대한 심도 있는 조명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죠. 매우 상징적인 ‘토리노’라는 것 역시 사라 루트에선 인간이 시행착오를 끊임없이 겪으며 추구해야 할 이상향으로 뭉뚱그러져 있습니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팬디스크가 예정된 작품이니만큼 팬디스크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에 따라 이 부분의 평가는 보류해둬도 괜찮지 싫네요.


하운나래.

덧글

  • 히메노시온아이 2017/12/30 23:05 # 삭제 답글

    트위터에도 짤막히 감상을 남기긴했지만, 일단은 여러가지 더 적고 싶은게 있어서 쭉 적어봅니다.

    사실 영혼의 부분으로 접근하는건 전 생각도 안한지라 의외로 이게 이렇게도 말이 되는구나, 라고 생각을 했는데, 일단 직접 물어본거+미노리 오프모임에서 나온 이야기들+제 생각을 토대로 정리해보면, 일단 트리노라인에서 다루고 싶었던 궁극적인 주제는 '공존'도 포함되어있다고 합니다.

    하운나래님이 트리노라인에서 말하고자 하는 '인간적'인 부분에 대해서 접근하셨다면, 'SF'로써 트리노라인은 세루트에 걸쳐서 '안드로이드와 인간은 공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도 분명히 던지고 있는데, 우선 시로네 루트부터 살펴보면, 시로네는 작중 무엇으로 규정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등장인물들의 여러가지 의견이 갈리지만, 역시 가장 와닿는 해답은 사라의 '자신이 안드로이드라고 생각하는 인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고로 시로네는 SF 에서 몇번이고 제시되어지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의 3원칙에서 언제든 벗어 날 수 있지만, 스스로를 '안드로이드'라고 규정하기에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는 그 규정을 벗어나지 못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슌이 제시한 '영원히 살아서 자신이 살았던 증거가 되어줄것' 이라는 규정을 스스로 어기면서 (사실상) 목숨을 끊습니다. 이는 단순히 시로네가 안드로이드를 초월했단 뜻 뿐만아니라, 인간이냐 안드로이드냐를 규정하는 '그릇'이 단순히 육체란 속박이면, '영원'의 시간을 가진 안드로이드는 인간보다 모든 면에서 상위호환격 존재임에도 불과하고, 인간으로써 '삶'의 가치는 '유한'에 존재하기 때문에, 시로네는 안드로이드임을 포기하고 인간이길 택했습니다. 결국, 이는 두 그릇이 아무리 닮았다 하더라도, 결국 '인간은 안드로이드가 될수 없기에'(슌의 경우엔 이것을 깨닫고 포기했고, 시로네는 인간임을 택하므로써) 둘은 공존할수 없다는것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우리 루트는 물론 삶과 죽음에 대한 유우리의 갈등이 메인이지만, 잘보면 안드로이드랑 인간의 우열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있습니다. 오프모임에서도 나왔던 핵심 키워드인 '가상은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카타카나 유우리를 통해서 몇번이고 보여주고 있죠. 카타카나 유우리는 아프지도 않고, 기존의 유우리보다 완벽한 존재이며, 유우리를 대신할 수 있는 모든 '완벽한 가상의 그녀'를 구현해낸 존재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유우리(한자)는 그것에 열등감을 느끼고, 자신은 함께 해줄수없는 상황에 대해서 분개하며, 주인공인 슌도 점점 현실적으로 암울한 진짜 유우리보단 가상의 유우리에게 의존하는 시간이 길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결국 루트에서 궁극적으로 제시하는 점은, '인간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인간'이다라는 점으로, 시로네 루트와 마찬가지로 '인간을 구성하는건 무엇인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있습니다. 결국 슌은 유우리(카타카나)보단 유우리(한자)를 택하므로써,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인간이다, 안드로이드가 얼마나 완벽하다 하더라도 인간을 대신할 순 없다. 라는 시로네 루트와는 다른 의미로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공존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선을 이야기하고있습니다.

    사라루트가 마지막에 배치된 이유는 그렇기에 물론 위에 말씀하신대로 기억을 100퍼 지닌 주인공과 인간과 인간의 가치도 이야기 하고있지만, 사실 잘보면 위 2루트에서 '안드로이드와 인간은 공존이 결국 불가능한것인가?'라는 의문에 대해서 최종적으로 답을 제시해주는 루트입니다. 안드로로이드란것도 결국엔 인간의 작품이자, 그릇을 구성하는 구성요소가 인간에 닮아있다면, 결국 아무리 상위 호환격 존재이자 완벽하고 무결점인 존재라 할지라도 '인간으로써'의 구성요소가 분명히 남아있음을 두 루트에 결쳐서 보여줬고, 사라루트에선, 그 '인간성'에 호소해서 결국 인간보다도 완벽한 안드로이드란 존재조차도 무언가에 의해서 창조된, 불완전한 존재라는 답을 끌어내고, 그 과정에서 마치 '신'과 같았던 '진 트리노'의 존재를 주인공과 같은 '인간의 레벨'로 끌어내리므로써 비로써 처음으로 대화가 성립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결국 AI인 사라와 주인공은 서로를 완벽히 이해를 할수 없지만, AI사라가 지켜보겠단 말과 함께 물러나므로써, '공존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제시하며, 트리노라인이란 이야기를 마무리짓게 됩니다.

    아직 인류에게 안드로이드와의 공존은 시로네와 유우리 루트에서 제시한 이유들때문에 지금 당장은 불가능하지만, 사라루트에서는 그것을 일종의 '열린 결말'로 남겨두므로써, 허황된 이야기가 아닌,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사실 제가 개인적으로 크게 실망한 부분은 사라루트에서 결국 인간의 대표인 슌과 AI 측의 대표인 사라가 대화하는 부분이 어찌보면 좀 유치하고 지리멸렬, 너무 지나치게 쉽게 납득해버리는 것에 대해서 다소 크게 SF팬으로썬 실망을 했습니다. 이미 AI와 인간의 대결은 아서 클라크의 스페이스 오딧세이와 같은 작품에서 심오하게 다루어진바가있고, 결국 스페이스 오딧세이에서 두 세력은 공존할수 없음을 깨닫고, 인간은 AI를 파멸시키는 방향으로써 모든 매듭을 짓는 결말이라면, 사라루트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공존'의 길이란것이 '너가 하는 짓은 나빠!'->'생각해보니 그러네'->'인간은 어리석지 않아'->'그럴지도'->'인간을 믿어!'->'그럴게, 지켜보겠어' 하는 프로세스로 너무 단순하게 다루어버린 감이 있다는게 제 개인적인 SF팬으로써의 아쉬움이기도 합니다.

    여튼, 하운나래님이 인간하고 영혼의 정의에 대해서 언급을 해주신덕에 저도 이부분에 대해서 좀더 뚜렷하게 이야기를 잘 쓸수 있었던것같네요. 역시 거진 1년(?)을 기다린 보람이 있는 감상문이었습니다.

    트위터에서도 말했지만, 트리노라인 제네시스는 일단 미노리 생방송에서도 최대한 해피해피한 이야기로 간다고했으니 너무 기대하지 않으시는게 좋을지도.. 말그대로 '팬디스크'격인 작품이니깐요. 당장 저만해도 트리노라인 캐들보단 역시 2년만에 후일담이 뜨는 영원쨩의 이야기가 더 기대되기도 하고...ㅋ
  • 하운나래 2017/12/30 23:50 #

    매번(미노리) 양질의 댓글 감사합니다 (__)

    감상을 교류하는 순기능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저도 긴가민가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 부분을 제대로 짚어주신 거 같아 본문과 더불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는 좋은 글을 함께 완성시켜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다시 한 번 드리고 싶네요.

    우선 이전에도 말씀해주셨던 안드로이드와 인간의 공존에 관한 부분. 제가 이 부분을 본문에 언급하지 않은 것은 제 관점에서는 공존은 서로 다른 항이 대등한 관계에 위치해 있을 때 비로소 논의가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서로가 경쟁하는 관계에서 대립하여 갈등과 반목을 거친 후에 화해를 모색하여 함께 자신의 영역을 안전하게 확보한 이후에 공생을 추구하는 것을 공존이라고 봤을 때, 이 작품에서 전반적으로 제시된 인간과 토리노(안드로이드)의 관계는 대등하다고 하기는 좀 어렵죠. 로봇은 인간이 만든 창조물이고 3원칙에 종속되어 있으며 이것이 있는 한 결코 대등해질 수는 없습니다. 물론 이야기의 핵심이 되는 시로네라는 상정 외의 케이스와 사라 루트에서의 AI 사라의 경우처럼 3원칙에 종속되지 않은 로봇이 제시되었을 때, 인간의 편은 어떤 생각을 보이며 어찌 행동할지에 대해서는 아예 다루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본격적으로 이를 다뤘다는 느낌을 받기는 힘들었습니다.

    물론 말씀하신 공존의 의미가 제가 언급한 공존의 의미가 아닌, 좀 더 실제적인 의미에서 인간, 혹은 AI가
    서로를 수용&인정 가능한 상황인가-에 대한 것이라면 충분히 납득 가능한 일리 있는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그렇기도 했고요. 유우리 루트에서는 자신의 신체의 일부가 기계(로봇)으로 대체되는 것을 납득하고 수용하고 있으며 사라 루트에서는 3원칙의 족쇄가 풀린 상태에서의 로봇과의 대치는 말씀하신대로 갈등의 매듭이 인간의 방향 쪽으로 종속적이며 허무하긴 합니다만 어쨌든 서로를 탐구하는-공존에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은 틀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제가 알고 있는 minori라면 당연히 이런 식의 결말을 낼 거 같긴 했습니다(...)

    제가 팬디에서 기대하고 있는 부분이 요런 '공존'의 부분인데, 기초적으로 팬디스크이기 때문에 해피해피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물건이 되겠습니다만 상황적으로는 여러 모습을 보여줄 것이기에 방향성을 어찌 잡을지 궁금하네요.
  • 유스티아 2018/01/01 12:18 # 답글

    올클하셨군요! 여전히 깊이 있는 리뷰글에 놀라고갑니다 ㅎㅎ

    확실히 주제가 너무 깊었다는 말에 공감이 가네요. 아니, 이 경우에는 너무 주제 의식이 많았다고나 할까요. 루트별로 알리려고 하는 내용이 다 다르니까 결과적으로는 붕 뜬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특히 사라 루트는 트루 루트면서 뭔가 시로네 루트랑 뿌리가 다른 듯한 느낌을 받아서.....ㅋㅋ;;

    팬디에서 하운나래님 말씀대로 그 부족했던 부분이 채워질지, 아니면 그냥 육욕적인 부분만을 채울지(.....) 모르겠네요. 저는 뭔가 H씬만 주구장창 나올 것 같아서 가볍게 보고는 있지만, 만약 스토리적으로 보충이 잘 된다면 흥미롭게 읽고 분석해봐야겠습니다 ㅎ
  • 하운나래 2018/01/01 13:38 #

    댓글 감사합니다!

    게임 자체로선 뭔가 캐릭터/시나리오 면에서 모두 즐길 거리가 부족하다고 느끼게 되는데, 정작 내포하고 있는 것들이 퍽 많아서 오히려 이를 갖고 파헤치는 맛이 일품인 절묘한 밸런스의 게임을 이번에 minori가 선보였다고 생각합니다. 팬디에선 이 부족한 면들은 어떤 식으로든 좀 채워넣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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