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과 노을의 안식처


봉함의 그라세스타 封緘のグラセスタ(Eushully, 2018) 단평 미소녀 게임 단평


* 아래 사용된 그래픽의 저작권은 ⓒeushully에 있습니다.


[에우슈리의 20주년과 함께 발매된 19번째 타이틀]

* 게임명: 封緘のグラセスタ (봉함의 그라세스타)
* 장르: 미궁 공략 RPG
* 규격: 풀 프라이스 (9,800엔)
* 제작사 및 발매일: エウシュリー (2018.11.30)
* 원화: やくり、夜ノみつき、うろ、よしだたくま
* 시나리오: 花咲樹木、若葉祥慶、八雲意宇

- 분류: 그 외 / SRPG
- 핵심 키워드: 에우슈리, SPRG, 미궁, 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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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순한맛으로 확고해진 에우슈리의 작품 세계와 게임관의 기준. 그 균형점의 실현작


*총평:
 최근 몇 년간 에우슈리의 신작 타이틀에는 올드팬들에게 지속적으로 에우슈리답지 않음을 느끼게 만들면서 동시에 게임 또한 한 가지씩 나사가 빠졌다는 인상(에로 혹은 게임성, 스토리 등)을 받게끔 만들었지만, 20주년 기념작(?) <봉함의 그라세스타>는 비록 크지 않은 볼륨에서도 그들이 현재 (1년이라는 짧은 제작 기간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최선을 담아 넣어 그간의 물음에 대한 균형잡힌 나름대로의 해답을 내놓은 게임. 즉, 새로운 틀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다만 이들의 답이 팬들의 바람과 추억에 기대는 것보단, 캐릭터 중심의 현대 트렌드에 더 영합했다는 것이며 이제는 유저들도 이를 수용하며 변화된 에우슈리에 납득해야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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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스포일러 포함)

1. 미궁의 모험담과 노예에서 왕으로의 신분 상승의 교차적 스토리텔링

 금작이 내거는 최대&최고의 캐치 프레이즈이자 장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평소 무쌍의 실력으로 살아가던 용병 '제달 슈바르카(ジェダル・シュヴァルカ)'는 고용처에서의 전투의 패배로 빛의 진영과 구 사마라 마족국(대봉쇄지)의 잔존 마족과의 대립이 격렬한 '영격 도시 그라세스타'의 노예로 팔려나가게 됩니다. 노예라는 밑바닥 신분에서 전투 실력으로 먹고 살아 가야하는 그라세스타의 특이 구조를 이용한 신분 상승의 스토리텔링은, 작품의 유일한 메인 히로인 격인 '리리카'와 함께 그녀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지하 미궁을 깊숙이 탐험해나가면서 단계적으로 게임의 무대가 되는 격전지 '그라세스타'에 얽힌 비밀을 하나씩 풀어나가는 정중한 스토리텔링과 맞물려 교차적으로 얽혀, 모험담이 주는 흥미진진한 재미와 긴장감, 신분 상승 스토리가 주는 성취감과 고조감을 함께 극대화시키는 데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장점만으로도 이 게임이 호평을 받아도 손색없을 정도로 하나의 완성된 모험담으로서 잘 정돈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신분 상승에 따른 변화가 스토리뿐만 아니라 게임 내에서도 가시적으로 반영되어 플레이 경험을 확장&증폭시켜 줍니다. 구체적으로는 신분의 단계가 스토리 전개와 맞물려 '하노예 -> 중노예 -> 상노예 -> 자유민(발투사) -> 영격왕'에 이름에 따라서 행동 범위가 넓어지며 주거 환경이 변화하고, 더 다양한 캐릭터들과 교류할 수 있으며 심지어 H신의 질(?)적 향상까지 불러오게 되는 등 작품의 테마를 스토리텔링뿐만 아니라 게임 내에서까지 구체적으로 실현하고 있는 모습은 부정할 수 없는 금작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봉함(封緘)’이라는 테마의 중의적 적용

 이 작품의 또 한 가지 테마는 바로 게임의 무대가 되는 '그라세스타' 앞에 붙은 수식어, '봉함(封緘)'에 있습니다. 굳이 직역하자면 봉하여 꿰메다, 담는다는 의미인데 이는 사마라 마족국을 대봉쇄지로 명명하여 일종의 '봉인'과도 같은 역할을 하며, 2회차 플레이에서 추가적으로 밝혀지는 마왕 리크슈마의 진정한 계획인 이세계의 마왕의 강림을 막고 그 지역(그라세스타&마족국)을 통째로 봉인시켜 이 도시로 하여금 그 봉인을 지킨다는 배경과 스토리텔링의 핵심을 일컫고 있습니다. 

 그리고 '봉함'이라는 용어는 또한 게임 시스템 내에서는 여러 강화 소재를 '봉함' 가능 장비 아이템에 집어 넣어 강화시켜 캐릭터와 더불어 장비도 함께 성장시켜나간다는 RPG 특유의 재미와 야리코미 포인트를 살려 내고 있다는 점에서 (비록 그 역할과 의의가 희미하다 하더라도) 자신들이 내건 테마를 이야기와 게임성 전반에 걸쳐 충실하게 실현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3.  파트너십 주인공과 주회 플레이의 실종

 비록 종래의 에우슈리 게임에서는 보기 어려운, 가진 것 하나 없는 용병/노예 신분의 주인공이지만, 줄곧 변치 않는 에우슈리 특유의 선비와도 같은 점잖고 냉정한 주인공은 여느 작품보다도 '용병'이라는 천직과도 잘 어울려 모험담에 가까운 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데엔 안성맞춤이라고도 할 수 있죠. 이러한 주인공과 함께 비밀을 파헤쳐가는 메인 히로인 '리리카'의 모험심과 의리, 용감함과 정 등의 인간적인 면모는 주인공과 항구적인 파트너십을 이루며 서로가 서로의 정신적 지지와 위로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는 곧 여타 히로인들의 공략 상황과는 관계 없이 최우선적으로 리리카가 메인 히로인으로 결정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다른 개별 히로인의 엔딩 없이 오직 '하나의' 히로인 엔딩을 갖게 된다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이는 곧 '어차피 히로인은 리리카'라는 메인 스트림이 정해져버렸다는 양날의 칼과도 같은 단점을 지니며, 비록 메인 스트림의 이야기를 곧바로 온전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을 갖기도 합니다만 나머지 개별 히로인들의 존재 의의를 단순히 '동료'로 격하시켜 캐릭터별 이벤트의 의미 또한 희석해버리고 만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지니게 됩니다. 이것이 갖는 여파는 SRPG의 기본적인 개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주회 플레이' 요소의 빈약함을 초래하고 마는데, 실제로 <봉함의 그라세스타>의 1회차 이후 2회차에서 해금되는 주회 플레이 요소 - 숨겨진 세계관과 이야기는 1회차의 엔딩과는 별개로 진행되며 다른 방면에서의 자신들이 준비한 무대의 흑막을 들춰내는 데에 한정되게 됩니다. 여기서 리리카는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며 네/메타 캐릭터인 '블랙 에우슈리짱'이 안내자 역할을 대신 수행하게 되지요. 이처럼 온전한 엔딩은 단 하나 뿐이며, 리리카와의 파트너십 엔딩에 따른 온리 원 루트는 2회차 이후의 주회 플레이를 3회차 이후까지 끌고 갈 이유가 전혀 없게 만듭니다. 필연적으로 짧아질 수밖에 없는 플레이 타임은 비록 에우슈리가 1년 마다 게임을 만든다고 할 지라도 게임 자체의 치명적인 결함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1회차의 플레이를 진득하게 할 수 있는 장점은 분명히 있겠습니다만 게임 특성 상 내년 2월 경에 확장팩이 새로이 등장한다 할지라도 이와 같은 한계는 극복되기 어려울 것이고, 사실 상 2회차까지 플레이 하면 이 게임의 수명은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4. 제기된 ‘이상’에 온전히 반론하여 싸우지 못한 리리카의 ‘이상’

 스토리텔링에서 중요하게 다뤄진 부분 중 하나를 구체적으로 얘기해볼까 합니다. 모두가 싸우지 않고, 심지어 인간과 마족끼리도 하나의 '새로운 종족'이 되어 항구적인 '평화'를 이룩하려는 레기의 이상론 자체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강인한 논리를 갖고 있습니다. 자신을 '정의'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레기를 상대로 싸워야하는 주인공 일행 중에서 그의 이러한 사상에 정면에서 반박할 수 있는 논리를 가진 캐릭터는 파트너십 주인공인 '리리카'뿐입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결말부에서 그의 논리에 정면에서 반론할 수 없었다며 자책하는 리리카의 떨떠름한 표정 그 자체가 좋은 완성도를 갖고 있는 이 모험담의 거의 유일한 옥의 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다름에서 오는 싸움은 필연적이라는 자연적 진리 - 레기의 이상론과 정반대되는 현실론을 주인공의 입을 통해서 되뇌일 뿐입니다.

 물론 리리카의 반론에 의해 결과가 뒤바뀌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주인공의 '철저한 용병주의'의 논리 - 약육강식의 논리로 작품 내내 보여주지 않았던 '인간미'를 여기에 와서 값싸게 팔아먹는 짓을 하지 않아 오히려 괜찮은 접근이라는 시각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레기의 이상론은 단순히 '로바리'족의 피를 진하게 이어 받았다는 선천적인 이유 하나만으로 부모에게 버림받고 박해받으며 자신의 신체 능력을 활용한 끊임 없는 투쟁의 삶 - '인간' 본연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의 운명을 구원해줄 수도 있는 논리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리리카는 자신의 논리를 펼치려다가도 제달을 보고 강하게 자신의 논리를 입증할 수가 없었지요.

 아쉽게도 2회차에서는 이 스토리텔링과는 반대 측면에서 비밀을 파헤치기 때문에 레기와 리리카의 이상론의 대립의 끝을 플레이어는 영원히 볼 수가 없습니다. 제달 또한 스스로의 운명을 그저 납득하고 받아들이며 투쟁하는 삶에 그 어떤 의문도 가지지 않으며 그저 정의라는 사상은 힘 있는 자가 내세울 수 있다는 약육강식의 논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관철합니다. 사족입니다만, 하층민에서 간접적인 신분 상승으로 시야가 넓어져 세계의 비밀을 파헤쳐 나가는 <예익의 유스티아(AUGUST, 2011)>의 주인공- 카임과 금작의 제달은 유사한 측면이 많습니다만, 결정적으로 이야기 처음과 끝에 선 주인공이 질적/정신적으로 달라졌느냐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은 서로 완전히 다른 것이죠. 이 차이가 스토리텔링의 깊이의 차이이지 않나 조심스럽게 생각합니다. 설령 제달의 사상이 결과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리리카라는 존재가 있는 한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요. 

(유일하게 제달이 흔들렸던 건 리리카가 제달에게 고백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꼽는 금작 최고의 명장면&명대사
엉엉 날 가져요 리리카짜응)



5. 무늬만 노예일 뿐, 사실상 실력있는 용병의 위상을 그대로 유지 = 순화된 에우슈리의 방증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식의 물음이기도 합니다만, 무대가 되는 '그라세스타'라는 도시는 노예든 자유민(발투사)든 실력 있는 자가 최고입니다. 왕도 될 수가 있지요. 이 취지는 좋습니다만, 이러한 그라세스타의 제도와 더불어 레기의 평화 사상이 맞물려서 사실상 노예 제도가 아닌, 일종의 스토리텔링을 위한 인위적인 신분 상승 시스템이라는 느낌을 적잖아 받았습니다. 물론 이건 플레이어/제달의 시점이지 실제로 자유가 거의 제한되어 매번 목숨을 걸며 싸워야 한다는 독특한 그라세스타의 노예 시스템은 더할 나위 없이 가혹한 건 사실이지만, 최강의 전사인 주인공에겐 노예라는 직접적인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아이러니함이 발생하지요. 공교롭게도 곤란한 것이 이는 일반적으로 갖는 '노예'라는 인식이 아닌, 순화된 에우슈리가 표현하는 노예로 다가와 에우슈리의 최근 이미지를 더욱 공고히 하는 데에 기여해버리고 말았다는 점이겠지요. 모든 부분에서 바퀴의 톱니가 그런 식으로 잘 맞물려 있습니다. 

 앨리스소프트가 자신들의 대표작인 란스 시리즈를 오랜 시간동안 만들어 내면서도 변함없는 팬들의 지지와 팬덤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유쾌하면서 가혹할 땐 가혹하며 거침없는 표현을 서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지금의 모에 트렌드 또한 일부 받아들이며 변화를 모색하기도 하지요. 반면 에우슈리는 과거의 팬들에게는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질만큼의 변화를 점진적으로, 혹은 급작스럽게 매년 나오는 신작 타이틀마다 겪어야만 했고, 그런 보이지 않는 유저와 제작사 간의 실랑이에 대한 에우슈리 측의 해답은 이번 <봉함의 그라세스타>가 신작 타이틀 중에선 <마도교각(2013)> 이후로 그나마 가장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산해왕의 원환(2016)>이 전여신 시리즈를 담당했던 '후지와라 쿠미쵸(藤原組長)'를 신 타이틀에 투입하면서 과거의 소위 '다크한' 에우슈리를 표현하려 했으나 역대 최악의 평가를 받으며 반지닦이로 침몰한 탓에, 그 반대 급부(?)로 <아마유이 캐슬마이스터(2017)>은 <신의 랩소디(2015)>와 더불어 가장 순화된 게임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언제든지 <산해왕의 원환>과도 같은 과격한(?) 타이틀이 다시금 등장할지는 모릅니다. 다만 타이틀의 전체적인 배경이 '노예'를 기반으로 하는 <봉함의 그라세스타>에서도조차 노예답지 않은 노예의 모습으로 유하게 표현된 것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확고해진 에우슈리의 새로운 모습이자 그 최후 통첩이 바로 이번 작품이지 않나 싶군요. 이들이 내놓은 최선의 해답이 이 작품이라면, 이제는 유저들도 받아들일 때가 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른 얘기입니다만, 에로게 업계의 침체는 직접적으로도 <푸른 저편의 포리듬> 등을 만든 sprite와 같은 브랜드의 활동 정지 등으로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서, 마냥 매년 에우슈리의 게임을 즐길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네요..당장의 제작 스케쥴에 따르면 19년도에는 에우슈리의 신작 타이틀이 나오지 않을 겁니다. 슬프게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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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운나래.


덧글

  • 개성있는얼음대마왕 2018/12/22 10:36 # 삭제 답글

    나쁘진 않은데 뭔가 부족한 게임..
    전여신에 비하면 별로인듯
  • 하운나래 2018/12/22 11:49 #

    전여신 이후로 기존 팬들까지 만족시키는 게임이 나오지 않는 게 에우슈리의 한계이지 싶습니다. 그나마 전작인 아마유이와 이번 그라세스타가 무난한 평을 받고 있습니다만, 그것들 역시 아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 더블유키뽀 2019/01/10 13:26 # 답글

    이런겜은 일본어 모르면 일반적인 면시보다 더 하기 힘들겠죠?
  • 하운나래 2019/01/11 22:39 #

    이런 SRPG 장르는 일어를 모르면 플레이 하기 무척 까다롭습니다. 물론 에우슈리의 과거 작들 일부는 한글 그래픽 패치도 있긴 합니다만 일어 자체를 완전히 모르면 아무래도 스토리나 회화 등을 즐기는 데에 부족함이 있는 것은 사실이죠..다만 에로게만큼 일어 학습에 도움이 되는 콘텐츠도 또 없습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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